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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7. 2023

야망을 치유할 것

연말의 목표

incurable ambition.
요즘 내 머릿속을 떠도는 단어다.

15년 전쯤 특수교육 전공자 35여 명 중 5명이 선택한 세부전공과목에서 The Egg라는 미국 단편소설을 읽었다. The Egg는 1900년대 초반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가족의 욕망 서사다. 청년 시절 순박했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 야심 차게 양계장을 열었다가 실패하고 기차역 근처에서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을 운영한다. 아버지는 손님을 즐겁게 해 주면 가게가 유명해질 거라 여겼는데, 치유할 수 없는 야망(incurable ambition)이 속삭이는 소리였다. 오랜만에 손님이 들어선 이른 아침, 아버지는 기이한 병아리 사체와 달걀을 입구 좁은 병에 밀어 넣는 쇼를 선보이다 달걀이 깨져버렸고, 내내 무관심하던 손님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린다.

아버지가 야망을 잉태한 양계장은 탄생의 요람이자 죽음의 숙명이다. 양계장에서 죽음을 배운 나(화자)는 유독 요람에 집착한다. 아버지에게 달걀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달걀은 깨지고 손님은 비웃었다. 달걀의 완벽한 승리다. 이제 아버지는 패배를 인정하고 야간에는 가게 문을 닫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달걀, 즉 야망은 스스로 부서지며 승리했고, 아버지는 패배하며 인간다움을 회복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 야망은, 깨뜨리고 치유되어야 할 질병이었던 것이다.

매해 연말은 부끄러움 모르는 야망에 몸살이 난다. '고과 관리'로 윗사람에게 동료보다 더 나은 점수를 달라는 청탁을 포장하고, 부지런히 시험 승진을 준비하겠다는 선언으로 2달쯤은 출근하지 않아도 밥 한 끼에 눈 감아달라고 요구하며, 일하는 사람은 동료들의 업적을 골수까지 빨아먹어야 승진하는 계절이다. 자신의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서라면 들키지 않을 숫자놀음 정도는 재발 예방 대책으로 변모시킬 수 있고, 그 언어는 문서에 맞게 자유자재로 정제된다. 성과와 승진, 인사이동의 시기 시끄럽던 사람들은 뒤돌아서서 외로이 패배감에 젖어 있다. 술이 늘고, 실수도 는다.

육체가 무겁다. '티벳 사자의 서'를 꺼내든다. 죽는 순간에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영혼의 의식'이 깨어 있으면 환생하지 않고 빛을 따라갈 수 있다고 한다. 육신의 욕망과 신경전달물질의 기분과 유전자의 성격 모두가 육체의 산물이다. 빛을 따라 걸을 나의 영혼은 어디에 있나. 원체 원하는 게 없는 줄 알았더니 이룰 수 없이 원대한 꿈을 꾸느라 갈급하게 야망을 쫓지 못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새해에는, 매해 그래왔듯 어디서 빌려온 계획만 늘어놓기보다, 영혼을 무거이 하는 책을 읽기로 한다.

괴물의 목소리가 들린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고, 스스로 괴물성을 자처했던, 이름 없는 괴물이다.


'안녕히, 월턴!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고 야심을 피하세요.'

명치 아래에서 숯처럼 타던 incurable ambition이 입을 다문다.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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