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 키우기 +D 93
2025년 1월 1일 아침 해가 떴다.
아기는 요즘 매일매일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92일의 기적은 아기침대에서 이루어졌다. 원래 눕히기만 하면 서럽게 우는 아기였는데, 눕혀도 울지 않았다.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엄마를 보며 웃었다. 졸림이 느껴지자 칭얼대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수월했다. 다음의 기적은, 잠에서 깬 후에 일어났다. 원래 잠에서 깨고 나면 빼액~~ 하고 울어재껴 자신이 깼음을 알렸던 아기였는데, 너무 길게 자는 것 같아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혼자 놀고 있었다.
오늘은 93일의 기적을 보여준다. 새벽 수유는 길게 봤을 때 점점 줄여야 할 것이라서 밤중에는 분유를 먹이지 않고 모유만 먹이고 있다. 모유는 소화가 빨리 되기 때문에 수유 간격이 짧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최근 수유텀은 두 시간~세 시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새벽 세시반쯤 모유만 먹고 잠든 아가가 일곱 시 반까지 내리 잔 것이다! 아가와 상관없이 늘 귀 한쪽을 아가 쪽으로 열어두고 선잠을 자는 나만 잠을 잘 못 잤다. 아기는 잘 자고 일어나 1월 1일 아침 첫 젖을 빨며 다시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깬 아기는 지금 강아지 장난감에 발길질을 하며 놀고 있다. 벌써 그 장난감과 놀기 시작한 것이 3주가 넘었는데, 질려하지도 않고 주야장천 발놀이를 한다. 문득, 생각해 본다. 아기가 24시간 행하고 있는 수 백번, 수 천 번의 시도들. 엄마와 아빠의 입술을 관찰하며 데이터가 쌓이고 쌓였을 때 나오는 단어 하나. 아직 내 아가는 말을 하지 못하는 단계이지만 옹알이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처음에는 에에~ 에에~ 에 불과했던 옹알이에 감정과 어조가 생기고, 드문드문 모음뿐만 아니라 자음의 요소가 들리기도 한다.
이런 수 백번, 수 천 번의 시도 끝에 아기는 또 하나의 과업을 달성해 내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며, 자라난다. 그 생각을 하니 살짝 눈물이 고인다. 이렇게 고군분투하면서 동시에 놀면서, 새로운 단계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중년에 접어든 남편과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살았다. 우리도 과거에 무언가를 새롭게 해내기 위해 수 백번, 수 천 번의 시행착오와 고군분투를 해왔던 존재라는 걸. 우리 모두는 정말 성장하려 노력했고, 그것 만으로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에 대한 수많은 뒤섞인 감정을 하나하나 떼어서 작업하고 통합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감정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분노였고, 애증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참 많은 상처를 줬던 아빠. 중년 이후부터는 거의 모든 시도가 실패했고, 그 결과 엄마를 고생하게 했던 아빠. 아빠의 생각과 선택들이 감히 현명한 것들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내 눈앞의 아기처럼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는 것만큼은 아빠가 해왔던 일이겠구나. 아빠는 아기스러운 순진성을 잃지 않았던 건가 보다. 아빠가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어른스러운 판단력도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옆에서 본 아빠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고 겁이 없었다. 그 결과 현실을 살아가는 다른 가족들을 아주 힘들게 했지. 아빠를 어른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식에게 크나큰 상실이다. 보고 배울 존재가 없고, 힘들 때 의지할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너무 큰 분노로만 타오르던 아빠에 대한 감정이 이제는 조금은 온도가 내려가 동시에 거리도 생겼다. 아빠는, 자식을 낳고 키웠음에도 아이다움을 갖고 있던 존재였구나, 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기를 갖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때에는 전혀 몰랐던 생각과, 그로 인한 감정들을 경험하며 육아를 해나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빈번한 것은 아기를 보며 깨닫게 되는 나 자신의 새로운 면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을 부모님의 감정에 대한 생각이다. 아.. 부모님도 이렇게 했겠구나. 부모님이 나를 볼 때 이런 느낌이 들었겠구나. 직접 경험해 봐야만 알게 되는 것들. 너무 늦게 경험하게 된 것들.
아기는 지금 기저귀갈이대로 옮겨져 허공에 발길질을 하며 천장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있다.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하얀 천장을 보며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너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놀라운 너라는 존재. 나는 그런 아기를 보며 가끔 감동하고 새로이 나 자신을 깨닫는다. 나도 그렇게 작고 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며 자라왔고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꿋꿋했고, 때때로 즐거워하기도 했겠다.
새록새록 생겨난다. 나와 아기에 대한 애정이. 남편과 친구들과, 그 밖에도 아기 시절을 기꺼이 견디고 거친 모든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내 가슴속에서 몽글몽글 솟아난다. 2025년 1월 1일의 오전에 갖게 된 감정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훌륭한 감정이네. 이 감동을 몸에 새겨 올 한 해 또 한 번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