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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은 May 24. 2021

우리 몸 속 30억 년 넘게 지구에 살아온 이것은?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고 100% 충전하면 마음이 가뿐하지만 배터리가 10% 아래로 떨어지면 안되는 게 많아집니다. 조명도 어두워지고 카메라도 안켜지죠. 우리 몸은 어떻게 힘을 낼까요? 


밥을 먹으면 힘이 나고 잠을 충분히 자면 가뿐히 하루를 시작한다고 대답하면 미토콘드리아가 서운해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몸은 엄청나게 많은 세포의 집합이죠. 그리고 그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 속에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세포보다 더 작은 이 존재는 DNA도 가졌죠. 우리가 숨을 쉬어서 얻는 산소와 우리가 먹어서 얻는 영양분이 혈관을 타고 우리 몸 속 세포, 그리고 그 속의 미토콘드리아에게 전달되면 이걸 활용해 만들어 내는 생체 에너지 ATP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100% 휴먼 메이드 에너지가 되죠. 그 힘으로 저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고 여러분은 귀를 기울여 제 클립을 들으며 무언가를 하고 계신 것이죠.





작고 많아 존재감 없는 '미생물'


그런데 그거 아셨나요? 미토콘드리아가 우리 세포 내에서 공생하기 전 먼 옛날에는 ‘박테리아’의 한 종류였다는 것을요. 사실 그 누구도 이렇게 된 과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세포 안에서 살지만 자신의 DNA를 별도로 갖고 생장하며 증식하는 모습은 ‘내부 공생설'의 증거로 쓰이곤 합니다. 그 옛날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이 스스로 호흡하고 생장하며 살아가다가 더 큰 무언가에게 잡아먹혔다는 설이죠. 어쩌다가 다른 숙주의 몸에 살아서 들어가게 된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은 그 안에서 숙주세포에 의존해서 살아가다가 진화를 거쳐 이렇게 숙주 안에 터를 잡아버렸다는 설입니다. 참고로 식물의 엽록체 안에 있는 작은 광합성 세균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살게 됐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그럼 인간의 에너지를 내는 ‘뿌리'가 미생물이라는 얘긴데….미생물 하면 떠오르는 박테리아, 세균 다 나쁜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텐데요. 저도 사실 ‘미생물' 하면 뭔가 징그러운 세균이 생각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완전 생각이 180도 달라졌죠.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몸 속을 자기 집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 미생물들은 우리의 존재를 더 가치있게 해주는 존재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미생물은 영어로는 Microbe라 불립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작은'이라는 뜻과 ‘생명'이라는 뜻이 합해져서 만들어졌죠. 한자어로 ‘작을 미'자를 써서 미생물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작은 생명'들입니다. 네덜란드 과학자 레벤후크가 발명한 현미경 덕에 우리보다 오래 지구에서 살아온,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흥망성쇠를 다 알고 있을 작은 생명들은 마침내 인간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냥 투명한 줄만 알았던 물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처음 본 인간들은 무척이나 놀랐었다고 전해집니다.  


모든 미생물이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몸에 좋다고 먹는 ‘버섯'도 근원을 타고 올라가면 ‘미생물’이죠. 눈에 안보이는 가느다란 섬유의 균사 상태로 시작해서 번식 기관인 포자를 지닌 자실체까지 성장합니다. 미생물들이 육안으로 식별될 만큼 성장한 ‘미생물 덩어리'인 셈입니다. 박테리아 같은 세균도 미생물,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짚신벌레, 아메바 같은 진핵생물 중에서도 미생물이 있습니다. 


현미경의 발견으로 보지 못하던 걸 봤다는 놀라움도 잠시. 저 큰 우주를 바라보고 늘 더 큰 것과 화려한 것, 그리고 먹고 사는 일에 치이는 현대의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미생물은 작은 데다 흔하기까지 하죠. 흙 한 숟가락에 들어 있는 토양 미생물 수는 전 세계 인구보다 많습니다. 바닷물을 티스푼으로 뜨면 그 안에는 5백만 마리의 박테리아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바닷물 1리터에 1억 개씩 들어있다는 프로클로로코커스라는 작은 박테리아를 다 더하면 전체 인간보다 2배 이상 무겁고 표면적은 지구의 100배에 달할 정도라는데요. 1,800개의 유전자와 태양 에너지, 이산화탄소, 무기 화합물만을 활용해  바닷 속 엽록소의 절반을 만들어 냅니다. 존 잉그럼은 그의 저서 ‘미생물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서 미생물은 우리의 조상이자 창조주이고 수호자라면서 미생물이 1킬로미터를 갔다고 하면 겨우 1센티미터 정도 혹은 그들의 하루 중 2.5초를 함께 한 게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작고 흔한 미생물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와이 짧은 꼬리 오징어가 빛을 내는 이유


최근 프랑스 툴루즈대 연구진이 식물의 엽록체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탄소를 지질로 바꾸고 이걸 곰팡이에게 먹이로 제공했고 곰팡이는 그 대가로 식물에게 영양분과 물을 제공하면서 공생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습니다. 사실 미생물과 지구의 생명들과의 공생은 해묵은 일이죠. 대표적인 거 하나만 말씀드리면요. 


밤에 불빛을 내는 걸로 유명한 하와이 짧은 꼬리 오징어는 밤에 스스로 빛을 냅니다. 발광 박테리아인 알리비브리오(Allivibrio fischeri) 덕분이죠. 이 박테리아는 루시퍼레이즈(luciferase)라는, 빛을 만들어 내는 효소를 만들어 내거든요. 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자양분을 제공하는 대신 이 박테리아들이 세포 에너지 일부를 빛으로 바꿔 달빛과 같은 색으로 은은하게 오징어를 빛나게 합니다.  낮에는 모래에 묻혀 있다가 밤에 먹이를 찾아 마음껏 바다를 누빕니다.



오징어는 누구 덕분에 살아가는 걸까요? 스스로 잘 사는 것일까요? 


20만 년 전 출연했다고 알려진 현생 인류와 달리 미생물은 35억 년 전 그린란드에 있는 이수아 그린스톤 벨트의 ‘스트로마 톨라이트' 화석에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고 하기엔 그 기간조차 비교가 힘들만큼 방대한 역사를 갖고 있죠. 아무리 유능한 젊은 사람이라도 인생 선배의 오랜 경험에서 배울 점이 참 많은 것처럼 미생물은 우리는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왔습니다. 단순히 어떤 식물과 동물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지구 생명체의 주 구성 성분이고 지구 대기의 78%를 차지하고 있는 질소는 미생물 덕에 반응성이 높은 다른 질소 화합물로 바뀝니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 DNA 등의 핵산은 질소 원자를 포함하고 있고 우리 몸의 구성 원소이기도 하죠. 포식 활동을 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식물은 미생물이 흙 속의 질소에서 식물에게 도움이 되는 질소로 바꿔준 그 질소를 활용해서 생장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에서 생산, 소비, 분해의 선순환을 완성해 온 미생물 덕에 지구의 생명은 돌고 또 돌아 왔습니다. 




 인간 몸 속 39조 미생물...알고 보니! 


다시 인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 몸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수는 39조 개에 달합니다. 몸 속에 사는 미생물 종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수 천 개에서 만 개에 이른다고 하고요. 당장 우리의 피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우리의 분비물과 죽은 피부를 먹고 사는 미생물들이 바글거리고 있을 겁니다. 우리의 땀에서 불쾌한 냄새를 만드는 장본인도 미생물이죠. 손 하나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150종에 달한다고 합니다. 800종이 넘는 미생물들이 구강 점액 속에 살고 있다고 하고요. 장은 더합니다. 미생물의 고향이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장 속의 작은 미생물들을 저울에 달아보면 0.5~1kg에 이르는 무게가 나온다 하니까요. 그냥 자리만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소화하기 어려운 다당류를 분해해서 에너지로 만들고 외부에서 유입된 병원균을 막아냅니다. 우리에게 영양분을 얻지만 역시나 앞서 말씀드린 오징어의 사례처럼 인간을 돕기도 합니다. 


다윈은 진화란 천천히 일어나는 거라고 했었죠. 하지만 미생물을 생각하면 ‘월반'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랜 삶의 지혜를 가진 미생물이라는 우리의 파트너가 우리 몸 속에서 우리의 진화를 진두지휘하는 것이죠. 실제로 미생물들이  우리의 진화를 빠르게 한다는 설인 도약 진화설을 이야기한 유전학자 리하르트 골트 슈미트 같은 과학자도 있었습니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 오랜 경험을 가진 인재 한 명을 채용하면 성장 기간이 단축되듯 우리의 진화와 삶 속에도 이 모든 걸 다 밟아온 박테리아를 길들이는 게 어쩌면 더 빨랐을 겁니다. 


아마 미생물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안경을 쓰고 우리 몸을 바라보면 우리의 몸은 미생물만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피부부터 장까지 우리 몸 곳곳에 미생물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요. 당장 우리 세포 하나하나를 구성하는 ‘미토콘드리아' 역시도 세포 안에서 호흡하며 발생하는 에너지를 세포에게 공급해주고 있으니까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은 사실은 ‘미생물'이라는 것이 없으면 살기 힘든, 미생물과 끊임없이 호흡하며 살아가는 미생물의 집단이죠. 조금만 신경쓰지 않고 두면 어김없이 음식 위에 피어나는 곰팡이부터 위암을 일으킨다는 헬리코박터 균, 몸을 아프게 하는 세균들 등을 생각하며 ‘미생물'하면 유해한 것들만 떠올리기 쉽지만요. 사실 미생물은 만일 뱀파이어가 실재 한다면 그들보다 훨씬 더 오래 30억 년을 살았고, 더 위대한 힘을 가진 우리의 인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들입니다.  




눈에도 띄지 않는 작은 몸집으로 소리 없이 지구의 모든 생명과 공생하며 존재하는 그 힘을 생각하면 30억 년의 노하우를 몸에 지닌 우리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또 인간 존재의 소중함 못지 않게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지 또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생명의 모든 걸 살펴보는 일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겸손을 알려주는 여정인 것 같아요.  


아 참고로 유익한 미생물을 우리 몸 속으로 많이 초대하려면 채식과 유산균이 많이 들어간 김치 같은 발효식품, 육류, 식이섬유를 골고루 먹어야 된다고 합니다. 항생제 같은 약도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장내 미생물을 해친다고 하네요. 이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는데 건강한 몸에 건강한 미생물이 깃든다고 해도 될 것 같네요. 30억 년의 노하우를 가진 미생물들과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공생하는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더 겸손하고 아름답게 채워지길 바랍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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