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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kyea Sep 22. 2020

계시키 산책 일기 | 첫 산책

온 몸의 땀이 주르륵 

시키와 같이 산지 1년이 넘어가지만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역시나 첫 산책 기억이다. 처음 우리 집에 오고 이틀 뒤, 강아지의 '강'도 모르는 내가 주변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하고, 처음 다른 강아지 친구도 사귈 겸해서 강아지와 평생을 같이한 전 직장 동료네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는 약 30분 정도, 차로는 1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시키와 산책하고 갈 자신이 없어 엄마한테 운전을 부탁하여 동료네 집에 도착했다. 역시 그녀는 강아지 마스터답게 시키와 다정하게 인사하고 잊지 않고 간식도 가져왔다. 나는 제대로 안을 줄도 모르는데 그녀는 한 손으로 척하고 여유롭게 시키를 들어 안았다. 동료의 강아지는 초소형견 몰티즈로 8살이 된 도도한 암컷이었다. 사회성이 없어 친구들을 봐도 짖거나 모르는 채 하는데 시키는 아기라는 걸 아는지 사납게 굴지는 않았다. 하지만 딱 봐도 저 어린것이 우리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게 못마땅해 보이기는 했다. 


맛있는 강아지 우유도 처음 마셔보고 다른 강아지도 만나보고 알찬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엄마를 부르자니 좀 애매하기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시키를 넣을 케이지나 가방이 없어 난감해 용기 내어 집까지 같이 걸어서 가기로 했다. 인적이 드문 도보기는 했지만 시키가 살짝 겁을 먹은 거 같아 번쩍 안아 들었다. 하지만 어정쩡한 나의 자세는 시키를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쿵쾅쿵쾅 빠르게 뛰는 시키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무덥고 습한 여름날이었다. 저녁이기는 했지만 더위가 쉽게 가시지는 않았다. 더구나 매우 긴장한 탓에 온 몸에서 땀이 나고 있었다. 내 팔과 시키 털 사이에 땀이 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아무리 2-3킬로 정도 되는 아기 강아지라도 어색한 자세로 오래 안고 있자니 힘이 들었다 그래서 중간중간 내려놓고 조금씩 걷다 안았다를 반복했다. 시키는 내려가면 세상이 너무 낯설고 무서운지 내 발 옆으로 붙어서 걸었다. 덕분에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걸으면 저 작은 강아지를 발로 차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시 안았다 내려놨다를 반복. 어느 순간 땀이 물 흐르듯이 흘러 눈앞을 가리더라, 아니 눈이 너무나 따가웠다. 짧은 반팔 소매를 눈에 갖다 대지만 닦기가 무섭게 금세 또 흘러내린다. 혼자서 걸으면 대충 20-30분이면 집에 도착하는걸 우리는 무려 1시간이 넘게 걸려 집에 도착했다. 


강아지가 처음이어서 모든 게 서툴었던 나, 처음 도시를 보고 도보를 걸어보았던 시키. 둘 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우리가 어찌 어찌하여 1시간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다. 왜 그렇게 둘 다 긴장했을까, 시키를 안는 내 자세는 왜 그리 또 어정쩡했을까. 뭐가 그렇게 둘 다 무서웠을까. 그런데 그날 이후 시키는 나에게 마음을 연 것 같았다. 이전에 강형욱이 개는 훌륭하다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면 더 가까워진다고 했는데, 시키에게는 그 날이 나와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낸 날이었다 보다. 지금 한 시간 산책은 껌이다. 한 시간만 걸으면 시키는 집에 안 가겠다고 버틴다. 가끔은 그렇게 어설프게 걷던 우리가 그립기도 하다. 


강아지 마스터의 노련한 케어를 받는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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