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집사인 나부터 준수하기
참깨와 같이 지내게 되면서 동물 영상을 보는 시간이 확실히 늘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이기도 했고, 스트리트 출신의 참깨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동물들의 일상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로 SNS을 통해 동물 관련 영상들을 접했고, 덕분에 참깨와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지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영상에 나온 고양이가 목에 인식줄을 착용한 것을 보고 우리 참깨에게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빨간색 인식줄을 주문했다. 방울은 귀엽지만 고양이가 착용하기에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한 집사의 코멘트를 확인하고 방울은 빼고 주문했다. 빨간색 인식줄을 한 참깨의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다.
참깨를 임시보호하고 있던 분에게서 데려올 때, 입양신청서엔 한 가지 특별한 요구사항이 적혀 있었다. 별도의 SNS 계정을 만들어 참깨 사진을 올리거나, 임보인에게 주기적으로 참깨의 근황 사진을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입양을 보낸 참깨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였다.
나는 사실 이 같은 요구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참깨를 데려온다면 당연히 참깨의 인스타그램부터 만들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가 있어요! 여러분! 그리고 저와 함께 살고 있답니다!"를 동네 방네 떠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SNS를 통해 '강아지 같은 고양이'라는 제목의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에서 고양이는 집사가 던진 동그란 끈을 냉큼 뛰어가서 물어왔다. '우와, 고양이가 이런 것도 할 줄 알아?'라는 놀라움과 함께 '우리 참깨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참깨 앞에 가서 영상에서처럼 끈을 던졌다. 그런데 우리 참깨가 너무나 쉽게 달려가서 물더니, 그 끈을 내 앞에 내려놓는 게 아닌가! 순간 '우리 참깨는 천재인 걸까' 싶었고, '이건 바로 영상 각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영상을 찍었고, 당연히 SNS에 게시한 후, 지인들에게 '참깨는 개냥이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흐뭇해했다. 지금 이 일화를 돌이켜보며 글을 끄적이는 건, 내가 부족한 집사임을 고백하기 위함이다.
몇 달 후, 나는 기사를 읽다 가수 현아씨가 던씨와 함께 '핑퐁'의 뮤직비디오 촬영 콘셉트를 정하는 회의에서 특별한 제안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아씨는 뮤직비디오 출연자가 말에 올라타는 장면을 두고 동물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실제 동물이 아닌 모형을 사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의견을 결국 관철시켰다.
실제로 이러한 과정은 화제가 되었고 동물보호단체에서도 환영 입장을 냈다. 촬영장에서 동물의 기본권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지 못하는 상황을 정확히 짚고, 대안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동물보호단체가 미디어에서 동물이 활용되는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해왔고, 그러한 결과로 작년에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가이드라인 다운로드 링크).
이 가이드라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규정돼 있다.
미디어는 동물을 감정이 있고 지각력이 있는 존재로 드러내야 한다.
미디어는 동물학대를 정당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미디어는 살아있는 동물을 음식의 재료 또는 소품으로 여겨 해를 가하거나 불필요한 자극적인 영상을 위해 고의적으로 동물의 생명에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된다.
미디어는 동물을 안전장치 없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는 동물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거나 부정적인 편견을 조장하지 않아야 한다.
미디어는 동물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 부끄럽게도 '내가 참깨에게 했던 건 뭐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비일상적인 공간에 참깨를 무리하게 동원해 촬영을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귀여운 참깨를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었다. 그러니, '이게 왜 문제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참깨가 사람들이 환호하는 영상 속 동물의 행동을 흉내 냈으면 하는 마음에 특정한 상황을 연출해 영상을 찍은 건 사실이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오로지 내가 즐겁기 위해서 참깨를 일종의 '도구'로서 영상에 등장시킨 게 아닐까. 물리적 학대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런 욕심을 예민하게 경계하지 않는다면 내가 참깨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방해하고, 괴롭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SNS도 어찌 보면 1인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보는 사람이 적고, 팔로워가 지인들 위주라고 하더라도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충분히 인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많은 영상들이 SNS을 통해 공유되곤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할 때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동물 콘텐츠를 만들 때에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둬야 동물 학대를 막고 동물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인식, 편견을 재확산시키지 않을 것이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지인들에게 내가 참깨와 싸우지 않고 함께 한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우리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가 아니라, 명백히 우리 관계에서 내게 권력이 존재함을 인지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참깨에게 밥을 줄 수 있고 화장실을 치워줄 수 있는 것, 그리고 '나의 일상'을 독립적으로 일궈나갈 수 있어서 참깨의 외침에도 집을 나설 수 있는 건 명확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참깨가 사람들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 혹은 비언어적인 표현을 했을 때, 내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보다 노력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현실 세계뿐만이 아니라 나의 SNS에서도 참깨가 안전하고 행복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더 조심하면서 말이다.
현재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법적인 효력이 있진 않기 때문에, 권고에 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이같은 내용들이 향후 법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목소리 내는 과정이 필요하고, 시민 각자가 이 가이드라인을 자발적으로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귀여운 동물이 나오는 것을 즐기기만 한다면, 미디어 동물학대는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물권 행동 카라 게시글 중)
지난 11월 27일, 동물권 행동 카라는 '언제나 동물영상 모니터링'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튜브, SNS, 방송 등 영상 속 동물이 안전한지 함께 확인하는 모니터링을 한 후, 카라의 온라인 분석 도구인 구글 시트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운동이다. 수많은 동물 콘텐츠를 소비한 당신도 여기에 함께 동참해 동물'도'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본 글은 2021년 12월 3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를 통해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