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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니 Dec 11. 2020

# 5. 존버는 항상 승리할까?

36개월을 존버하라 내일채움공제



복학한 학교에서는 새로운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휴학을 하기 전에는 관심이 미치지 못해 지나갔던 장면들이 새롭게 보여서였을까? 과목에서는 '기업가 정신' '창업' 등의 단어들을 볼 수 있었고, 도서관 주변의 많은 플래카드에서는 '창업 지원'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특별한 선택지 없이 중소기업 취업을 선택한 나는 더더욱 '중소벤처기업부'의 여러 방안들과 가까워졌다.  


그중 가장 밀착하여 가까워진 것은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 상품이었다. 이 상품은 미취업 청년의 중소, 중견기업 유입을 촉진하고 청년 근로자의 장기근속과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7월부터 시행된 사업(내일채움공제 홈페이지 : https://www.sbcplan.or.kr/)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선택하는 상품에 따라서 다달이 내는 금액과 만기까지의 기한은 달라지지만 본인이 납입한 금액에 정부지원금과 기업 기여금이 더해져 만기일에 약 5배 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2년형과 3년형은 만기 시 금액 차이가 약 2배로 천오백만 원 이상의 차이였다(내가 입사할 당시 뿌리기업이 아닌 기업도 3년형 가입이 가능했다). "2년형을 하는 바보도 있냐"는 대표의 말에 난 3년형을 신청했고, 3년 후 받게 될 만기지급금을 상상하며 유학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첫 6개월 간은 회사에 적응도 해야 했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도 해야 했다. 많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어릴 적 꿈을 이뤄줄 회사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애사심 때문인지 빠르고 정신없이, 시간이 알아서 흘러갔다. 내일채움공제를 시작한 지(정규직 전환한 지) 6개월 즈음되었을 때, 대거 퇴사 이동이 있었다. 이때 회사 생활에는 '퇴사'라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대거 퇴사를 하고도 3개월을 더 애사심으로 다녔다. COVID-19 영향으로 담당하던 프로젝트들에 대한 부담과 책임이 덜어지고 지난 1년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조금은 객관적인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임원 개인의 순간 감정에 따라 휘둘러지는 사내 분위기와 개인 평가, 실무자에게 가중되는 책임과 그에 따른 개인의 자책 그리고 그 연속, 이전 프로젝트에 대한 자체 평가 등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그 변화는 긍정적인 부분들도 있었지만 평가 결과 나는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1년 동안 내가 여기서 더 배우고 발전할 수 있을까?'
'현재의 업무 형태는 체계가 없고, 평가 또한 임원의 감정에 따라 이루어져 공정하지 않은데 내가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만 아는 발전이면 어떡하지?' 


이 즈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앱을 설치하고 그때까지 내가 납입한 공제금과 앞으로 내야 하는 기간을 매달 매주 확인했다. 약 14회 차 납입한 때였고, 22회 납입을 더 해야 했다. 버틸 것인가? 나갈 것인가? 매일 고민했다.

 

당시 내 머릿속은 버틴 후에 얻는 내일채움공제금과 버티는 과정에서 얻는 경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즉, 버틴다는 표현보다는 내 시간과 젊음, 노력을 22개월 동안 투자하여 더 가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2년형을 하는 바보도 있냐?”는 대표의 말을 기억하며, 3년도 근속하지 못한 사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임원의 감정 기복 때문에 전 직원이, 아니 그 임원이 쉽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서의 전 직원이 주말 내내 불안을 느꼈던 일이 있었다. 난 그 부서에 소속되어 있었다. 사실 이런 비슷한 일은 근무 기간 내내 있었던 일로, 주말에 소환되어 일처리를 하거나 사유서, 경위서 등을 써야했다. 매번 그 ‘애사심’으로 참아졌던 생각과 감정들이 터져 나와 다시 이전에 했던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내 고민 저울 양쪽에 근속과 퇴사가 올려졌다는 것이다. 몇 달 전엔 22개월을 투자하여 얻는 것을 쭉 나열하기만 했다면 22개월 동안 이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이 회사를 다님으로 잃게 되는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건강, 커리어, 시간 등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기회가 고려해야 할 대상으로 떠올랐다. 근속과 퇴사에 대해 51:49/49:51로 계속 순위를 정할 수 없는 생각을 반복하다가 결국 건강상의 문제로 더 늦기 전에 퇴사를 고했다.


내일채움공제 상품 안내에는 「최소 2년 이상 동일 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실질적 경력 형성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본인 납입금 대비 5배 이상을 수령하여 미래설계의 기반을 마련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설명이 덧붙여있다. 이 문구에 혹해서였던 건지 실제로 나 또한 3년 동안 경력을 만들어 만기지급금을 받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문구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70% 할인’이 적힌 포스터를 붙인 것과 같다. 그 포스터 하단에는 할인율을 적은 글씨체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글씨로 (※ 단, 일부 품목에 한해 진행)이라고 적혀있다. 나는 내일채움공제 상품 안내글 이면을 보지 못한 것이다.


(※ 단, 최소 2년 이상 동일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이 당신의 많은 것을 상하게 할 수 있음) 


저울은 양팔을 가지고 있다. 한쪽 저울엔 돌을 올리고, 한쪽 저울에 풍선을 올리며 왜 균형이 맞지 않는지 고민을 했던 모습을 돌아보며, 저울엔 비교하기에 적합한 두 대상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버텨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어 얻을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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