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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세담 Jan 03. 2019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엄마, 엄마, 나 안 가고 시퍼, 엄마랑 있고 시퍼, 나 두고 가지 마~~ 응? 응?"


"응 윤아, 엄마 어디 가는 거 아니야, 알지? 우리 윤이 오늘 어린이집에서 맘마 잘 먹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있으면 엄마가 이따 일 마치고 데리고 올게. 응? 착하지?"


"아니 아니, 시로시로, 엄마랑 있고 시퍼, 가지 마, 가지 마!! 엉~ 엉~ "


첫째가 두 돌이 지나고 동네 어린이집을 다니다가 세 돌 때쯤 회사 어린이집에 TO가 생겨 어린이집을 옮긴 후 아이가 한동안 참 힘들어했다. 아이가 힘들어하니 나도 덩달아 정말 힘들었다. 매일 아침 아이는 울면서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했고, 그런 아이를 달래서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나도 참 많이 울었다. 아침에 헤어질 때마다 몇십 분이 걸리는 걸 감안하여 일찍 집을 나서도 아이는 가끔 진정이 안될 만큼 울었다.

생전 지각이라는 건 해본 적이 없는 나였는데, 우는 아이를 도저히 그냥 들여보낼 수가 없어 차로 1시간 반이나 떨어져 사는 시어머니께 와주십사 부탁드리고, 회사에는 반차를 쓰고 차 안에서 둘이서 끌어안고 울었던 적도 있다.


아이가 울고 가는 날이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였고, 이렇게 반차까지 쓰고 헤어진 날은 우울함이 더 커졌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 새끼 이렇게 울려가며 어린이집 보내고 일하러 가야 하나.'란 생각도 들었다. 아, 이래서 엄마들이 아이 키우다가 직장을 그만두는구나 싶었다.


"루시아님은 일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그 어린애를 떼어 놓고 해외 출장을 그렇게 가는 걸 보면..."


"애들은 엄마가 키워야 하는데... 뭐... 그래도 회사 어린이집은 학대나 이런 건 없으니까 그래도 괜찮지?"


"본인이 좋아하는 일하느라 애만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저는 와이프 일 그만두라고 했어요."


조언인지 걱정인지 아니면 고도의 돌려 까기 인지 모를 이런 말들을 들어가며 회사에서 일하는 워킹맘들이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정말 워킹맘의 아이들은 엄마의 욕심 때문에 불행한 걸까', '나 때문에 우리 아이들도 결핍을 가지고 잘 못 크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의 육아 방식만이 최고라 자부하시는 한 부장님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 얘기에 나는 폭발을 하고 말았다.


"엄마가 일하는 애들은 집에서 뭘 할지 몰라. 우리 와이프가 그런 애들하고 우리 애들 못 어울리게 하는 게 일이라니까. 엄마가 집에 없으니 애들이 케어도 안되고 별로거든."



함께 식사하던 그 테이블에는 곧 결혼 예정인 여자 후배도 있었고, 맞벌이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남자 동기도 있었고, 매일 아침에 우는 아이를 달래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하는 내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불편해하고 불쾌해하고 있었지만 말은 못 하고 있었는데, 그분은 그런 분위기를 눈치를 못했는지, 아니면 눈치를 채고도 모른척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사례까지 들어가며 '엄마가 일하는 애들은 질이 떨어진다.' 얘기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분 원래 그래.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해." 라며 말하던 친구의 표정이 정말 슬퍼 보였다. 나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거다.


"부장님, 여기 우는 아들 달래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한 사람도 있고, 와이프랑 맞벌이하면서 힘 모아서 열심히 육아하는 사람도 있고, 곧 결혼해서 맞벌이를 시작할 사람도 있습니다. 부장님이 그런 생각을 혼자서 하시는 것은 상관없지만 저희 앞에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하신 말들은 굉장히 부적절한 발언이시고 정말 불쾌하고 불편하니 삼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 키우는 게 힘들다는 건 비단 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점 중에 하나가 육아의 어려움을 공감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일 것이다.


'옛날 어른 들은 애들 다섯, 여섯도 다 키웠다.'  '애 하나, 둘 키우는 건 거기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힘드냐' ' 옛날 엄마들은 애 낳고 바로 밭에 가서 일도 했다.'며 요즘 부모들은 엄살이 심하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옆집에 고모, 이모, 큰집, 작은집 같이 살며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친척 어른이 늘 곁에 있고 아이들끼리 밖에 내보내도 전혀 위험하지 않던 옛날과는 달리 친구 엄마, 친구 아빠도 조심해야 한다는 슬프지만 현실적인 교육을 해야 하고 아이가 어디 갈 때마다 엄마 아빠가 같이 가야 하는 요즘은 육아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요즘 육아는 참 피곤하고 힘든데 그런 시대적 변화에 대해 이해하고 그 힘듦에 대해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네가 좋아서 일하면서 뭘 힘들다고 하냐."

라는 말로 워킹맘들에게 비수를 꽂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가 있는 남자들은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는 아빠'고 아이가 있는 여자들은 '어린 자식보다 자기 커리어 먼저 챙기는 나쁜 엄마'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구시대적이고 이분법적인 생각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응원하는 듯 비난한 그 워킹맘이 사실은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와이프라는 걸 왜 모르는걸까.


당신이 지금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있는 그 똑 부러지고 공부도 잘하는 딸들이 회사에 들어가서 그런 대우를 받게 된다면 그때는 뭐라고 할지 참 궁금해지는 분들이 있다. 물론 그분들은 인지를 못하시지만...


왜 계속 일하세요?

우는 아이를 그대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 같이 울던 그때도 했던 고민을 아직도 하고 있지만 똑 부러지는 답은 사실 아직도 찾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커리어가 아이보다 더 중요해서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던 나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고, 그건 본인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기대이고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도 왜 계속 일하세요?' 라는 질문이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회사생활 해왔는데,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만 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보다 더 이상하지 않은가?


Ruth Bader Ginsburg (미국 연방대법원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원관)


육아 10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 뒤돌아보면 아이들을 키우면서 참 많 울었고, 참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고, 나 또한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회사생활도 잘 해 왔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도 키우겠다는 것을 지나친 개인의 욕심으로 치부해 버리고 폄하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밤중 수유하고 기저귀 갈아주느라 밤잠 설치는 일은 안 해도 되지만 학교를 보내고 나니 학습적인 부분에서 또 다른 다른 고민이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또한 잘 지나갔노라 생각할 시간이 반드시 올 거라는 것을 알기에 지난시간보다 앞으로의 시간은 조금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나를 포함)을 위해 이렇게 외치고싶다!


우리, 그런 쓸데 없는 걱정은 멍멍이들이나 줘버리고 힘 냅시다!

우리, 생각보다 잘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 생각보다 더 잘 크고 있어요!

그리고, 그 엄마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우리 아빠들, 함께 해주어서 고마워요!

우리 힘내서 함께 행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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