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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 스페이스 Feb 02. 2018

오귀스트 로댕@필라델피아 로댕 뮤지엄


뉴욕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2월 4일까지 열리는 로댕 특별전을 포스팅하고 나니 필라델피아 로댕뮤지엄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6천여점에 달하는 조각품과 드로잉들을 소장한 파리 로댕 뮤지엄 다음으로 로댕의 작품들을 가장 많이 보유한 뮤지엄은 미국 필라델피아 로댕 뮤지엄이다. 이곳은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 분관으로 하나의 입장권으로 이틀에 걸쳐 두 곳의 입장이 가능하다. 로댕 뮤지엄이 처음 오픈한 것은 1929년이었고, 2012년 재단장을 거쳐 아주 멋진 모습으로 재개관했다. 입구에는 로댕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 The Thinker, 1879] 이 멋진 모습으로 앉아있다. 이 작품은 로댕의 [지옥의 문 The Gates of Hell, 1880-1917] 에 있던 작품으로 원래 제목은 [시인 The poet] 이었다. 맨 위에서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뮤지엄 입구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있는 거대한 [지옥의 문], 하나하나 자세히 보았다. 맨 위에 세가지 악귀를 나타낸 [세 망령 The Three Shades, 1880-81] 이 있고, 그 아래로 지옥을 경험하는 수많은 고통의 모습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단테의 [신곡 The Divine Comedy] 에 탐닉했던 로댕은 작품의 이름을 '지옥의 문' 이라 지었고, 그의 작품들의 상당수가 이 작품 속에 포함되어있다.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에도 심취했기에 그 작품 도 포함되어있다. 로댕이 처음 문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1871년 파리장식미술관의 문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에 의해서였는데 로댕은 그 어느 것보다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 로댕은 1880년부터 191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0개 이상의 문을 조각했다. 지옥의 문은 전 세계 일곱 개가 남아있는데 미국에는 이곳과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에 있다.



입구로 들어가면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은 [순교자 The Martyr, 1899] 이 작품도 지옥의 문에 들어가있던 작품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발가벗은 여인의 요염한 자태인가 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뒤틀린 팔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와 더불어 세계 3대 건축가로 흔히 일컬어지는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은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1840년은 에밀 졸라, 클레드 모네 등과 한께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이 태어난 해였다. 로댕은 열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은 관계로 전문적인 학교를 다닐 수는 없었다. 청소년 시절 국립미술학교 공모전에 낙선하고, 곧 이어 아버지의 실직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이듬해 누나의 죽음으로 세상에 회의를 느껴 수도원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삶의 절망과 우울을 견딜 방법으로 그림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듣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작품에 몰두한다. 1864년 파리의 가장 유명한 공방의 수석조각가로 일하던 중 재봉사이던 로즈 뷔레를 만나고 동거에 들어간다. 187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일을 하고 돈을 모아 1875년 이태리 여행을 하면서 미켈란젤로와 여러 조각가들의 작품으로부터 큰 감동을 얻는다. 


파리로 돌아와 [청동시대 The Age of Bronze, 1876] 을 제작하게 된다. 그 작품을 국가가 사들이면서 점점 명성을 얻어 1884년에는 미국의 가장 유명한 초상화 화가 존 싱어 서전트가 로댕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로댕은 사전트를 '우리 시대의 반다이크' 라고 핑송할 정도로 그의 그림을 좋아했다. 이어 로댕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큰 성과를 이루고 돌아왔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그를 찾아왔다. 1905년부터 2년간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함께 거주하게 되는데 릴케는 로댕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1904년 파리로 건너왔다. 로뎅과 함께 머무는 동안 로뎅의 비서노릇을 하며 파리의 우울함과 고독을 담아 쓴 유일한 소설이 바로 그 유명한 [말테의 수기] 였다. 작품에서는 당시 파리의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다. 프랑스 정부와 딜을 해서 1908년 오늘날 로뎅 뮤지엄이 된 비롱 저택에 들어가게 된 것도 릴케의 조언이었다.


로댕의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키스 The Kiss, 1886] 또한 '지옥의 문' 하단에 들어갈 작품이었는데 '지옥의 문' 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작품이라 빼서 단독작품이 되었다. 처음 작품 이름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신화 속 인물,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신곡 ] 삽화 가운데 '연인들의 회오리 바람' 에 나오는 '프란체스카 Francesca da Rimini 였다. '지옥편 5곡' 에 등장하는 프란체스카는 검은 회오리바람이 부는 지옥으로 몰고온 운명의 입맞춤에 대해 이야기 한다. 프란체스카는 유부녀였고, 처음에 남편인 줄 알았던 시동생 파울로를 사랑했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둘은 '랜슬롯의 사랑이야기' 를 읽다 입맞춤 하는 대목에서 감정이 격해져 입을 맞추었고, 그 순간 남편이 쏜 화살에 맞아 함께 지옥불에 떨어졌다. 이 작품이 진품인지 궁금해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뮤지엄에서 단 이 작품만 진품이 아니라고 했다. 뒤에 보니 [Copy of Rodin, 1929]로 되어 있었다.



[The Kiss] 진품은 전 세계에 단 세 점이 남아있다고 했는데, 파리의 로댕 뮤지엄에서도 보았고, 지난 여름 서울 소마 미술관 테이트 명작전에서 보았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순회공연 중이었는데 마침 한국 방문 중이었고 참 운이 좋았다. [키스] 와 함께 까미유 끌로델의 [왈츠 The Waltz, 1888-95], 참 아름답다.



1883년 당시 열 여덞살이던 까미유 끌로델을 만나게 되고 조수로서 문하생으로 그리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 둘의 관계는 1898년까지 유지되었지만 그 만남조차 쉽지 않았다. 파리 로댕 뮤지엄에 전시된 [중년 The Age of Maturity, 1895] 를 보면서 온몸이 시려옴을 느꼈다. 무릎을 꿇은 채 애절한 모습으로 떠나는 남자를 잡는 젊은 여성과 늙은 마녀에게 끌려가듯 고개를 돌리고 따라가는 중년의 남자, 그녀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했던 내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작품은 바로 자신과 로댕과, 로댕의 아이를 낳아 기르며 헌신적으로 로댕을 뒷바라지했던 여인 로즈 뵈레 사이의 관계였던 것이다. 1917년 로즈 뵈레가 죽기 2주 전 53년간 동거를 마치고 결혼식을 올린다. 로댕은 그 작품을 보고 분노했다지만, 까미유는 자신의 애증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1898년 로뎅은 [작별] 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둘은 결별했다. 끌로델은 로댕과 헤어진 뒤 1943년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이후 끌로델의 동생이자 작가였던 폴 끌로델은 누나가 죽은 뒤 9년 뒤 로댕 박물관에 작품들을 기증하면서 누이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고 무척이나 애썼다. 내용은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영화에 상세하게 나와있다.



[빅토르 위고 상 Apotheosis of Victor Hugo, 1895] 또한 로뎅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레미제라블] 의 작가이자 프랑스의 국민영웅 빅토르 위고가 1885년 사망하자 프랑스 정부는 판테온에 위고 기념비를 세우기로 하고 조각을 만들 조각가를 로뎅으로 선정했다. 위고가 살아있던 1883년 위고를 무척이나 존경했던 로댕은 위고에서 모델이 되어줄 것을 여러번 간청했지만 위고는 거절했고, 대신 평소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은 허락한다고 했다. 그때 로뎅은 위고의 스케치를 했고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조각상 제작을 하게 된 것이다. 세 명의 뮤즈가 위고의 발 아래에 있다. 위의 영화에 보면 당시 위고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고 온국민의 사랑을 받았는지 잘 알 수 있다. 파리 보주 광장에 있는 빅토르 위고 하우스에서도 만날 수 있는 위고 조각상은 처음 뤽상뷔르 공원에 설치되었었다. 로댕은 특히 손에도 큰 집착을 보였고 수많은 손 작품을 남겼다. [무덤에서 나온 손 The Hand from the Tomb, 1914 ]



[동굴 속 젊은 엄마 Young Mother in the Grotto, 1885] 엄마와 아기는 로댕이 좋아했던 주제였다.



[줄스 바스티엥 르빠주 Jules Bastian-lepage, 1848-84] 가 보인다. 당시 아주 유명했던 화가로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잔다르크를 그린 작품 [Joan of Arc, Listening to the Voice, 1879] 가 걸려있다. 작품을 따라 그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두었다. 딸아이도 함께 앉아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음, 딸아이의 표현대로 뮤지엄에 기증하고 왔다.



뮤지엄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아 오래 걸리지 않는다. 기프트샵에는 다양한 조각모형들을 구입할 수 있다.



2017년은 그가 죽은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에 전 세계에서 다양한 작품전이 열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로댕과 클림트 공동전 'Klimt & Rodin; An Artistic Encounter' 전이 이번주 막을 내렸다. 2018년은 귀스타브 클림트의 사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클림트의 대표작도 [The Kiss, 1908] 이다. 클림트와 로댕은 동시대를 살다간 예술가로 서로의 작품 세계를 존중해주었다. 지난 봄 서울에서 열린 클림트 전에서 로댕이 극찬했던 '베토벤 프리즈' 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창 밖으로는 [세 망령 The Three Shades, 1880-81] 이 보인다. 역시 '지옥의 문' 에 등장한 작품들로 아담의 모습을 포즈만 바꾸어 셋으로 만든 작품이다. 밖으로 나와 정원을 거닐었다. [칼레의 시민들 The Burgess of Calais 칼레의 시민들, 1888] 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간의 백년 전쟁이 한창이던 14세기, 정확히는 1346년 8월, 11개월 동안의 혈전 끝에 프랑스 북부의 작은 항구도시 칼레는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영국군에 함락당한다. 팔천명의 시민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그들을 대신해 여섯 명의 시민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뼈가 드러나는 야윈 모습에, 발에 쇠고랑을 차고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고있는 모습에서 고뇌, 비통, 처절함이 느껴진다. 파리 로댕 뮤지엄과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에도 있고 캘리포니아 스탠포드대학에서도 보았는데, 눈덮힌 이곳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필라델피아에 머무는 이틀 동안 로댕 뮤지엄의 낮과 밤을 맘껏 즐겼다. 파리의 로뎅뮤지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야외 정원이 참 멋지면서도 아늑하다. 특히 [아담 Adam, 1881] 과 [생각하는 사람 The Thinker] 너머로 보이는 필라델피아의 황혼은 너무 아름다워서 왠지 슬프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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