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주식을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정보와 조언으로 주식 새싹에게 물을 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명심하라며 반복하는 말은 "익절은 항상 옳다."이다. 주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분석해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판단하여 소량의 이익 상황에서 매도하지 않고 쥐고 있다가 오히려 큰 손해를 보는 경우에 적절하게 사용된다. '퇴사하자마자 주식했으면 지금 얼마만큼 이익을 봤을까? 더 일찍 시작할 걸'하는 후회에 시작한 주식은 '왜 이만큼 떨어질 때까지 쥐고 있었지? 더 일찍 매도해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볼 걸'하는 후회를 반복하게 한다.
보통 선택의 상황에서 후회는 야기된다. 나는 선택 상황에서 '할까? 말까?' 할 땐 하는 편이며,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할 땐 이미 하고 있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선택하는 편이다. 그래서 '꾸준하다' '잘 버텼다'라는 평가를 기대한다. 이 가치 기준 때문에 여러 번 퇴사와 관련한 고민이 될 때마다 지속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일을 했다. 그 결과 회사 내에서도 이제 당신만큼 이 곳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연락을 유지하고 있던 선배 퇴사자들에게도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평가를 받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얻는 것은 내일채움공제금과 3년이라는 경력이었다. 즉, 3년 후에는 경력직으로 좀 더 높은 연봉과 나은 복지가 있는 회사로 이직하고 싶었다. 버틴다는 것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나에게 '잘 버티고 있다'는 평가는 다르게 해석되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고 있다기보다 내가 이 곳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의 지난 업무를 돌아보았다. 프로젝트들을 돌아보니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1. 이 회사를 잘 아는 사원으로서 갑자기 임원의 눈 밖에 나게 된 직원이 하던 일을 수습한 프로젝트
2. 내가 눈 밖에 나서 하던 일을 인계하게 된 프로젝트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이 바뀌지 않고 진행한 프로젝트가 없었다. 비단 나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회사 전체 프로젝트들이 십중팔구 그렇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내가 경력직으로 갈 자격이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성장한 줄로만 알았으나 돌아보니 난 이 회사에 맞추어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3년의 시간을 서류상 경력이라고 적어낼 수 있겠지만 입사와 동시에 내 허울뿐인, 이전 회사에서만 통하는 업무 수준을 들켜버릴 것 같았다. 이 고민이 시작되고, '내 일과 비전'에 대해 욕심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회사에서 나에게 맡긴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면, 내 이직에 도움이 될만한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내 노력은 매번 임원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운에 따라 좌절되기도 하고 노력 대비 부끄러울 만큼의 성과로 인정받기도 했다.
후회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꾸준히 일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선택이 후회의 크기를 키운다는 확신이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꾸준히 하면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더 할수록 허탈감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져갔다. 그렇게 퇴사를 결정했다.
당시 나는 게을렀다. 현재 상황을 빠르게 돌아보고 판단하여 현명한 선택을 하기보다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얻어지는(경력, 내일채움공제금, 퇴직금 등) 것만 생각하며 머리 아픈 고민을 유보했다. 경력기술서에 쓸 프로젝트가 없다는 불안, 성장의 정도가 커봐야 이 회사의 규모라는 불안, 이직 후 새로운 환경에서 마주하게 될 내 한계에 대한 불안이라는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이 곳에서 일하는 것과 퇴사를 한 후 필요한 준비를 하는 것을 저울질할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 상황을 똑바로 보고 그만둬야 할 때 그만두는 것이 이득일 때도 있다는 것, 매 순간 열심히 하는 만큼 현재가 고점이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잠재성, 방향성을 매일매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마치 가지고 있는 종목의 기사를 매일 확인하는 것처럼! 익절은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