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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은 Aug 06. 2021

한국 중견기업이 세계적 골프기업을 인수한 이유는?

코리아메이드 된 테일러메이드





저같은 골린이들도 아는 회사,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선생님이 디자인하고 직접 쓰기도 하는 바로 그 골프채 만드는 회사, ‘테일러메이드’입니다. 하늘길은 막히고 답답은 하고 푸른 잔디 위에서 공치며 스트레스를 날려보자는 골프족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4명 이상은 게임이 안되는 게 골프라 저절로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골프장’ 부킹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던데…지금 이 시점에 세계적 골프 기업 테일러메이드가 한국의 패션기업 F&F의 품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예사롭게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치열했던 테일러메이드 인수전

1997년 아디다스 골프가 인수했다가 다시 2017년 미국 투자회사인 KPS 캐피탈에게 인수됐던 테일러메이드가 매물로 나온다는 ‘카더라’가 있을 때부터 빅딜을 준비해온 건 ‘사모펀드 센트로이드’였는데요. 2021년 3월엔 BGF그룹이랑 삼성가가 갖고 있던 국내 최고급 골프장 사우스 스프링스 CC 지분 100%를  1700억 주고 사왔던 곳이에요. ‘골프가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 2018년부터 골프장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는데. 새마을금고 분들도 골프의 가능성을 보셨는지 2조 빅딜 뒤에 새마을금고가 있더라고요. 어쨌든 처음엔 내셔널 지오그래픽 갖고 있는 더네이쳐홀딩스가 1,000억 들고 와서 투자하겠다, 껴달라고 했다가 막판에 틀어졌고 이 자리를 5,000억 들고 와서 꿰찬 게 F&F입니다. 더네이쳐홀딩스는 시총 2,500억, F&F는 시총 4조, 거의 20배 큰 회사니 뭐 덩치싸움에 밀린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F&F는 어떤 회사?

F&F는 회사 이름보다 브랜드로 더 유명한 회사죠. 나름 업력 30년 넘은 회사인데요. 1997년에 미국 메이저리그 MLB 상표 사다가 스포츠 의류 상표 붙여서 팔고 있고 2012년에는 다큐멘터리 제작사 디스커버리 상표권 사다가 등산복에 로고 붙여서 팔고 있는 회사입니다. 아기상어로 대박난 스마트스터디가 삼성출판사꺼잖아요. 그 삼성출판사 창업주 아드님이 F&F의 김창수 회장님이에요. 사업 DNA를 진작에 물려받으셨는지 창업 초기부터 베네통, 시슬리, 엘르, 레노마 같은 외국 브랜드 들여다가 파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분이죠. 최근에 주식으로 수백 억 벌고 은퇴하신 슈퍼개미 김봉수 전 카이스트 교수님께서 F&F 주식이 2,000원이던 시절 사서 지금까지 갖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참고로 김봉수 교수님이 여기 투자하신 이유가 디스커버리 디자인이 너무 좋아서였다고 하던데 얼마나 좋았으면 2015년에도 ‘매수’를 외치셨다고 합니다. 디스커버리는 2017년 전국민 교복이었던 롱패딩을 유행시키기도 했는데 이 때 저도 이것 좀 사보려고 했다 못사고 결국 다른 브랜드꺼 샀던 기억 나네요. 2019년엔 MLB 들고 중국 진출을 하죠. 미국 브랜드 들고 중국에 간 셈인데 좀 오묘하죠. 근데 또 대박이 났어요. 2020년 1분기 중국 MLB 매장 수가 2개였는데 미국과 중국이 서로 기싸움 하는 이 와중에 2021년 말까지 매장 250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듀베티카 들여와서 ‘연예인 사복’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기도 했으니 이 정도면 마케팅 좀 한다고 할만 하겠죠. 최근엔 F&F 홀딩스, F&F 패션 부문으로 회사 분할해서 제대로 패션사업 해보자며 에너지 모으고 있었는데요. 이번 인수로 이 화력을 ‘골프에 쏟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가 있네요.


왜 하필 골프였을까

‘골프’를 성장 동력으로 낙점한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998년 박세리 선수의 그 유명한 벙커샷 기억하시죠. 이 때 많은 분들이 TV 앞에 앉아 마음 졸이며 라운딩을 함께 했죠. 슈퍼 땅콩이라고 불렸던 김미현 선수까지 한국 골프 여제들의 국제무대 활약에 김대중 대통령은 김미현 선수가 우승한 바로 그날 ‘골프 대중화'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골프는 시간과 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사람들의 고급 스포츠였죠. 2014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좀 달라지는데 이 때부터 골프장 수와 골프 인구는 늘고 대신 회원제는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이 때 쯤 스크린 골프장 사업 시작한 골프존은 코스닥 상장까지 했고요. 요즘은 스크린 골프에서 내기 골프하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분들 많죠. 엑스골프 같은 앱으로 회원권 없어도 골프장 예약할 수도 있습니다. 골프가 ‘귀족 스포츠’가 아니라 ‘젊은 세대의 대중 스포츠’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는거죠. 코로나로 이 수요가 대폭발 한거고요. 여담인데~사실 몇 년 전 갑자기 뜬금없이 카카오가 스크린 골프장 브랜드 인수해서 여기저기 라이언이 골프채 들고 있는 스크린 골프장이 생길 때요. 제가 속으로 ‘김범수 회장님이 골프 좀 치시나?’ 이 생각했었거든요. 이렇게 되고 보니 역시 카카오다 싶더라고요. 요즘은 카카오도 스크린 골프에, 골프 굿즈에, 예약 앱에, 스마트 골프장도 만들겠다고 하고 있더라고요. 여기에 저 같은 골린이들도 포기할 수 없는 게 바로 패션이죠. 그렇다 보니 골프웨어 시장 규모는 골프클럽이나 골프볼 시장의 5배가 넘어요. MZ세대 쇼핑몰로 유명한 무신사도 아예 골프 카테고리를 만들었어요. 미국에서도 2020년 라운딩 횟수가 크게 늘었고요. 일본이나 베트남에서도 골프를 그렇게들 친답니다. 정리해보면 ‘언택트’만 코로나의 수혜를 입은 게 아니라 골프도 코로나 덕분에 몸집을 확 키운 셈이죠.         

   

왜 테일러메이드?

이런 상황 속에 매물로 나온 테일러메이드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첫번째, 일단 역사가 오래됐어요. 골프클럽 중 우드가 나무로 만들어져서 원래 "우드"라는 이름을 쓰는 거 알고 계셨나요? 우드를 세계 최초로 금속으로 바꿔단 게 테일러메이드랍니다. 연구하고 개발하는 그 이미지 살리려고 멀쩡한 회사 대표 이름 놔두고 개발 참여한 골퍼 ‘해리 테일러’ 이름 따서 테일러메이드라고 지을 정도였죠. 역시 골프는 장비발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매년 ‘세계 최초’를 만들어내는데 최근엔 심 드라이버가 인기더라고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만큼 이것저것 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특히 드라이버 인기가 제일 높습니다. 역사가 오래됐다보니 골프 종주국 미국과 유럽에선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고 일본, 호주, 대만 등 전세계에 자회사를 꾸린데다 자리도 다 잡아놓은 상태거든요.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잘 올려놓으면 되는’ 상태라는 건 곧 그 상태까지 가는 데 드는 ‘시간’을 사는 것이죠. 사업이 다 그렇다지만 요즘엔 정말 간발의 차이로 누가 시장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냉정한 시장이잖아요. 이미 브랜드 파워를 가진 테일러메이드고 아무리 한국 골린이들이 늘어난다지만 미국을 넘볼 순 없죠. 미국은 무려 3000만 골프 인구에 골프장만 만 개가 넘고요. 동네 퍼블릭 골프장은 가격도 4~5만원이래요. 한국의 반의 반값이죠. 우리는 부킹하는 것도 힘들다는데 미국은 그냥 차 몰고 동네 퍼블릭 골프장 가서 트렁크에서 골프가방 꺼내고 티셔츠, 반바지 입고 치기도 한답니다. 골프 종주국 미국에서 테일러메이드 위상까지 생각하면 충분히 해볼만한 딜이죠. 테일러메이드 올해 5월까지 누적 매출은 벌써 8200억 원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하니 말이죠.


필라의 사례

필라는 10년 전인 2011년, 골프용품 브랜드 타이틀리스트와 골프화로 유명한 풋조이를 가진 아쿠쉬네트 지분 12.5%를 1조 3000억 주고 샀었는데요. 그 후에 틈 날 때마다 계속 지분을 사들여요. 2016년엔 지분 20%를 추가로 사들이면서 지분 53%를 가진 지배주주로 마침표 찍었고요. 이 해 미국 증시에 상장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매출액의 절반 이상이 아쿠쉬네트에서 오고 아쿠쉬네트의 2021년 1분기 실적이 2020년은 물론이고 코로나 전인 2019년보다도 두자릿수로 성장했으니 안샀으면 큰일날 뻔 했죠. 처음엔 허리 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듣고 경영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필라가 이 때 이 인수를 안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인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입니다. 필라가 아쿠쉬네트로 단숨에 골프전문기업으로 발돋움 한 사례를 지켜봐 온 F&F 입장에선  우리도 잘돼보자를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럼 테일러메이드로 뭐할건데?

우스갯소리로 한국이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에는 화투쳤고 1만 달러 시대에는 등산했는데 2만 달러 넘으니 골프치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있는데요. 곧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바라보는 중국의 골프 시장도 마치 몇 년 전의 한국을 보는 것 같아요. 그 땅 넓은 중국의 골프장 수는 400개 정도 밖에 안됩니다. 아직 중국을 압도하는 패션 브랜드나 골프용품도 없는 상황이에요.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코로나 전에는 주말마다 코스 예약이 꽉꽉 찼다는 말도 들렸을 정도로 베트남도 정말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F&F가 패션 쪽에 잔뼈가 굵잖아요. 테일러메이드가 옷 쪽으로 가면 점유율이 거의 없는 상태인데요.  SNS에 예쁘게 찍어서 해시태그 ‘테일러메이드’ 붙여서 올려주고 유명한 골퍼가 입어도 주고, 사은품으로 골프공도 주고 하는 그런 아시아 감성을 골프웨어에 더해준다면 거의 신시장이나 다름 없는 상황입니다. 골프 클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아쪽보다는 아무래도 서양 쪽에 맞춰져 있다, 올드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포장을 좀 바꿔서 아시아 인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면 점유율 끌어올리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또 아직 테일러메이드가 상장을 안했죠. 미국 증시 상장으로 기업가치 끌어올릴 수도 있고 센트로이드가 인수한 사우스 스프링스 CC 에 골프 빌리지 지을거라는 기사도 본 것 같은데 저만 해도 ‘공이 안 맞아도 좋다 자연보고 힐링하러 골프장 간다’는 맘으로 필드 나가는데 테일러메이드 정도면 골프장비, 골프웨어 브랜드를 벗어나서 골프 플랫폼 기업으로 가치도 충분하지 않나 뭐 그런 상상도 해보게 되네요.  


한국 정서에 맞는 리브랜딩 필요

여기까지 보면 60만원인 지금 F&F의 주가도 막 저렴해보이는데요. 완전 핑크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이번에 골프채를 샀는데 사면서 골프채 추천 좀 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일본 제품’을 추천해 주시더라고요. 테일러메이드는 유명하긴 한데 프로들이나 쓰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인증샷 찍어서 인별그램에 올리는 건 다 일제라는 거죠. 그러면서 젝시오나 야마하 같은 브랜드들 추천해주셨는데요. 테일러메이드가 소수의 프로들이나 어르신들이 쓴다는 건 시장의 주류는 아니라는 것이고요. MZ 세대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에서 당장은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좀 영한 이미지로의 리브랜딩은 필수일 것 같아요.


골프웨어 시장도 포화상태

골프웨어 시장은 좀 더 우려스런 상황인게 테일러메이드 어패럴 광고가 막 나오길래 ‘인수전에 시작한 것 같은데 타이밍이 참 절묘하네’ 싶었거든요. 근데 알고보니 F&F가 들어오기 전에 ‘한성에프아이’가 테일러메이드랑 먼저 라이선스 파트너 계약을 해버린 상황이더라고요. 아이러니한 건 F&F가 라이선스 받아다가 팔다가 못 팔겠다고 계약기간도 안 끝났는데 손 떼버린 ‘레노마 골프’가 한성에프아이 품에 안겨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한국 안에서의 라이선스 계약이고 아시아 전체나  미국, 유럽 시장이 훨씬 큰 규모라고는 하지만요. 이 정도면 골프웨어가 아픈 손가락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들리는 얘기로는 에르메스,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들까지 골프웨어에 진출한 상황에 결국 후발주자로 골프웨어 시장에 진출을 한다는 거잖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라 성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F&F 김창수 회장이 마케팅의 귀재라지만 모든 것에서 다 성공한 게 아닌데 하필 그 약한 포인트가 골프웨어라는 점도 좀 걸리죠.


그렇다면…브랜드 많은 경쟁사 인수가 더 낫지 않을까?

한 가지 더 걱정되는 건 F&F가 MLB와 디스커버리 두 브랜드에만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거에요. 두 브랜드 매출 비중이 97%라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차라리 다른 골프 사업하는 회사가 낫지 않나 싶기도 한데요. 앞서 테일러메이드 인수하려다가 아쉽게 밀려난 더네이쳐홀딩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아웃도어에 베라왕에 캠핑 용품까지 여러 브랜드들을 오히려 더 가지고 있어서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잘 나눠 담아둔 상태죠. 내셔널 지오그래픽 키즈라인이 그렇게 불티난게 팔린다는 소문을 듣고 그 콧대 높은 디즈니가 라이선스 계약을 무려 6년이나 연장했다는데 디즈니를 빽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진출할 일만 남았다는 것도 호재죠. 스크린골프 시장 꽉 잡고 있는 골프존도 고려해볼만 하고요. 



코로나 시대 골프가 2030의 새로운 취미 생활로 자리를 잡으면서 세계 3대 장비 회사 중 두 개가 태극마크를 붙였습니다. 테일러메이드가 이제 코리아메이드가 된다는 소식에 당장 테일러메이드 입고 필드로 나가고 싶습니다.ㅎㅎ아 주위에서 골프 다 치는데 나만 안하면 왠지 아싸인 것 같아서 저도 요즘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면서 저녁마다 몸은 골프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태극마크 단 테일러메이드가 어떤 컨셉으로 한국 시장, 그리고 아시아와 전세계 시장에 진출할 지 기대되네요. 제가 최근에 골프를 배우기 시작해서 너무 흥미롭게 만든 콘텐츠였어요. 거의 15년 전에 머리는 얹었으나 이제 막 다시 골프 대열에 합류한 골린이라 빼놓은 내용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골프의 성장세는 계속될 지, F&F와 테일러메이드가 찐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지 골프 치시는 여러분들의 많은 의견 댓글로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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