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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국부랑자 Jun 06. 2018

맥주계의 순혈주의자, 독일

독일 맥주에 관한 몇 가지 편견과 통계들 

 하이트, 카스처럼 밍밍하고 빠르게 사라지는 거품만 낀 맥주들을 마셔온 대한민국은 지금 맥주 열풍이다. 5년 전만 해도 수입맥주는 몇몇 독특한 취향을 가진 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렇게 작았던 수입맥주 시장이 지금은 너무 커져서 편의점에서도 수십 종류의 수입맥주를 살 수 있고 크래프트 비어 열풍까지 불고 있다. 그래서 맥주 하면 떠오르는 나라 독일에서 독일 맥주에 관한 몇 가지 편견과 통계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독일 맥주는 모두 맛있다?


독일 맥주의 맛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선 독일에 있는 브루어리(독일어로 브라우어라이)는 얼마나 될까?

독일의 연도별 브루어리 수(출처: Statista, 독일 함부르크소재 통계회사)

여기서 보듯이 대략 1400개 정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각 주별로 그 수를 나누어보면

2014년 독일 각 주별  브루어리 수(출처: statista)


 위 자료와 같다. 맥주의 도시로 알려진 뮌헨이 포함된 바이에른주(Bayern)가 623개로 대략 50%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필자가 살고 있는 헤센(Hessen)이 72개 정도로 5% 정도이다. 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구가 8천만이므로 인구 5만 명당 대략 하나의 와이너리가 있는 셈이다. 서울 인구가 천만이니까 서울에만 200개의 브루어리가 존재한다는 뜻과 같다.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이 각축전 속에서 어떤 맥주를 마셔야 할까? 독일에 여행 와서 마시고 가야 할 맥주는 무엇일까? 쉽게 생각하면 유명한 맥주를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착각일 수 있다. 맥주를 많이 마셔본 사람이 생산량을 기준으로 한 통계자료를 보면 이 점은 더욱 견고해진다.


대형 메이커의 맥주 생산량(출처: statista)

이 막대그래프를 보면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외팅거(Oettinger), 크롬바허(Krombacher), 비트부르거(Bitburger), 벡스(Beck's), 파울라너(Paulaner), 에어딩거(Erdinger) 등이 순위권에 있다. 실제로 유명한 맥주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맥주들인데 실제로 마셔보면 그 맛에 많이 실망하곤 한다. 물론 맥아의 비율이 낮은 한국 맥주보다야 진한 맛이 나는 맥주지만 큰 특색을 찾을 수가 없다. 특히 벡스, 빗부르거, 크롬바허 등은 한국 유학생들이 소맥이 그리운 날 찾는 맥주들이기도 하다. 또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Jever는"보드카를 탄 오줌을 마시는 것 같다"고... 이렇듯 유명한 것이 반드시 맛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기업의 생산설비와 가격적인 측면, 대중성 등이 이 통계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렇다면 우린 독일에서 어떤 맥주를 마셔야 할까?


 첫 번째는 지역맥주다. 그 지역의 이름이 붙은 맥주가 있다. 예컨대 유명한 관광도시 하이델베르크에 가면 Heidelberger가 있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를 먹어보는 게 좀 더 유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경우는 반드시 맛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델베르거


 두 번째는 지역의 소규모 브루어리다. 구글에 지역명 + brauerei(양조장)을 함께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 평점이 높은 곳에 가면 대개의 경우 맛은 보장된다. 또한 전통적인 건물들을 개조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분위기도 좋다고 할 수 있다. 

다름슈타트에 위치한 Ratskeller


 세 번째는 맥주의 한 장르를 개척한 곳의 원조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하노버 근교의 고슬라르의 고제맥주, 밤베르크에 있는 라우흐비어로 유명한 슈렌케를라, 뮌헨에 있는 밀맥주 바이엔슈테판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경험 삼아 마셔보면 좋은 특별한 맥주들이다. 

밤베르크에 위치한 Schlenkerla


독일 사람들의 맥주 사랑은 세계 제일?


 간혹 티비나 인터넷에서 비친 독일인들의 모습이란 배불뚝이 아저씨가 본인 얼굴만 한 맥주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켜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모습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생각보다 배불뚝이 아저씨는 잘 안 보이고(동네 술집엔 많다) 얼굴만 한(1 리터 잔) 맥주잔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프로스트!!(Prost, 건배)를 외쳐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파티를 할 때에는 맥주를 정말 짝으로 엄청나게 산다. 차 없을 땐 그걸 운반하는 게 가장 큰 일거리가 될 정도이다. 축제라도 열리거나 축구라도 하는 날에는 온 길거리가 맥주병 파편으로 나뒹굴고 손에는 맥주병 하나쯤 있어줘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역시 축구 아니 맥주 세계 최강국답다. 그러나 반전은 독일의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세계 1등이 아니란 점이다. 


유럽국가들의 맥주소비량(출처:statista)


 세계 제일은 바로!! 체코다. 독일어로 Tschechien이라고 적혀있는 국가. 독일을 무려 40% 차이로 압도하고 있는 국가는 바로 체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맥주의 종류는 라거나 필스너인데 이 중에서 필스너를 만들어낸 곳이 바로 체코의 필젠 지역이다. 이처럼 독일이 맥주를 엄청나게 소비하고 있지만 세계 최강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두길 바란다. 그리고 독일은 사람들 음료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다. 동네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도 각 장르별 음료와 술은 대부분 구비하고 있다. 탄산음료와 소주, 맥주만 제공하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특히나 독일은 화이트 와인의 유명한 생산국으로 와인도 엄청나게 소비한다. 


독일에는 다양하고 특이한 맥주가 많다?


 매우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독일에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1400여 개의 브루어리가 각자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맹점이 하나 있는데 일명 "맥주 순수령"이라 불리는 바이에른의 공작 알브레트 4세가 1487년에 내린 법령의 하나로 맥주에는 물, 보리, 홉만 들어가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맥주의 질이 비약적으로 좋아지고 정부의 감시 아래 통제될 수 있었다. 비록 1993년에 일부 설탕, 밀맥아 등을 첨가할 수 있는 쪽으로 폐지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지금 독일 맥주의 명성을 만든 것은 바로 이 맥주 순수령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순수령은 바이에른을 제외한 많은 곳에서 맥주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야기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외에도 고수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나 지역 특산품을 이용한 맥주들이 쇠퇴하도록 만들었다. 대표적인 예로 고슬라르의 고제 맥주가 있다. 고수를 넣어서 만든 독특한 풍미의 맥주가 이 법령으로 인해 생산을 중단했다가 최근에 다시 그 후손이 양조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슬라르의 고제


 이렇듯 맥주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불법 첨가물을 제제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다른 재료의 다양성마저 집어삼킨 이 법령은 독일이 맥주의 심볼이 되도록 만들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벨기에나 미국의 맥주에 점차 밀려나는 모습을 보이게 만든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독일은 맥주계의 순혈주의자를 자청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 순혈주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갈지 기대하면서 오늘도 맥주 한 잔을 기울여보자. Prost! zum Wo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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