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국부랑자의 뮌헨 여행기
독일에 온 지 세 달이 지나서야 시험을 핑계 삼아 독일보다 유명한 독일의 도시 뮌헨, 맥주의 천국 뮌헨, 유럽 최고의 축구팀 FC 바이에른 뮌헨의 홈...등의 수많은 수식어가 존재하는 곳 뮌헨, 스스로를 Munich(무니히)라고 부르는 곳에 다녀왔다.
호프브로이, 세상 그 어떤 호프집보다 더 유명한 맥주집이다. 전 세계의 TV를 통해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그곳의 맥주는 내 기대감을 한 껏 드 높였다. 어떤 풍미로 내게 새로운 경험을 줄 것인지 너무 궁금한 곳이었다. 첫인상은 호프브로이를 향해 가는 그 길목에서 시작했다. 이미 많은 축구팬들이(하필이면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어서 길목을 장악하고 양 손 가득 맥주를 들고 응원가를 불러대는 모습이 참 인상 깊으면서도 여행자로서, 이방인으로서 가지게 되는 미지의 두려움도 피어났다.
그 많은 인파들을 뚫고 도착한 호프브로이.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 분위기는 TV와 같아도 너무 같았다. 정말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수많은 맥주잔들이 오가며 한켠에서 연주하는 독일 전통 악단들의 선율까지도...
자리가 없어서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혼자 맥주를 즐기던 아저씨가 자긴 다 먹었으니 와서 앉으라고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나의 호프브로이에서의 첫 맥주가 내 눈 앞에 놓였다.
참으로 실망,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로는 위로가 안될 그 맥주의 맛. 내가 사는 동네의 양조장보다 못한 이 참담한 현실 앞에 내 눈 앞의 스테이크는 그저 고무조각에 불과했다.
이 날의 참담함은 다행히,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지인의 소개로 간 이름 모를 레스토랑에서 다시 맥주의 도시 뮌헨에 대한 애정으로 바뀔 수 있었다.
König Ludwig Weißbier, Dunkel(쾨니히 루드비히 바이스비어, 바이스둔겔) 두 잔의 맥주를 맛보았는데 바이스비어(일반 밀맥주)는 풍부한 과실 향과 특유의 묵직함으로 전형적인 밀맥주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처음 보는 바이스둔켈,, 여태 그냥 보리로 만든 둔켈은 수도 없이 마셔봤지만 밀로 만든 둔켈이라니???? 충격과 동시에 나오자마자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그냥 둔켈과는 달리 밀맥주 특유의 풍부한 향과 함께 둔켈의 쌉싸름한 맛이 마치 진한 캐러멜 향이 나는 와인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웨이터에게 이건 도대체 뭐냐는 식으로 쳐다보자 웨이터의 비릿한 미소와 함께 "Das ist ein bayerischer Kaffee!"(바이에른의 커피야! <이 촌놈아...>)라고 시크하게 말하고 휙.. 가버렸다.
누군가를 기억할 땐, 흔히 마지막 모습만 남아있다고 한다. 다음 옥토버페스트 전까지는 아마 바이스둔켈 강렬한 이미지로 맥주의 도시 뮌헨을 기억하지 않을까. 언제가 될지 모를 뮌헨으로의 맥주 기행은 분명 내 인생에 짧은 희극일 거라 믿어본다.
나에겐 두 번째였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절망의 늪을 본 것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한켠에 위치했던 이 작고 못 사는 나라에서...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을 나라에서 수십만 명이 죽어나간 그들의 아픔에 공감한 것도 처음이었으리라.
나는 또 무엇을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정착한 이 곳 독일에서 또 한 번 아픔을 보고자 했던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누군가의 뜻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차디찬 옥사에 갇혀서 고문당하고 죽어나간 그들의 이름이 인명사전, 아니 피학살 명부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현대의 첨단 기술로 사망자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은 아이러니를 넘어 멜랑꼴리로 다가왔다.
집단수용소(KZ : Konzentrationslager)의 절망스러운 모습을 보고 난 후에 마주한 것은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가로수길이었다. 너무 역설적인 길이라 걸어가기가 망설여졌지만 걸어보았다. 가는 길의 끝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다. 아마도 이 곳은 수많은 희생자들의 넋이 거닐며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전후에 새로이 심어지고 교회도 세워진 것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보았다.
그 교회 옆에 흐르는 작은 냇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던져놓은 동전이 있었다. 대게는 동전의 의미가 행운인데... 이 곳은 동전마저도 슬픈 노잣돈이 아닌가... 행운이나 행복을 기원하면서는 던져본 적도 없는 동전이었는데... 그 날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섰던 몇 안 되는 날이었다.
비극은 생각보다 우리의 주위에 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 역설적인 가로수길을 걸어 KZ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 선 큰 비석에 적힌 문구가 평화를 어떻게 얻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고 다시 한번 눈물이 흘러나오는 포인트였다. 그저 그 글귀를 여기 남겨본다.
“May the example of those who were exterminated here between 1933 and 1945 because they resisted Naziism help to unite the living in the defence of peace and freedom and in respect for their fellow man.”
–inscription in eight languages on a memorial to those who died at the Dachau, Germany
전날 집단수용소에서의 우울함을 뒤로하고 독일에서 손꼽히는 큰 호수가 있다고 하여 아침 일찍 S반을 타고 30분을 넘게 이동했다. 이름하여 Starnberger See(슈타른베르크 호수) ... 첫인상은 매우 평화로웠다. 나도 그 평화로움에 동화되고 싶어서 몇 안 되는 레스토랑에서 루콜라 피자와 가장 비싼, 아니 가장 설명이 길고 마음에 드는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시키고 호수를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호수에 따사로운 햇살마저 비추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이 곳은 독일의 가장 아름다운 성, 디즈니 성으로 불리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짓도록 했던 독일의 왕 루트비히 2세가 시체로 발견된 호수 앞이었다. 생각보다 이 호수의 수심이 깊지 않은 걸로 볼 때 분명 자살보다는 타살로 보는 견해가 많았을 것이다. 이 평온한 가운데 이런 섬뜩함이라니. 햇살은 분명 따사로웠는데, 이 호수에 대한 내 마지막 느낌은 서늘함이었다.
내 짧았던 여행에서의 뮌헨은 희극과 비극이 모두 존재하고 그 간극에 서서 때론 흥겹게, 때론 우울하게 살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