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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Dec 16. 2022

나의 인생허브 페퍼민트

이제는 덜 과민하게 살고 있습니다-6화


속이 안 좋으면 약국에 자주 갈법하지만 나는 오히려 멀리 했다. 장이 약에도 예민해서 오히려 잘 먹지 않았다. 아플 때 병원 대신 한의원을 먼저 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염증 치료로 항생제를 복용한 후 장 상태가 악화돼 고생한 적이 있고, 무엇보다 예전에 대학병원에서 과민성 대장에 도움이 된다는 약을 먹고도 효과를 별로 보지 못한 탓이 크다.


처방약이 그런데 하물며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의 효과는 안 봐도 뻔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대추 두 어 알을 먹고 증상이 심하게 와서 참다 참다 회사 근처 약국에 달려가 약을 사 먹었는데, 한두 시간 즈음 지났을까. 증상이 잦아들었다. 이후로 약국 약을 다시 보게 됐다.


힘들면 약에 의지하던 어느 날. 점심때 회식이 잡혔다. 사장님과 몇몇 직원들과의 식사였다. 아무래도 메뉴 선택에 제약이 있다 보니 이따가 오후에 힘들 수도 있겠다 싶어 각오를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에는 카페로 이동해서 음료 한 잔씩을 주문했다. 나는 커피 대신 허브차 메뉴 쪽을 살펴보고 민트차를 골랐다. 식후에는 배가 불러서 차를 잘 마시지 않는데 이 날은 입에 맞았는지 목이 말랐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몰라도, 차를 거의 다 마셨다. 그 후 사무실로 돌아와서 오후에 일을 하는데….



웬걸. 우려와 달리 뱃속이 조용했다.


양파즙 이후로는 처음 찾아온 안정감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날 먹은 음식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특별한 것은 없고 페퍼민트차를 마신 게 다르다면 달랐다. 민트에 장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능이라도 있나?





인터넷에 페퍼민트 효능을 검색해봤다. 알고 보니 소화기 증상을 개선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아까 마신 민트차 덕분에 속이 편했던 것이다. 평범한 허브차 한잔이 이런 효과를 낸다니 놀라웠다. 나는 곧장 민트 티 파는 곳을 찾았다. 백화점에 갔더니 사무실에서 먹기 편할 것 같은 티백 제품이 있었다. 이후 아침에 회사에 도착하면 텀블러에 티백을 하나 넣고 차부터 우려냈다.


그날 마셨던 농도와 비슷하게 500ml 텀블러에 쌉싸름할 만큼 우려낸 후 너무 쓰다 싶으면 중간중간 물로 농도를 조절했다. 책상에 놓고 하루 종일 수시로 마셨다. 다 마시면 한 차례 더 우려냈다. 이렇게 열심히 마신 건 실제로 효과가 뚜렷하게 좋았기 때문이다. 속이 안 좋다 싶으면 더 열심히 마셨다.


민트의 효과를 톡톡히 본 나는 차를 마실 수 없는 상황일 때를 대비해서 캡슐로 된 페퍼민트를 해외직구로 구입했다. 식후나 속이 좋지 않을 때 물과 함께 삼키면 되었는데, 효과는 차와 비슷했다. 다만 캡슐의 경우 먹고 나면 목에서 화한 느낌이 얼마간 지속됐다. 이때는 잘 내려가라고 물을 자주 마셨다. 책상 서랍 안에는 약과 함께 페퍼민트 제품들을 항상 구비해두었다.



뭐든 과하면 부작용이 따르는 걸까. 장기적으로 복용한 데다 권장량을 생각하지 않고 먹어선지는 몰라도 언제부턴가 별 다른 이유 없이 기침이 나곤 했다. 이내 멈추고 괜찮아지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라서 기침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면 괜히 난감해져 식은땀이 났다.

그때 인터넷을 찾아보고서 알게 된 사실인데, 민트 성분이 목을 자극할 수 있다고 한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에게 민트는 삼가야 하는 음식 중 하나다. 사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도 민트차를 내가 끊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무엇보다 장이 편한 게 우선이었으니까. 대신, 집에 있는 날에는 가급적 섭취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페퍼민트를 먹은 후로 회사에서 전보다 일에 집중을 잘할 수 있게 됐고,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눈치가 보이는 날이 줄어든 것 역시 좋은 점이다. 일이 많은 시기에는 야근도 해가며 그런대로 잘 버텨냈다.

물론 뭘 해도 안 되는 날도 여전히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전과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예전에는 한 달 중에 속이 괜찮은 날이 드물었는데, 이제는 속이 아주 좋지 않은 날이 점점 드물어진다.


히포크라테스가 약용으로 사용했고, 중세 이후 서양에서 소화불량 약으로 사용되었다는 민트. 내게는 너무나 고마운 허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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