겨우 하루를 보냈다. 버텼다고 하는 쪽이 더 맞을까? 겨울이라 해는 생각보다 일찍 저물었지만 하루를 보내는 것이 퍽 길고 견뎌내기 어려운 하루였다.
근래에 마음이 쉽게 지치고 병들었다. ‘깨지기 쉬운’을 영어로 fragile이라고 하지…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데 어쩐지 하루 종일 그 단어가 머리에서 맴돌았다. 본능적으로는 일상에서 튕겨나가지 않도록 힘썼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났고, 평소와 다름없이 농담을 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학교도 가고, 해야 할 일들을 했다. 해냈다.
사람들은 나의 허접한 위장술에도 잘 속는다. 또는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는지도 모른다. 또는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지도. (이것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위장에 능하고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잘 지내는 걸까? 아무튼 그 밖에도 이 세상에는 탁월한 자들이 너무 많아서 가끔 나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진다. 내가 오늘부터 매일 달리기를 한다고 해도 우사인 볼트를 달리기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리 쥐어짜도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어떤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이해하는 데에 2시간이 걸리는 한 페이지 짜리 글도 20분 만에 읽는다. 그들은 내가 답답함과 시샘에 눈물을 질질 짤 때도 아무런 적의 없이 웃는다. 아마 그들은 나보다 울기도 잘 울 것 같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 노래에 그대여~ 힘이 돼주오~ 하는 구절이 나올 때마다 눈물이 난다. 유년시절 내내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았으므로 누구에게 힘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일 또한 수치스러웠다. 문틈에 손가락이 끼어서 손톱이 빠졌을 때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가끔 그때가 생각나면 몹시 가슴이 아프다. 당연히 타인에 의해 구해지고 싶은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 나의 힘이 되어달라고 외치지 못한 탓일까? 그런 류의 가사가 나오면 어김없이 눈물이 나려고 한다.
다음 곡은 김사월의 어떤 호텔이었다. 무작위로 노래가 재생되던 와중에 앞의 유재하 노래 다음으로 이 노래가 틀어졌다는 건 길가에서 울어도 괜찮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의 밤은 하늘이 어두워지더라도 밝은 가로등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길가에서 울기는 적합하지 않다. 집 가서 울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노래 또한 아~ 진정 누군가라도~ 내 곁에 지금 있었더라면~ 하는 가사가 나오기 때문에 앞의 노래와 동일한 이유로 울기 직전의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 노래의 다음 가사처럼 사실 누군가 있어도 지금 나에겐 별 방법도 없다. 오늘은 그렇더라도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별 수 없었다. 별 수없이 혼자 보내야 하는 하루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