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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진 Dec 03. 2017

타로카드와 시를 함께 읽는 밤

1) 타워카드 그리고 <넝쿨의 시간>

내가 따라 그린 타워 카드. 하모니어스 카드 덱에 있다.



뭔가에 홀린 듯이 타로카드를 샀다.


평소에 타로를 그리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맹신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불과 며칠 전의 결정인데, 대체 왜 이걸 질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희한한 일이다. 갑자기 취미생활을 늘리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고, 타로카드 공부가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오히려 무관심의 영역에 가까웠다. 주위에는 예뻐서 샀다고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분명 있긴 했다. 그러나 기억이 나질 않으니 영 홀린 것만 같다.


지난 주말, '진짜 나만의 방'이 생겼다.


그 동안 방 안에 있던 큰 가구들은 부엌과 동생 방으로 옮겨지고, 새로 들인 싱글 침대를 비롯해 오롯이 나만 쓸 수 있는 물품들만 남았다.

어릴 때부터 내 몫의 방이 언제나 있긴 있었다. 자취를 했을 때도 당연히 독립된 나만의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 왜 유독 이번 정리 이후에야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나는 집순이이지만 방에 정을 주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주말 이후 이상하게 신이 나서는, 꼬마전구며 향초 따위의 소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꾸미기에 흥미나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던 터라, 역시나 희한한 일이다.


방을 정리하던 중 동생이 쓰던 색연필, 파스텔, 물감, 철사 등의 미술 재료가 나왔다. 내가 연극할 때 쓴 흰색 천과 엄마의 색깔 보자기도 나왔다. 많은 물건들을 후련하게 버렸지만 위의 재료들만큼은 어쩐지 한 상자에 담아 보관하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나를 위한 카드를 뽑았다.


향초를 켜고 보자기를 깐 다음 카드를 섞었다. 미리 계획해서 보관해둔 것도 아닌데 용케 제 역할을 얻어가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오늘은 내게 어떤 하루가 될까'라는 질문에 나온 카드는 바로 타워.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이 무너지는 카드다. 붕괴, 파멸, 몰락, 종말. 이런 무시무시한 상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변화와 해방을 뜻할 가능성도 안고 있다고 한다. 뽑고 나서 키워드를 확인해 보니, 두렵기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나는 변화를 그리고 있던 사람이었나보다. 낡은 것이 무너져야 새 것이 들어올 자리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쟁여 두었던 색연필도 꺼내어 타워 카드를 따라 그리고 색칠했다. 색칠하며 의미를 곱씹었다.


어떤 시가 한 편 떠올랐다.


시를 갖고 일했던 경험이 퇴사 이후 오랜만에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상징으로 가득한 타로 카드는 길하거나 흉하거나, 양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다는 점이 타로의 매력이니까. 이왕이면 길한 쪽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문득 아래의 시가 떠올랐다. 낡은 아파트 벌어진 틈으로 씨앗이 움트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시.


앞으로 타로카드와 시 한 편씩을 함께 읽으면 되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밌는 건 해 봐야 할 일. 첫 번째라는 부제를 붙여 글을 발행한다.




***

넝쿨의 시간
         손택수
 
베란다 내벽에 금이 우글우글하다
담쟁이
넝쿨이 집을
휘감고 있는 것 같다
이 집에 사는 몇 해 동안
내 얼굴에도
잔금이 생겼다
결석을 품고
이마를 찡그리던 밤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듯
넝쿨이 이마 끝까지 뻗어올랐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벽이 무너지면 넝쿨도 사라지는 것 아닌가
넝쿨에 양분을 대는 건 사실
벽의 견딤이 아니던가
간신히 버텨보던 시간도 가고
밤이면 낡은 아파트 벌어진 틈으로
숨소리가 들려온다
뭉쳐진 돌이 부서지는 소리
틈을 벌리는 줄기 속에서 씨앗들 움트는 소리




=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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