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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페르소나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닐 올리버

by 김반장

길거리에서 몇 시간 동안 울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경찰관 도움도 마다하고 계속 울었다. 젊은 여자 하나가 말을 걸었지만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폐지 줍던 노인이 옆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태우다가 갔다. 여자는 누웠다가 앉았다가 다시 누웠다. 길바닥에서 하염없이 우는 여자를, 나는 6층에서 지켜보았다.

딸이 귀가하지 않았다는 112 신고를 받자마자 이 여자라고 직감했다. 왜인지는 모른다. 드디어 여자에게 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토사물에 누워 나에게 착한 척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꽤 예리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84세 노인이었다. 24시간 아파트 경비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딸이 집에 없어 112 신고를 했다. 딸은 우울증이 심해 가끔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잔뜩 취해 온다고 했다. 딸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아버지도 그녀 옆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토사물에서 구르던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차에 태워 집으로 가는 내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유일한 가족이다. 아버지는 밤새 일해 생계를 유지한다. 딸도 일이 있지만 규칙적이지는 않다. 딸은 하고픈 말이 있는 듯하다가 말 대신 토를 뱉었다.

구불거리는 골목을 지나 오래된 아파트에 도착했다. 여자를 메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3층 집 앞에서 아버지는 비밀번호를 두 번 틀렸다. 문이 열리자 불 꺼진 어둠으로 여자가 튀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뒤로 돌아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토악질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삶이 종종 있다. 지독한 것은 토사물이 아니라, 삶이다.

이 지독한 것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보면서 찌푸려서는 안 된다. 그들의 혼란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그들의 혼란한 감정을 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내게 허락된 삶의 단편에서 정(貞)하게 살아가는 데, 내가 딛고 서 있는 유구한 역사를 보는 게 도움이 된다.



< #잠자는죽음을깨워길을물었다 >, #닐올리버

p160 예나 지금이나 망각은 밀물처럼 밀려든다. 신석기시대 농부들은 기껏해야 수천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누군가 죽으면 그의 유골을 돌로 만든 상자에 보관했고, 나머지는 들판에 내버려 두었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기억하고자 애썼지만, 기억은 오래갈 수 없었고 오래가지 않았다. 사후에도 기억되고자 하는 열망은 헛된 일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우리 역시 잊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사라질 것이고 우리를 알고 사랑한 이들 역시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잊힐 것이다. 우리는 그저 이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삶에 충실해야 한다.

p246 와이라카는 자신을 인류의 기억 속에 아로새겼다. 여성을 속박하는 전통과 엄격한 규율의 세계에서 자란 그였지만, 필요하다면 저항해야 한다는 사실을, 질책과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더 중요한 일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집단적 사고에 치우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으로 존재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고유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를 위해 행동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와 당신의 생각과 행동은 이 세계를 더 차갑고 견디기 힘든 곳으로 만들 수도 있고, 혹은 더 따뜻하며 견뎌볼 만한 곳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각자의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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