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과정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펫 로스 증후군'을 우리말로 다듬은 말이다. 반려동물의 실종이나 죽음으로 상실감, 슬픔, 우울감, 절망감 등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많은 이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을 두려워 하는 이유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꼽는다. 반려동물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할 때 그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나 역시도 이게 가장 무서웠다.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이별. 만남 전부터 그 결말을 알기에 두려움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막상 반려묘 참깨와 지내고보니 용기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살아오면서 느끼지 못한 감정을 참깨 덕분에 알게 되었고, 보기만 하더라도 웃음이 나오는 소중한 존재와 함께 시간을 보내니 두려움을 잊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감당할 힘을 줄 것이라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지인의 SNS에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으며, 장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을 접한 이들은 애도를 표하며, 관련 업체들에 대한 정보와 연락처를 댓글로 달았다.
그 상황을 마주하며 '반려동물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나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깨가 아플 때, 바로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의 위치를 확인해두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준비는 그저 장례 절차를 대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주변인이나 지자체 등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미리 파악해야 한다.
반려인들은 반려동물이 아프거나 죽을 경우, 직장에 휴가를 내는 것 때문에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회가 많이 나아져서 달라지고 있어서 '여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일컫는 '가족'의 정의에 반려동물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부 기업은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경우, 반려인에게 추모할 시간적 여유를 보장해 준다곤 하지만 이마저도 기업 내규로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구조화된 지원 체계가 있지 않다면, 직장 문화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반가운 움직임은 시작되고 있다. 최근 스타트업 기업을 중심으로 반려동물 돌봄에 대한 특별 복지를 실행하고 있는 곳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반려동물 스타트업을 들 수 있는데, 한 기업의 경우 반려동물 장례절차 및 비용을 지원하고, 매월 첫 금요일은 휴식하는 '놀금'으로 지정해 반려인이 반려동물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가족의 개념이 확장되고 다양해지는 지금, 너무나도 중요하고 필요한 제도적 지원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반려동물 장례 절차에 대한 지원이 반려인의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게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올 10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해지고, 이에 따른 지원이 확대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 '따스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듯하다.
현행법상 반려동물의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되는 만큼 허가받지 않은 동물의 사체를 땅에 매장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께 지낸 가족과 같은 반려동물을 종량제 봉투에 폐기물로 처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장례 절차와 관련해서도 법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합법적인 방법'으로 반려동물의 사체를 떠나보내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동물병원에 위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의료폐기물로 분류해 '처리'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반려인들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동물장묘업체를 찾아 장례를 치를 수도 있겠지만, 일부 업체들이 불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거나 위생과 안전을 확인할 수 없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이마저도 완벽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동물장묘업체는 59곳에 불과하고 서울에는 아예 시설이 없는 등 지역 간의 편차도 존재한다. 비용의 차이도 상당했다. 이 같은 문제점 때문에 최근 반려동물 장례서비스를 비교할 수 있는 반려동물 장례 플랫폼이 앱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노년 등 디지털 소외계층에겐 접근성이 좋지 않다.
'2021 한국 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반려인구는 1500만 명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전체의 약 30%라고 한다.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 역시 달라지는 만큼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지자체에서 이 같은 지원을 펴는 사례도 있다.
서울 노원구는 지난 10월, 반려동물 장례식장과 '올바른 반려동물 장례문화 정착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취약계층의 반려동물 돌봄 및 장례지원 사업 실행을 약속했다. 또한 서초구는 반려동물을 잃은 주민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모임인 '서리풀 무지개 모임'을 운영하며 전문적인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북 임실군은 지난 7월, 전국 최초로 반려동물 공공 장묘시설인 '오수 펫 추모공원'을 열어 반려동물 장례부터 화장까지 지원하고 반려동물 상실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고 한다. 집사인 내게 너무나도 따스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사는 집 한켠에는 자투리 베란다가 있다. 참깨와 함께 살면서 자투리 베란다는 방묘창으로 가려졌었다. 오늘 나는 그 방묘창을 열어 모퉁이에 새 모이함을 두었다. 참깨에게 또 다른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었다. 가끔 자투리 베란다에는 새들이 와서 쉬어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참깨는 신나게 방묘창 가까이로 뛰어가곤 했다.
언젠가 내 곁을 참깨가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참깨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줘도 그날의 아쉬움과 슬픔은 클 수밖에 없을 테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참깨를 오늘도, 내일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투리 베란다에 새들이 찾아올지 며칠 동안 지켜봐야겠지만 참깨의 또 다른 친구들이 부디 우리 집을 찾아와 줬으면 한다. 오늘의 참깨가 덜 외롭게,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본 글은 2021년 12월 17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를 통해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