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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

선과 악, 아름다움의 질서에 대하여

by 김반장 Jan 19.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마조히즘의 유래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악으로 규정될 수도 없다. 생명력이 넘치는 우림의 법칙은 다양성이고 우주를 이해하면 모순이란 없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못 본척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불쾌하다고, 불편하다고 함부로 눈감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연의 세계에서 생존에 유리한 것은 선으로 명명하고, 죽음을 무릅쓰게 하는 극한 쾌락은 악으로 규정했다. 악은 방종이 아니다. 어떤 악은 선을 위반하는 새로운 질서다. 우리가 욕망하는 악의 끝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칸트는 도덕법칙으로 선의 질서 안에 있으라 했고, 사드는 폭력의 쾌락으로 미(美)의 질서 안에 있으라 했다.

미의 질서까지 넘어선 역겨움, 소설 <향수>에서 그르누이가 아름다운 여성들을 죽여 얻은 궁극적 美의 향수를 몸에 끼얹고 노숙자들에게 뜯어 먹히는 그런, 당혹스럽고 기괴한 순간에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질서까지도 넘어서야, 뼈와 살과 피와 장기에 불과한 인간 존재의 민낯을 직시하게 되는 걸까.

폭력이 선이 될 수는 없으나 미는 될 수 있다. 아름다운 여성이 모피를 입고 채찍을 내리쳐 감각적 쾌락을 준다는 소설의 설정은, SNS에 난무하는 '이성을 사로잡는 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적당한 휴지기와 읽씹으로 연락의 주도권을 잡는 '권위'가 모피고, 상대를 안달 나게 하기 위해 차갑게 관심을 끊어내는 '무시'가 채찍이다. 이런 전략을 쓰는 이성과 사랑에 빠졌다면 이것이 마조히즘적 기쁨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진정 원하는 것인지, 원하는 기분에 빠진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의 가치와는 별개로,  사랑의 아름다움에 중독된 인간은 모두 다소 마조흐이자 사드이므로.



<모피를 입은 비너스>,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p104 사랑은 미덕이나 이익 같은 것을 따지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하고 용서하고 모든 것을 참는다. 그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이끄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발견한 상대의 장점이나 결점이 우리로 하여금 몸을 바치게 하거나 아니면 뒤로 선뜻 물러서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이끄는 것은 달콤하고 멜랑콜리하고 신비로운 힘이다. 그때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기를 그친다. 우리는 그저 그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떠돌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는다.

p154 그때 사형집행인이 내 얼굴을 때린다. 아니다, 그것은 사형집행인이 아니라 반다다. 그녀는 내 앞에 화난 표정으로 서서 어서 모피 외투를 내놓으라고 한다. 나는 당장 그녀 옆으로 가서 그녀에게 모피 외투를 입혀 준다.
 풍만한 몸매의 아름다운 여인에게 모피를 입혀 주고 그녀의 목과 멋진 팔다리가 귀하고 부드러운 모피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느끼고, 출렁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음 손으로 잡아 옷깃 밖으로 내놓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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