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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하루 onharuoff Feb 15. 2023

정월대보름, 엄마표 찜 약식

추억의 음식

기다렸던 엄마표 약식이 돌아왔다. ^^ 한 해 딱 한번 정월대보름이 되면 먹을 수 있는 약식이다.

정월대보름의 음식인 오곡밥과 삼색나물을 먹고, 어렸을 때 특식으로 해주시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로 일과 살림을 함께 하셨기에 직접 음식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 쪼개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약식의 재료 중 하나인 밤은 하나하나 껍질을 벗겨내야 하고, 은행이 들어갈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때는 어렸을 때 당연히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뭘 굳이 손많이 가는 음식을 하나 싶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은근히 기다리는 엄마표 음식이 되었다.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 한 해만 먹을 수 있다에서 어느 순간 몇 년에 한번 하시다가 이제는 '힘들어서 더 못하겠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더이상 하시기 힘들게 되면서 오히려 나는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결국은 내가 먹고 싶어서 "내가 옆에서 도와주면서 배울 께"를 시전하여 다시 약식을 하고 있다. 올해도 엄마는 약식을 하실까 말까를 고민하고 계셨다. 결국은 옆에서 살살 꼬심을 시전했다.

"퇴근해서 내가 밤 다 까고, 대추도 손질해 놓을께. 그러니 하자."


약식을 한다고 하니 지인분은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리 힘들어하냐고 의아해 한다. 물론 전기밥솥에 하면 손쉽게 재료만 섞으면 할 수 있는데, 엄마는 찜기에 2번 찌는 형태로 하시는 것을 선호하신다. 전기밥솥에 한 번 해보시더니 고슬고슬한 약식이 아니라 질어서 (아마 물 조절 실패인 거 같긴 하지만) 그 이후로는 찜기에 찌고 있다.


재료준비


엄마는 며칠에 걸쳐서 여기저기 시장과 마트에서 밤을 사오셨고, 기계로 까는 밤은 너무 껍질을 까버리기에 하나하나 겉껍질과 속껍질을 까야 한다. 식자재 마트, 농협, 재래시장에서 밤을 사오셨다(엄마는 평소 운동삼아 다니시니다면서 근처 마트, 시장을 여기저기 다니신다). 세 번이나 구입한 것은 사연이 있다. 식자재 마트에서 사온 것은 크고 좋았지만 약식을 하기 위해 사온 것이 아니라 양이 적어서 까고 나니 추가 구입이 필요했다. 그래서 농협에서 2차 구입.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다. 보통 겉껍질을 깐 뒤에 속껍질이 잘 안까지기 때문에 물에 담가두었다가 하는데, 너무도 오래된 밤인지라 밤이 다 말라있는 상황이였다. 아무리 불려도 속껍질이 안까져서 두껍게 껍질을 까고 나니 또 부족했다. 그리고 밤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몇 년 냉장고 속에 넣어 두어서 말라 비틀어지기 전 상태의 밤 같았음)  다음날 시장에서 또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마른 대추는 씨에서 분리한다. 대추를 반으로 가른 뒤 씨를 중심으로 과일 깎듯이 돌려서 깐다. 그 다음에 그 대추를 크기에 따라 2~3등분해서 썰어놓는다. 얇게 채 써는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썬다. 올해는 여기까지가 밑재료 끝이다. 건포도야 기존 제품 사서 넣으면 되니까 준비할 것이 없다. 호두는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부터 넣지 않은 재료이고, 예전에 은행나무가 많았던 동네에 살던 시절에는 가을에 은행 열심히 줏어다가 냉동실에 넣어 놓고, 이렇게 약식을 할 때 넣어 먹었는데 별도 구입하기에는 은행 살 곳도 없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넣지 않게 되었다. 잣은 넣지 않는데, 좋은 잣을 사지 않으면 항상 그 기름 묵은내가 싫어서 약식이 망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약식만들기 전날 새로 산 찹쌀 4kg을 씻어서 불려놓는다. 이번에 산 찹쌀은 알이 잘다고, 좀더 굵은 알이 좋다고 하신다.


약식 만들기


전날 밥에 씻어서 불려놓은 찹쌀을 체에서 물을 뺀다. 찹쌀은 불어도 양이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 물을 약간 뺀 뒤에 면 보자기를 깔고, 큰 찜통에 넣고 1차 찐다.

1차 찌고 나온 찹쌀은 정말 쫀득하다. 그냥 맨밥만 먹어도 계속 먹고 싶어지는 맛이다. 한 김 빠지고 식기 전에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상태에서 양념과 재료를 섞는다. 간을 하는 재료는 양조간장+흑설탕이다. 양을 얼마나 하느냐는 엄마의 음식에서 몇 스푼, 몇 컵은 알 수 없고, 우리집 계량기 스텐 국 그릇으로 양조간장 1 그릇, 흑설탕 1 그릇이다. 양조간장에는 물을 약간 섞어서 희석한다. 흑설탕을 넣는 것은 색깔 때문이다. 집에 백설탕, 노란설탕도 있지만 흑설탕을 넣어야 약식의 색이 나온다 하신다. 작년에 그냥 노란 설탕을 넣었는데 확실히 덜 진하긴 했다. 단 정도는 이때 좀 달달하게 해도 2차 찌고 나면 덜 달기 때문에 재료를 섞을 때 단 것을 좋아하면 설탕을 좀더 투하하면 된다. 나는 약식이 안달고 담백했으면 하고, 부모님은 달달 약식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약간 덜 달게로 만든다. 어렸을 때는 카라멜이라는 것을 넣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설탕과 간장으로 간을 한다. 계피가루를 넣기도 하지만 엄마는 계피가루를 싫어하시는지 한번도 넣지를 않으셨다.



먼저 간장과 설탕을 넣으면서 섞는데 이때 찹쌀 덩어리가 생기므로 계속 그 덩어리들을 부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이 배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섞이면, 잘라놓은 밤, 대추, 건포도를 섞는다. 이대로 2시간 정도 둔 뒤에 2차로 찐다. 이미 찹쌀도 익었고, 대추나 건포는 꼭 익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밤이 익을 정도로 40분 정도 2차로 찌면 완성이 된다. 어렸을 때는 집에 시루가 있어서 거기에 넣고 시루와 시루사이에 밀가루풀을 붙여서 쪘기 때문에 모락모락 김나는 것을 보면서 내용물이 어떻게 나올지 항상 궁금했었다.


이틀간은 아침 식사로 먹고, 주변 분들에게 나눠줄 것들 배분 한뒤에는 한끼씩 포장해서 냉동실에 들어갔다. 몇 달간은 아침이나 주말 식사 대용이 될 것이다. 엄마가 요리를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주말이나 방학 때 등 시간이 나면 우리들에게 이것저것 해주시려고 했었다. 엄마가 지금은 기억 못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먹었던 맛이 아니라 해주시던 과정들이 떠오른다.

생일 때 백설기를 직접 시루에 쪄서 해주셨던 기억, 소풍 때 새벽부터 일어나서 김밥 쌀 때면 옆에 앉아서 자른 김밥의 끄트머리를 먹던 기억, 방학 때면 간식으로 핫도그를 하려고 나무젓가락에 소시지를 꼽던 기억 등이 한 번씩 떠오를 때가 있다. 물론 이제는 생일때는 떡집에서 이것저것 떡을 사다먹고, 김밥을 집에서 싸본 기억은 언제인지 잘 모르겠고, 핫도그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음식이 되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하나밖에 없는 추억으로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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