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과 실내화
스승의 날, 어린이 날을 이야기해 볼게요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제자들과의 예전 기억들을 다시 소환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오래된 제자가 오랜만에 연락해올 때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그래서 연락 자체만으로도 너무 고맙답니다. 그런데 사실 스승의 날은 부담스러운 날이기도 하답니다.
'정말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사였나?'
라는 질문에 선 듯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드니까요. 그래서 연락해오는 제자들에겐 고마운 마음과 더불어 미안한 마음도 생기게 된답니다. 너희들에게 선생님이 잘해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선생님을 기억해 주니 말이지요.
어린이날 행사
교사가 되고 난 후 어린이날이면 매년 행사가 있었어요.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땐 다양한 단체에서 진행하던 행사에 같이 참여해서 어린이 날을 기념 했었죠. 그땐 많은 학교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어린이날을 위해 봉사했답니다. 저 또한 그중 한 명이었지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단체가 주체가 되는 어린이날 행사는 줄어들었어요. 그즈음엔 지자체에서도 자체적으로 행사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부턴 시간이 되는 친구들과 함께 어린이날 모임을 했어요. 몇 명이 나오든지 같이 놀러 갔지요. 같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을 찾아갔어요. 서울도 가고, 우리 고장의 유명한 곳도 가고 말이지요. 그렇게라도 어린이 날을 함께 보내며 축하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코로나가 세상을 덮쳤어요.
코로나로 인해 멈춘 어린이날 행사들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가던 저만의 행사도 코로나로 멈추게 되었어요. 그래서 교사가 된 후 처음으로 어린이날 아무런 일 없이 집에 있었답니다. 그렇게 2020년의 어린이날을 보내고 나니 너무 서운했어요.
2021년의 어린이날
21년도가 되어서도 코로나는 여전히 위험했어요. 하지만 20년도처럼 어린이 날을 보내기 싫었지요. 그래서 생각해 보았어요. 코로나 영향을 덜 받으면서도 어린이 날을 온전히 축하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를 말이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어린이날 너희들의 실내화를 세탁해줄게. 그리고 그림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고 그래서 처음 시작하려고 하니 부담감이 크기도 했어요. 과연 아이들이 올지도 걱정이었고, 세탁 후 실내화에 그림을 그려 준다곤 했지만 잘 그릴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죠. 하지만 무엇이라도 해 보고 싶었기에 진행했어요. 실내화를 세탁하는 일이 큰 일도 아니고 재미있는 활동도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선생님의 마음은 항상 너희들의 가장 낮은 마음을 향하고 있음을 말이지요. 너희들이 어려워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선생님도 함께 함을 말이지요.
어린이날 실내화 세탁하기
긴장된 마음으로 학교 광장으로 오는 아이들을 기다렸어요. 손엔 체온계를 쥐고 말이지요. 시간은 10시부터였는데 그전부터 아이들이 한 두 명씩 찾아왔어요. 실내화 가방을 들고 말이지요. 그리고 저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선생님, 죄송해요. 제 실내화가 많이 더러워요. 어쩌죠?"
아이들의 말투와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부끄러웠어요. 이게 뭐라고 너희들이 이렇게 부담스러워하는지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모습으로 오히려 더 씩씩하게 실내화를 받아서 세탁을 했지요.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함으로 아이들에게 조금은 부담스럽지 않게 보이고 싶었거든요.
실내화가 깨끗하게 세탁되고 햇볕에 말리는 그 순간은 저에게도 아주 멋진 시간이었어요.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실내화에 그림을 그려줘야 하는 시간....
실내화에 그림 그리기
교사로 살아가다 보니 어쩌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그림은 아이들에게 익숙한 매체였고, 그림을 통한 소통은 생각보다 효과적이었거든요. 그래서 혼자사 그림을 그려왔어요.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한 것이 아니라 기초도 없고 그냥 보이고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정도였지요. 그런 제가 실내화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생각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집에서 먼저 실내화 하나를 구입해서 그림도 그려보고 연습도 했어요. 하지만 연습만으론 불안했어요.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그 순간에도 아이들은 함께 해 주었지요.
"선생님, 저도 여기에 그려주세요."
분명 아이들 중엔 저보다 그림을 멋지게 그리는 친구들도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그려주는 그림이 더 좋은지 저에게 그려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또 너무 고마웠어요.
어린이날 행사가 끝난 후
'좋은 추억 더하기에 자기도 나중에 나누는 삶에 대해 아빠와 이야기하며...'
이런 메시지가 왔어요. 우리 반 친구도 아니었고 코로나로 아이들을 잘 모를 때였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행사에 참여했고 행사에 대한 고마움도 이렇게 표현해주니 얼마나 고마웠던지요. 어린이날 행사로 진짜 선물은 제가 받은 기분이 들었어요. 조금은 아이들에게 덜 미안한 교사가 된 것 같아서 말이지요.
2022년 어린이 날을 앞두고
'선생님, 혹시 올 해에도 작년처럼 실내화 세탁 행사를 하시나요?'
2021학년도 학부모님에게서 온 메시지였어요. 작년 행사에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었던 부모님이셨는데 올 해에도 하느냐고 물어보신 것이었고, 올 해엔 자신도 같이 봉사하고 싶으시다는 메시지였어요.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그래서 2022년도 어린이날 행사도 실내화 세탁으로 진행했답니다. 특히 올해엔 작년 학부모 내외분이 모두 오셔서 도움을 주셨어요. 다행히 날씨도 좋아서 얼마나 좋았던지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교사의 일은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태양이 우리 모두를 위해 조건 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내어주듯이 말이지요. 특히 아이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가 우리 주변의 교사들이랍니다. 스승의 날,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 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따뜻한 마음이라 생각해요. 처음 실내화 세탁 행사를 할 때 자신의 실내화를 건네며 미안해하던 아이의 따뜻한 마음과 작년의 일을 잊지 않으시고 자신도 함께 봉사해 주시겠다 연락하시는 배려의 마음이 저에겐 최고의 스승의 날 선물이었답니다.
스승의 날, 오히려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