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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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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구슬주
Nov 29. 2023
어떻게 은둔형 백수가 되었는가?
그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일생을 걸쳐 본 나는 아주 외향적이고,
관종끼 충만하며,
역마살 가득한 사주의 소유자였다.
은둔 생활을 시작한 시기와
백수가 된 날은 조금 차이가 있다.
사람을 싫어한다는 생각을 넘어선,
글에서만 봤음직한 "혐오"라는
극단적인 감정까지 생기면서
집 안으로 숨었다.
밥을 챙겨주거나,
필요한 것을 사다 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을 테지만
나한테는 그런 운은 없었다.
일주일에 1번,
혹은 10일에 1번 정도 식료품을 사러 나갔다.
나간 길에 도서관에 들려서
책을 빌려 오는 생활을 2년 넘게 했다.
축지법을 쓰듯 후다닥 나갔다 왔고,
가끔 집이 너무 답답하면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거나
유일한 친구였던 30년지기하고
짧은 시간 만나고 헤어졌다.
20대에 이렇게 살다가는 죽겠다고
생각했던 첫 회사를 퇴사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돈을 버는 족족 해외 나갔다.
여행지에서 만난 멋진 외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겠지라는 생각과 다르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게 살다,
동생이 운영하는 구두 매장에 구인하기 어려워
도와주기 시작했다.
당시 매장이 있던 위치는
버스터미널, 시내, 종합병원이 있었기에
물건 구입보다는 다시는 안 볼 직원한테
갑질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이 사라졌다.
사람이 너무 싫어 다시 회사에 취직했다.
몇 개월 뒤, 회사에서 계약종료를 당했다.
면접 때, 계약직으로 어느 정도 일하고 나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했다.
인사과에 입사를 해서,
급여와 채용을 담당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계약직, 정규직에 그리 관심이 없다.
어차피 성향상 회사를 오래 못 다녔기에,
일을 하면서 뭔가를 배우고 돈을 벌고 싶었다.
내가 먼저 입사하고, 다른 부서원들이 들어왔다.
내가 발령받은 곳에 사내 전산 프로그램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에,
다른 지점에 얼굴도 모르는 직원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서 업무를 익혔다.
원래는 집 근처로 입사했는데,
아직 건물이 완공되지 않았다며
집에서 왕복 4시간 30분이
걸리는 지역으로 발령 냈다.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만이라고 했다.
나처럼 집 근처인 줄 알고
입사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셔틀버스가 운행되기는 했지만 멀었다.
퇴근시간이 애매해서 셔틀버스를 타지 못한 날은
추운 겨울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덜덜 떨면서 다녔다.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지고 업무도 많이 익숙해졌을 때
내가 돌아가야 할 지점의 건물이 완공되긴 했지만,
안전상의 문제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지점이 공중분해 되었다는 소문이 돌다가,
어느 날, 나한테 조만간 계약을 연장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시점인데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했다.
설날 며칠 전이었다.
어이도 없고,
배신감에 다음 주까지 뭘 기다리냐고.
사직서 쓰고 바로 나왔다.
집에 오는데 분하기도 하고,
언제부터 이렇게 순진하게 사람말을
다 믿었나 싶었다.
구인공고를 보고 면접 봤을 시기가 어중간했다.
면접 보고 며칠 뒤에 2달 정도
태국, 미얀마로 여행을 갈 계획이었기에
바로 입사는 어려웠었다.
구인 공고에도 입사시기가 널널했기에 지원했었다.
담당자는 바로 입사해서 다른 지점에서 업무를
먼저 익혔으면 했지만 2달을 기다려줬다.
그래서 고마웠었나?
지금은 괜찮지만 가장 분했던 건 회사가 아니었다.
나보다 늦게 입사한 20대 어린 친구들이었다.
배려하고 많이 예뻐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사직서를 쓴 후 어느 누구에게도 연락 한 통 없었다.
쉬는 날에도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 물어봤던 사람들이
정말 단 한 통의 문자, 전화가 없는 것을 보고
당시에는 어쩌면 이럴 수 있지라는 배신감이 컸었다
시간이 지난 후,
어쩌면 난 열정 많은 꼰대였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지만,
누군가한테 잘해주지 말자.
최선을 다하지 말자. 어차피 남이다.
같은 냉소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계약 종료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의
예상 밖에 행동에 상처받았다.
거기에 꽤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다
썸을 탔던 외국 남자 친구하고도 끝났다.
그리고 많이 추운 겨울이었다.
그렇게 따뜻한 집에서 안주하기 시작했다.
내 사주풀이를 하면 꼭 나오는 말이 역마살이다.
성인이 된 20살 이후부터 정말 많은 곳을 다녔고,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한테 상처받았지만, 사람을 좋아했고
다양한 경험을 최대한 많이 겪어보고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남은 것은 후회와 분노였다.
그런 마음과 다르게 은둔 생활은 포근했다.
답답하지도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평안했다.
그 사이에 돈을 벌려고
온라인 학습지 교사를 했다.
대면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기에는 딱 좋은 일이었다.
하는 일에 비해 돈이 너무 적었고,
본사의 부당한 대우,
지루한 일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렇게 백수가 됐다.
얼마 전까지 이런 일들을
누군가한테 말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창피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왜?
무엇 때문에?
연재 브런치 북을 기획할 때,
글을 쓰면서 내 상처가 치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상처는 다 아물었고,
새살이 나오고 있기에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난 지금 자유롭고, 무탈한 일상에 감사하다.
"은둔형 백수"로 살면서
돈 걱정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건 미래의 내가 어찌 벌겠지 싶다.
내일 죽을 수도 있는 인생.
마음 편하게 살자.
오늘의 나!
은둔 백수는 아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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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 백수
01
어떻게 은둔형 백수가 되었는가?
02
친구가 없다
03
자발적 고립
04
은둔 생활자의 노력
05
은둔 적합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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