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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Sep 25. 2022

다시 만날 세계를 위한 약속

924 기후정의행진 참여 후기 

1. 눈을 감고 느껴봐 움직이는 마음

2022년 9월 24일은 역사상 ‘기후’라는 단어가 서울 시내에서 가장 많이 외쳐진 하루일 것이다. 1987년 6월에 ‘독재 타도’를 외쳤던 아버지와 어머니들, 2008년 촛불로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외쳤던 선배들이 ‘기후 위기’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아들과 딸들이 함께 박스로 제작한 피켓을 들고 있었다. 놀랍게도 행진에 가장 앞장서서 웃으며 나아가는 아이들, 반려동물, 휠체어에 타서 행진을 함께 하신 분들은 기후위기의 바깥 혹은 남은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민주화를 외치다 스러진 분들은 이곳에서 30년 후에 환경으로 사람들이 행진을 벌일 줄 알았을까. 환경을 위해 채식을 하거나 텀블러를 쓰는 사람들을 유별나게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 사람이 바뀌어서 세상이 바뀌냐는 이야기를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서사이다. 또한 편 나누기를 의도하는 듯한 일부 언론에서 MZ 세대의 특징으로 개인주의를 운운하는데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이렇게 민주주의를 내면화 했고 연대하여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우리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2.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파키스탄 홍수, '모든 것이 사라졌다' , 출처 BBC 코리아


지난 30년 동안 지구의 평균온도는 끊임없이 증가했다. 유엔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수많은 아젠다와 이를 위한 협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구성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늘었다. 지난 최근에 발간된 IPCC의 보고서는 온실가스가 획기적으로 감축되지 않는다면, 2030년 초에 전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을 것이며, 이후에는 불가역적인 기후위기가 일어나리라고 전망했다. 우리는 이미 1.1도 상승했고 이 추세라면 1.5도를 넘는 세상은 불가피하다. 


우리에게는 기적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그렇기에 지난 4월 국내에는 최근에야 이슈가 되었지만 전 세계 과학자들이 기후위기 연구를 파업하고 거리로 나왔다. 과학은 충분히 기후 위기를 증명했는데 정부와 기업은 이를 방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탈석탄과 친환경을 외치던 유럽 역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다시 석탄으로 회귀하고 있으며, 세계 각지는 경제논리와 힘의 논리에 의해 다시 재무장중이다. 


기후위기의 속성에는 불평등이 내재되어 있어 사회 정의에도 결부된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지역은 대부분 지방에 몰려 있다. 가장 안전한 곳은? 놀랍게도 서울이었다.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기후변화에 기여하는 지역이 가장 안전한 지역이라는 역설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적용된다. 우리나라에 폭우가 쏟아지는 사이 파키스탄에서는 국토의 1/3이 침수가 되었다. 이로 인해 1,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3천3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UN은 파키스탄에 2,000억 원의 긴급 자금 지원을 했지만 이는 긴급 수혈과 같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계속해서 심각해질 ‘기후 재난’에 일일이 이렇게 대응할 수는 없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피해와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피해는 더욱 클 것이기 때문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했던 ‘거대한 후퇴’를 위한 결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3.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이러한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아침이슬이 떨어져 싹을 틔운 곳에는 다시 만난 세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주최 측의 추산으로는 35,000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렇게 의경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시민단체들. 주변에서 상자를 구해서 피켓에 ‘지구야 그대로 있어줘, 우리가 바뀔게’를 쓰고 참여하는 사람들. 박수를 치면서 응원을 건네는 사람들. 그곳에는 세대갈등, 남녀갈등, 좌우익이 없었으며. 손을 잡은 부모가 있었고 희망이 있었고 민주주의가 있었다. 


최근 세계의 이목은 우크라이나 보다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있었다. 파월의 한 마디와 ‘자이언트 스텝’에 전 세계의 증시가 요동쳤다. 이전에 금융을 공부하면서, 금리와 이자율의 0.01% 포인트를 1bp(basis point)로 부르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퍼센트 포인트로 부르는 것의 귀찮음과 동시에 변동폭이 매우 작기 때문인데 지구 온도도 그렇게 부르면 이목이 조금이라도 더 경각심을 갖게 될까. 


혹자는 무슨 기후 위기로 저렇게 유난일까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금리 100bp가 올라갈 때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경기 침체 혹은 신흥국에서 경제 위기이지만 평균 기온이 여기서 1도 올라갔을 때 우리는 아직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가정조차 예측이 불가능하다. 서울에서 퍼진 노래와 이어진 행진이 절규와 피난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 행진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더 좋은 지구는 아니더라도 최악의 지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기후에 관한한 우리는 기다리거나 기댈 미래도, 플랜B도 없다.


"지구야 미안해 이젠 내가 바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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