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기행
"기껏 스키장에 와서 바다 구경 가자는 사람이 어딨어요?"
툴툴거리는 아내와 아들 녀석을 이끌고 무작정 기차역으로 향했다. 스키장에서 차로 5분, 과거 1960, 1970년대 석탄 산업이 호황일 때 이곳 강원도 사북 고한 지역은 지나다니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사람과 물자가 넘쳐 나는 고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차역은 작고 한산하다. 역사 안에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앞에 두고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 부부와 우리 가족 그리고 대학생인 듯 보이는 젊은 여성과 시골 노인 서넛이 전부다.
10시 53분 발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가 20분 연착된다는 안내방송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일본인 부부는 기차 시간에 맞춰 플랫폼으로 향한다. 무료함도 달랠 겸 우리도 플랫폼으로 나가 기념사진을 몇 컷 찍고 나니 역사 한쪽에 기차를 개조해 만든 야생화와 탄광 사진 전시관이 눈에 들어온다.
석탄 산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위축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미명 하에 건설된 카지노와 스키장이 지역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무쪼록 최근에 기획되고 있는 삼탄 아트마인이나 야생화 축제 같은, 폐광시설을 활용한 각종 행사들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와 더불어 과거 1960, 1970년대 산업화의 주역이면서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삼탄 광부들의 치열했던 삶 또한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래서인지 복수초, 산솜방망이, 며느리배꼽 등 함백산 자락의 야생화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20여 분을 연착한 기차가 우렁찬 기적을 울리며 역사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두어 칸 정도의 미니 열차를 생각했는데 객차는 다섯 량이 넘고 차 안에는 의외로 승객이 많다. 고한역을 출발한 기차는 한 때 우리나라 최장(最長) 터널이었다는 정암터널을 통과하여 해발 855미터 추전역을 지난다.
싸리밭 골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추전역(杻田驛)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이지만 아쉽게도 무궁화호 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다. 태백역으로 향하는 길에 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매봉산 풍력발전기가 산 능선을 타고 우뚝 솟아있다. 제 아무리 청정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라지만 해발 1300미터 고지의 백두대간에 줄지어 솟아있는 발전기는 잘 정비된 4대 강(?)의 모습을 보는 듯 눈살이 찌푸려진다.
태백역에서 잠시 정차한 기차는 문곡역을 거쳐 동백산역으로 향한다. 문곡역은 태백선의 마지막 역으로 동백산역부터는 영동선에 속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동백산역을 지나 통리역부터 나한정역까지는 우리나라 철도 유일의 스위치백 열차가 운행되는 구간이었지만 아쉽게도 지반 붕괴 위험 등을 이유로 운행이 중단됐다. 대신 지금은 도계역까지 16.24㎞의 솔안터널이 개통되었다.
솔안터널은 해발 1171m의 연화산을 한 바퀴 빙 돌아나가는 형태의 루프형 터널인데 이는 동백산역과 삼척시 도계역 사이의 표고차(387m)를 극복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한다. 껌껌한 터널을 15분 여를 달리고 나서야 기차는 도계역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 유일의 스위치백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통리, 심포리, 흥전, 나한정 등 산골 간이역과 주변 정취를 감상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차창 밖으로 여기저기 새롭게 개설되는 도로와 교량들이 눈에 띈다. 굽이굽이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아슬아슬한 고갯길들은 하나둘 사라져 가고 산 중턱을 관통하는 터널과 계곡을 가로지르는 교량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주변의 산세나 자연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졸속품들이다. 어쩌면 그것은 참된 강원도가 아닌지도 모른다. 개발은 하되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강원도의 선과 색이 살아있는 친환경적인 개발이 되었으면 한다.
기차는 심산유곡(深山幽谷)을 벗어나 어느덧 해안선을 따라 달리고 있다. 흰 백사장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는 쉽게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쉼 없이 파도를 밀어 보낸다. 마르시아스 심이 그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한 잔의 술, 한 잔의 소주를 연상케 한다'라고 했던 바다가 바로 거기에서 출렁이고 있다.
"그렇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둘러 독한 술로 몸을 적시고, 방파제 끝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토악질을 하고,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중략) 가끔은 돌아오는 이도 있었다. 플라타너스 낙엽을 밟고 서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아파트 베란다에 나서서 망연히 하늘을 쳐다보다가 문득 무언가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면, 그들은 이 도시를 기억해 냈다. 바다가 그리워지거나, 흠씬 술에 젖고 싶어 지거나, 엉엉 울고 싶어 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허둥지둥 이 술과 바람의 도시를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묵호는, 묵호가 아니라 바다는, 저고리 옷고름을 풀어헤쳐 둥글고 커다란 젖가슴을 꺼내 주었다. 그 젖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고 도리질하며 울다가 보면, 바다는 부드럽게 출렁이는 젖가슴으로 돌아온 탕아의 야윈 볼을 투덕투덕 다독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얘야, 떠나거라. 어서 떠나거라, 얘야.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자아, 어서 인간의 바다로 떠나거라." 마르시아스 심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
나에게도 뭔가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흠뻑 술에 젖거나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강릉까지 끊은 기차표를 무시하고 곧장 묵호역에서 내렸다. 기차는 정동진을 거쳐 강릉까지 계속 해안선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바다를 구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지만 정동진은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묵호항의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불쑥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새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어 그 옛날 새나루 또는 오이진(烏伊津)이라 불렸던 이곳은 바다 빛깔이 먹물 같다고 해서 묵호(墨湖)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려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항구를 가로질러 어시장 쪽으로 향하니 작고 아담한 ㄴ자형 시장에는 오징어며 대게 등 각종 싱싱한 해산물이 그득하다. 근처 횟집에 들어가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을 주문하자 인심 좋은 사장님이 어느새 과메기며 물회 등을 서비스로 한 푸짐한 술상을 차려 내온다.
예전 같으면 어느 집 빨랫줄에나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열려 있고 집집에서 피워 올린 꽁치 비늘 타는 냄새가 하늘을 뒤덮었다는 곳. 후미진 구석마다 쌓여 있던 생선 내장의 악취. 비 온 다음날의 시뻘겋게 상한 오징어. 건조장 바닥에서 떨고 있던 개. 양동이로 머리를 후려치며 싸우던 공동수도의 아낙네들. 욕설과 부패, 묵호의 모든 것이 그랬다고, 그것이 참다운 묵호였다고 하나 지금의 묵호는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보여 줄 게 없어 보인다.
술잔에 가득 술을 채운다. 어느새 먹빛 바다도 따라 술잔 속으로 들어오고 즉석에서 제조한 세꼬시 물회를 안주삼아 나는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 있을 참다운 묵호를 위하여 기꺼이 잔을 비웠다. 묵호에 와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은 등대가 있는 붉은 언덕이다. 그곳에서야말로 참다운 묵호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논골담길 좁은 골목길을 따라 사람들은 부지런히 등대에 오르는 것이다.
나도 횟집을 나와 먼 심해선 밖 수평선, 망망대해를 향해 우뚝 솟아있는 등대에 오르니, 사방은 온통 푸른 바다뿐!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바다, 이 바다야말로 참다운 묵호의 모습은 아닐는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의 끈 하나 움켜잡고 고기잡이를 하고 오징어 배를 가르며 악착같은 삶을 이어온 바다. 만물 슈퍼 주인아저씨의 <늙은 어부의 노래>가 날이면 날마다 울려 퍼졌을 바다. 지금은 논골담길 벽면 한 귀퉁이에 쓸쓸히 정박해 있는 오징어잡이 배가 언젠가 만선의 꿈을 안고 떠나갈 그 바다 어디쯤에 참다운 묵호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