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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Nov 03. 2017

인생, 춘설차 한 모금만큼이나 향기로웠던가?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

진도대교 울돌목을 가로질러 늠름하게 서있는 진도대교. 진도대교 없는 진도는 이제 상상할 수 없다.              ⓒ 진도군청

강과 바다가 마구 뒤엉켜 어디가 강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를 남도의 끝자락. 차는 영산강 하구언을 지나 화원반도의 너른 들판을 시원스레 달린다. '운림산방'으로 가는 길. 예전 같으면 목포에서 배를 타거나, 강진 해남을 거쳐 빙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피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방조제 덕에 화원반도를 가로질러 곧장 달려갈 수 있으니 진도도 이제 그렇게 먼 길만은 아니다. 


1월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차창 밖으로 펼쳐진 남도의 산하는 온통 부드러움 천지다. 산도 부드럽고 바다도 부드럽고 그 바다를 따라 난 길도 부드럽고…. 나이가 들수록 강하고 화려한 것보다는 부드럽고 소박한 것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유독 나만의 현상은 아닐 게다. 


울돌목을 가로질러 아담하게 서있는 진도대교를 지나 '녹진전망대'에 오르니 올망졸망 흩어져 있는 섬과 그 섬들을 껴안고 흐르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너무도 아늑하고 평화로운 정경에 이곳이 정말 충무공이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왜선을 궤멸한 명량해협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내려오면서 들으니 예전에는 울돌목의 사나운 물소리가 20리 밖까지 울려 퍼졌으나 진도대교 공사 후에 울음소리가 뚝 그쳐버렸다고 한다. 진도읍을 지나 삼별초의 원한 서린 왕무덤재를 넘어서자 멀리 운림산방이 고즈넉한 자태를 드러낸다. 


진도 사람들은 이곳 사천리(斜川里)를 비끼내골이라고 하는데 첨찰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이 동리 앞을 비껴간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도 하고, 혹은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에 쫓기다 이곳에서 일대 격전을 벌였는데 하천이 피로 물들어 '피끼내'라 부른 것이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소치의 옛집 기둥에 추사의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 주련이 걸려있다.ⓒ 진도군청

운림산방은 조선 헌종 조(憲宗朝) 남종 문인화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소치(小痴) 허련(許鍊)이 여생을 보낸 곳이다.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허련은 젊어서부터 해남 강진 등을 왕래하며 그림 공부를 했는데, 당시 해남의 녹우당은 조선조 화단의 삼재(三齋)로 일컬어지는 공재(恭齋) 윤두서를 비롯해 윤덕희·윤용 등을 배출한 명문가로 진귀한 명품과 화첩 등이 풍부했다고 한다. 


허련은 28세 때 대둔사 일지암의 초의선사를 찾아가 서화를 배웠으며 33세 때에는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를 만나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게 된다. 그림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강한 의지로 시(詩), 서(書), 화(畵)에 두루 능해 삼절(三絶)의 호칭을 얻게 된 그는 40세 되던 1847년 7월에는 낙선재에서 헌종을 알현하고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후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정학연 등을 비롯한 권문세가들과 교유하면서 화가로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허련은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아래에 터를 잡고 화실을 만들어 창작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내게 된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허련으로부터 시작된 화업(畵業)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소치는 미산(米山) 허형(許瀅:1861∼1938)을 낳고, 미산은 남농(南農) 허건(許楗:1908∼1987)과 임인(林人) 허림(許林:1917∼1942)을 낳고, 임인은 임전(林田) 허문(許文:1941∼ 현재)을 낳으니,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화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남농의 손자 허진(許塡:1962∼현재)까지 포함하면 무려 5대에 걸쳐 가업이 계승되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무등산 춘설헌(春雪軒)의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 역시 미산에게 그림을 배운 겨레붙이라고 한다. 의재는 무등산 자락에 집을 짓고 평생 차와 그림을 벗하며 살았는데, 문득 그가 늘그막에 병상에서 남긴 한마디가 귓전을 울린다. 


나를 따르던 제자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병든 나를 찾아와 준다. 그들은 춘설헌 남향 방에 누운 나를 보고, 나는 그들에게 춘설차를 한 잔 권한다. 나는 차를 마시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내 한평생이 춘설차 한 모금만큼이나 향기로웠던가를 생각하고 얼굴을 붉히곤 한다. 

'내 인생이 춘설차 한 모금만큼이나 향기로웠던가?' 참으로 대가다운 기품이 느껴지는 한마디다. 각설하고 허련의 호 '소치(小痴)'는 추사 김정희가 원나라 4대 화가 중 한 사람인 황공망의 호인 '대치(大痴)'를 본떠 지어준 것이라 하고, 당호 '운림(雲林)' 역시 원말 4 대가의 한 사람인 '예찬'의 호를 취한 것이라 한다. 


소치와 운림이라는 당호는 허련이 추구했던 예술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는 화가로서의 기량보다는 가슴속에 이루어져 있는 심의(心意)를 더 중시한 남종문인화의 충실한 계승자였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초연 물외(超然物外)의 탈속적 경지를 추구한 화가였던 것이다. 


이를 대변하듯 운림산방 입구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우뚝 버티고 서있다. 소나무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그만 연못이 나오는데, 연못 가운데는 자연석을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과 연분홍의 배롱나무꽃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고 하나 겨울이어서인지 약간은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운림산방 본채로 들어서니 ㄷ자형의 기와집이 날렵하게 서 있는데 제일 먼저 의재 허백련이 쓴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건너편 연못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소치 노인 생전의 풍경들이 하나둘 눈앞을 스쳐간다. 쌍계사의 저녁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노을 짙은 화실에 앉아 묵향 삼매에 빠져든 노화가의 모습! 시흥을 이기지 못한 나그네는 문설주에 기대어 시 한 수를 읊조려 본다.


조각구름

한가로이

허공을 그리고

숲 속에

오래된 집 하나

노을 속에 서 있네

절집이

멀지 않아

종소리 들리는데

방안에는

묵향 삼매에 빠진

노옹(老翁)


雲片悠悠畵半空

林間古屋夕陽中

山門不遠鐘聲到

房裏墨香三昧翁

전라남도 기념물 제51호인 운림산방은 조선 말기 남화(南畵)의 대가이던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49세 때인 1857년(철종 8)에 귀향하여 건립한 것이다. ⓒ 진도군청

건물 기둥에는 주렁주렁 주련(柱聯)이 달려있는데 대개가 추사의 글씨들이다.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이라.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식은 두부와 오이무침 생강채요, 제일 좋은 모임은 아내와 아들 딸, 손자 손녀와 함께 오순도순 지내는 것이네.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 한두 달 전 전쯤에 썼다고 하는 이 대련에는 결코 순탄치 않은 인생 역정을 거치면서 얻은 절절한 깨달음이 배어있다. 만안전석과 같은 산해진미가 아니라 두부국에 오이소박이 하나 달랑 얹은 소박한 밥상이야말로 이 세상 최고의 밥상이며,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 손자 손녀를 거느리고 화롯가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최고의 파티라는 것이다. 


본채를 나와 초가지붕을 인 살림채와 사당을 둘러보고 왼편에 있는 소치기념관으로 들어가니 낯익은 그림 하나가 건물 중앙에 걸려있다. 이름하여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소치가 57세 되던 해 여름에 그린 이 작품은 이곳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소재로 한 것으로 원본은 현재 서울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부채의 중앙부에 두어 채의 집과 몇 그루의 나무를 그리고 그 위에 산줄기를 배치하였는데 이 같은 산수화의 구도는 전형적인 남종화풍이라고 한다. 그림 위쪽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화제(畵題)는 남송의 문학가인 나대경의 <학림옥로>에 실려 있는 글인데,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은자(隱者)의 삶을 노래한 절창으로 그림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비록 진품은 아니지만 소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선면산수도>를 감상하고, 화제(畵題)를 음미하며 잠시나마 세속의 때를 씻어낼 수 있으니 이만하면 천리 길의 먼 여정이라도 그 노고가 아깝지 않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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