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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Oct 23. 2022

[소셜섹터의 보람]#2 나의 첫 강의 준비기

나의 첫 강의 대뷔전, J 프로젝트 (1부)

이곳에 들어오기 전, 프로그래밍 슬럼프 때 몰입했던 드라마가 하나 있었다. 드라마를 잘 시작하지 않는 나에게는 특이했던 일이었는데 바로 '이태원 클라쓰'였다.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박새로이의 가게는 여러 동료의 도움으로 멀끔하게 탈바꿈한다. 인테리어도, 마케팅과 홍보도, 음식의 맛도 훨씬 좋아졌지만 생각보다 매출이 빠르게 오르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답은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박새로이의 가게를 지나며, 한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동네가 죽었는데 잘 될리가 없지" 그 말을 흘려듣지 않은 박새로이는 다음날부터 동료들과 함께 무료로 간판도 새로 달아주고 마케팅도 도와준다. 오지랖이라는 말에 그는 '이게 우리가 살 길이다'라고 대답한다


생태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장면


흔히 기업간의 경쟁을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한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업계 1위'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 1위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다. 소셜섹터의 생태계에도 경쟁이라는 문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오히려 난제를 풀어가는 수학자들 혹은 과학자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수학자들과 과학자들은 하나의 난제를 풀기 위해서 서로 긴밀하게 협력한다. 그래서 필즈상 혹은 노벨상을 받더라도 'ㅇㅇㅇ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자리에 나는 설 수 없었을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회 문제 역시 고차방정식에 가깝다. 난이도도 무한하지만 동시에 해도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많은 수학자들이 이 난제에 뛰어들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내가 두번째로 맡았던 J 프로젝트는 우리가 '임팩트'라고 부르는 생태계의 뿌리를 뻗어갈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였다.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는 의아했다. H프로젝트 처럼 대기업의 컨설팅 혹은 오픈이노베이션도 아니었고 스타트업도 아니었다. 다만 로컬에서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팀들을 선발하여, 디자인 씽킹을 방법론으로 문제정의를 함께 하며 변화를 만들어가는 프로젝트였다. 


팀들이 정성껏 작성해주신 서류를 검토하며, 나는 처음 가지고 있던 의문을 말끔하게 씻을 수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랐지만 스무 살 이후에 떠났기에 이토록 많은 사회문제가 그곳에서 자라나고 있는 줄 몰랐다. 또한 스타트업은 재단 혹은 NGO가 아닌 영리 목적의 기업이다. 당연하게도 사회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결국 비즈니스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ADHD 아동의 교실 내 학습권이 취약하다'라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솔루션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지자체(공공)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해당 예산을 증액해주거나 프로그램을 개설할 것을 권고할 것이며, 기업은 이를 위한 교보재 같은 제품 혹은 학습 콘텐츠와 같은 서비스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 양쪽 의 가운데 실제 이러한 교실을 운영하고 현장에서 살을 맞대며 가르치는 부분은 이러한 사회 문제 해결의 약한 고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 분야, 기업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더라도 해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세상에는 우연이 있어도 시장에는 우연이 없다. 우리가 아스팔트에서 씨를 뿌린다고 숲이 되지 않는 것처럼 좋은 소셜벤처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해 땅을 개간하고 꾸준하게 관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울에서는 SK 행복나눔재단의 SUNNY(써니), 아산나눔재단의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유스 프로그램 등이 잘 되어 있으며 대학에서도 서서히 사회경 경제에 대한 특강 혹은 과목들이 개설되고 있다. 또한 원한다면, 실습 혹은 인턴을 할 수 있는 소셜벤처도 많고 창업을 위해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선배 기업가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그러나 로컬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팀을 선발한 뒤에, 짧은 프로젝트의 기간 동안 '디자인 씽킹'이라는 방법론 워크숍을 진행해야 했다. 그리고 워크숍 강의에는 우리 프로젝트를 함께 담당했던 두 분이 함께 해주었으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입사한 지 한 달 남짓되었지만 강의를 해야 했다. 아니 처음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힘든 나에게 강의라니...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회사를 둘러봤다. 다들 홍보와 모집 기간이어서 그런지 문의가 오는 전화기와 메일과 전쟁 중이었다. 간단한 것 하나를 물어보기도 민망한 상황에서 "디자인 씽킹 강의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를 물어볼 시간은 정말 없어보였다. 


하지만 두 가지 다행스러운 포인트가 있었다. 첫 번째로 디자인 씽킹은 코딩이라는 제 3외국어를 배우기 전에 일년 내내 배우고 실습하던 과정이었다. 두 번째로는 다들 어떻게든 한다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배운 점이지만 내 주위 사람들이 모두 한다면, 나 역시 할 수 있게 된다(수동태).


우선 H프로젝트의 가장 큰 교훈이었던 BP와 레퍼런스 찾기를 시작했다. 구글보다 내가 더 믿는 구글 드라이브(기니까 더 좋을 것이다!)에서 디자인 씽킹 워크숍을 검색하고 모든 자료를 검토했다. 이를 보며 야근을 하는 나를 보며, 의아해하시긴 했지만 혼자서 스크립트도 써보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모든 방법론이 그렇듯 '디자인 씽킹' 역시 묘한 것이 알면 알 수록 더 모르겠고 레퍼런스마다 방법도, 흐름도 다양했다. 


전체 3시간 중에서 30분 정도의 강의 분량이었고 마침 출퇴근 시간과 딱 맞아서 어떻게 진행할 지 마스크 속에서 혼잣말을 하며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그렇지만 전날까지 자신이 없었고 회사 메신저인 잔디에서는 하루 전까지 'ㅠ 저 사실 잘 해낼 자신이 없는데요ㅠㅜ'라고 쓰고 싶었지만 각자가 짊어져야 할 산을 넘치도록 지고 있었고 한 분은 '인명피해만 발생하지 않으면 괜찮아요^^'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고 테블릿으로 끊임 없이 장표를 보고 정신을 차려보니 비행기 안이었다.


(2부에서 계속) 



2부에서는 강의에 이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인사이트를 더 적어보려고 한다. 위 글이 길었던 이유는 한 주 글을 쉬어 루틴이 깨지는 바람에 글 호흡도 늘어졌고 두 번째로는 모든 프로젝트가 사실 시작 전이 가장 체감상 길게 느껴진다. (보통 그 뒤로는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러나 배웠던 것은 확실히 나의 말과 글로 해봐야 온전히 내것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콘텐츠의 범람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글도, 강의도 복사 붙여 넣기 수준으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의 글과 말은 어색하기 마련이다. 또한 하나의 변칙적인 질문만 들어와도 모범 답안만을 외웠기에 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인풋을 투입해서 '장악'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생각하면, 무언가를 강의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그 분야에 어느정도 전문가가 되었다고 생각해도 된다. 


강의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꼽히는 청중들과의 호흡 혹은 커뮤니케이션 역시 콘텐츠에 대해서 여유가 있을 정도로 장악을 하고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다. 가끔 대표님 정도 되시는 분들의 발표 슬라이드를 보면 정말 텍스트도 많지 않고 사진만 덩그러니 있기도 하다. 반면에 내가 강의용으로 만드는 슬라이드는 빽빽하다. (거의 교과서) 이는 의존도 차이라고 생각하며 충분한 경험과 노력이 뒷받침 되며, 여백은 여유로, 여유는 관객에 대한 소통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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