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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Nov 04. 2024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2024년 하반기 감정


11월
타들어가는 태양에 목을 뻗은 해바라기 군중과
기이하게 웃으며 시들어가는 해바라기 한 송이.

7, 8월은 오래도록 지지 못하는 수국의 꽃받침에 대해 생각했고
9, 10월은 공허와 외로움, 허망하지 않은 진실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은 <삶의 한가운데>, 니체, 라캉 생각을 한다.

동료의 승진 서류를 준비하며 문득 떠올랐다.
불살라 일했던 것에 보상은 없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을 우주로 대했던 마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의미를 가지고 스스로 행하는 주체성, 순수한 기쁨을 잃었다.
숙제검사하듯 다그치고 강박적으로 목표를 제시하며 나를 사람이 아닌 기능적 부속품으로 보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뺏겼다가 목줄 푼 강아지처럼 안도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음에 구멍이 나고 타들어가던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무엇을 잃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없다고 한탄하기 이전에 내가 이미 편안하지 않은 상태였음을 알게 되었다.

원치 않는 에너지의 장(펜듈럼)에 사로잡혀 있다면,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잠시 자신을 빌려주라 했다.
싸우지 않고, 끌려 다니지 않고, 잠시 빌려주는 거다.
나의 기쁨은 지금 여기에 있다.



1950년 독일에서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가 출간되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니나 신드롬'이 일었다.

주인공 니나는 10대에 영혼의 무한한 흐름을 깨닫는다. 니나는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의 눈에서 우울을 읽는다. 그녀에게 자유는 육체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용기이자, 가능성의 우주에서 잠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77-79)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156) 언제든 따뜻한 침대에서 나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 가시나무를 손으로 잡는 것, 사나운 개한테 가는 것, 매질을 견디고 소금을 먹는 일 등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해.

슈타인 박사와 니나는 서로 사랑했지만 함께하지 못했다. 슈타인 박사는 18년 동안 니나에 대한 일기를 쓰면서 그녀 스스로 그에게 걸어오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러다 죽기 전에 깨닫는다. 그가 결단을 회피해 왔다는 것을.

(34-35) 죽은 뒤에 생전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오. 내가 지은 죄란 결단을 회피했다는 것이오. 나는 그것이 비겁했기 때문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아마 유약했기 때문일 것이오..... 진정으로 삶을 살지 못했을 때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지. 잘 있으오, 잘 있으시오.

슈타인의 유약함은 니나의 질문에서 드러난다.
 그녀는 슈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369)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 한다>라고 하지 않고?

<삶의 한가운데>는 완전하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자유란,  영혼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행동하게 하는 무한한 에너지를 감당하며 피로를 견디는 것이 아닌가 질문한다. 더 이상 안락함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지 않는 우울한 눈망울 아래 무한한 가능성을 숨겨두는 것. 그 무심한 태도는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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