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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Feb 29. 2024

요즘 트렌드는 네가 바르는 거 나도 바르기

틱톡의 유행, 시작도 전에 밀려난 맞춤형 화장품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를 위해



나의 취향과 필요를 모두 담아
오직 나만 쓰라고 만들어진 제품.

이건 날 위한 물건이니까
남들은 나와 똑같은 걸 가질 수 없어.


마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 케이크 또는 DIY 액세서리 판매 문구에서 따온 것 같은 뉘앙스다. 답은 다름 아닌 맞춤형 화장품에 대한 내용이다.


가파른 성장세를 거쳐온 한국의 화장품 산업에서, 맞춤형 화장품은 블루오션으로 손꼽혔다. 개인 취향을 타는 소모품이자 프리미엄화가 가능한 소비재란 것만으로도 가치가 상당한데, 개인 맞춤 화장품? 그야말로 초개인화의 끝판왕인 셈이었다.


전세계 맞춤형 화장품 성장 전망


그러나 한국은 세계 최초로 맞춤형 화장품을 제도화한 나라임에도 조제 관리사의 취업률은 아주 미미하다. 제품 수요 자체도 기성 제조품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 제도의 유명무실화가 걱정되는 시점이다.


외국에 비하여 한국은 제도화에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틱톡이 등장했다.


틱톡에서는 모방이 핵심이다. 비빔면을 카메라 앞에서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는 영상을 올리면, 다른 누군가도 똑같은 비빔면을 차려와서 먹는 영상을 올린다.

특별하고 전문적일 필요 없이 그저 네가 한 것처럼 나도 너와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영상의 주인공, 장소와 시간은 다르겠지만 같은 행동을 하는 영상들이 수십, 수천 개다.


상황이 이러하니 맞춤형 화장품은 그 개인화 속성만 거듭해서 장점으로 강조해서야, 틱톡으로 대표되는 현 트렌드와 대척점에 있다는 것만 공고히 하는 꼴이다. 



야, 너도? 나두!


초창기 SNS의 부흥은 나의 컨텐츠를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의 해외 여행기, 내 브라이덜 샤워 영상을 개개인에게 일일이 보내는 게 아니라 내 계정에 업로드해서 '각자 알아서 보게끔 두는' 방식은 SNS의 가장 강력한 기능이었다.


그러나 엔데믹 시기 유튜브, 인스타그램은 사회적 관계망을 벗어나 엔터테인먼트 앱으로서 진화한다. 보게끔 두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행동을 유도'하는 틱톡으로 말이다.



나는 네 화장품 못 사니까 쇼츠 안 찍어


21세의 여대생 김아름 씨는 쇼츠를 보는 걸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 아름 씨는 여타 화장품을 샀을 때처럼, 방금 산 맞춤형 에센스를 틱톡 쇼츠로 만들어 올리고 싶다. 


만약 틱톡으로 제품을 어필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이 질문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3분 안에 화장을 끝내는 틱톡챌린지(출처: 구글 검색)

왜냐면 영상에서 나온 화장품은 맞춤형 화장품이니까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타인이 내 쇼츠를 따라 할 수가 없고, 챌린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 맞춤형 화장품이 누가 '보더라도' 아주 특이하고 흥미롭지 않은, 그냥 평범한 화장품이라면? 쇼츠를 찍으려던 아름씨는 '애초에 내가 이걸 왜 틱톡에 올리려고 했지? 아, 괜히 샀네' 라는 생각이 든다. 게임 오버. 


결국 맞춤형 화장품의 본질은 물론이고, 섬세한 커스터마이징(custermizing), 각인 서비스 모두 지금의 트렌드 리딩 집단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다. 다시 말해, 재미가 없다. 


맞춤형 화장품의 정의(출처: 식약처)


아이고 의미 없다


 숏폼 컨텐츠는 한동안 마케팅 영역을 장악할 것이고, 화장품도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맞춤형 화장품을 재정의하거나, 아니면 다시 STP 분석을 해야지 블루오션이라던 맞춤형 화장품 산업을 써먹든 말든 하지 않을까 싶다.


뷰티 튜토리얼은 화장품 관련 영상 컨텐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컨텐츠다. 뷰티 카테고리라고 해도 다른 주제랑 다를 건 없다.


화장품의 효과와 촉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청각적 효과가 동원될 것이다. 무엇보다 숏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해가 쉬워야' 한다. 그러니 어떤 주제이건 필연적으로 단순하고, 제한적인 정보로만 구성된 컨텐츠가 나올 수밖에 없다.


유튜브가 그랬듯이, 틱톡에서도 화장법 영상이 많다. (출처: 구글 검색)


한편 제형 연구원인 내 입장에서는 화장품이 갖는 다양한 면들을 잘 알기에, 과하게 일면만 부각된 숏폼을 볼 때마다 어딘가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화장품을 바를 때의 느낌은 바르는 과정을 세분화하면 할수록 아주 다양해진다. 처음 손이 내용물에 닿는 순간, 얼굴에 바르는 도중, 내용물이 아주 얇아졌을 때, 흡수가 다 되고 난 뒤… 다양한 시점별로 언제는 미끌거리고, 또 언제는 뻣뻣해지는 등 천차만별이다.

 


심장을 향해 쏴라


이렇게 제품은 다양한 양상을 갖지만 틱톡은 이를 전달할 생각이 없다. 왜냐면 유저가 볼 생각이 없으니까. 화장품을 사려는 틱톡커들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스킨의 사용감과 피부의 촉감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틱톡에서 #beautytok을 찾아보면 알 것이다.


틱톡에서 beautytok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쇼츠들(출처: 틱톡)

 알록달록한 섀도우,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얼굴들로 가득하다. 마케터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0.7초’ 뿐. 제품의 수많은 요소 중에서도 오직 딱 하나만 담을 수 있다. 틱톡커는 인내심이 없다.


트렌드 주도 세대가 숏폼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간을 아끼려는 게 절대 아니다. #gettothepointbro라는 틱톡 크리에이터는 영상을 요약해 준 뒤 ‘당신은 내 덕분에 5분 24초를 아꼈다.’는 포맷의 영상을 만든다. 그러나 숏폼은 틱톡이 가진 하나의 특징일 뿐, 틱톡이 유행하는 이유는 아니다.


'gettothepointbro'로 단 2주 만에 조회수 2,200만개를 달성한 틱톡 크리에이터 Eros Brousson (출처: 구글 기사)



쉽고 빠르게 


틱톡의 흥행과 짧고 연쇄적인 컨텐츠 소비가 증가하는 원인 중에는 도파민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설명도 쉽다. 쾌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레벨이 높아질수록 사람은 더 많이, 더 빠르게 도파민을 충족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연쇄적으로 컨텐츠를 시청한다.


찬 물 입수는 높아진 도파민 레벨을 낮추는 강력한 방법의 하나로 소개되었다.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미국의 렘키 박사는 21년에 저서 '도파민네이션'에서 건강한 삶을 위해 도파민의 레벨을 낮출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 언급했다.  책은 출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국내에는 22년 3월에 출간됐으나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온라인 서점 TOP 재진입 등 꾸준한 관심을 받 있다.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라는 다프트 펑크의 노래 제목은 Harder(열심히, 어렵게)만 Easier(쉽게)로 바꾸면 딱 세태에 들어맞는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이 더 지나면, 4개의 단어 중 어떤 단어가 바뀌게 될까?


다프트 펑크(Daft Funk)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에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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