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4에 썼던 글을 꺼내 읽다)
고등학교 친구 나영이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삼 년 전 겨울이었다. 초등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고시를 앞두고 있었다. 나영이는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 불안해 했고, 나는 응원했다. 그런데 묻지 않은 것이 있었다. '왜'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건지.
그 때 나는 별 의문 없이 살고 있었고 나영이는 교대를 다녔다. 철없게도 전공에 따라 친구의 미래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2016년의 마지막 날 새벽, 삼 년만에 만난 우리는 영월에 있는 현아 사택의 침대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두 달 전에 회사를 관두고 머릿속에 희미한 물음표가 가득한 나와, 대전에서 어엿한 교사로 막 전담학기를 마친 나영이였다. 현아는 먼저 잠들었지만 남은 둘은 일박 이일이 아쉽다며 끝없이 수다를 이었다. 온갖 주제가 나와 돌고 도는 중에 내 귀를 자주 사로잡은 나영이의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우리 반 애들 보고 싶다. 애들이 너무 예뻐."
대전 어느 초등학교 삼학년 이반, 스물 네 명의 열 살짜리 아가들은 그렇게 방학이 시작된 후에도 담임 선생님의 무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다른 얘기를 하다가도, 애들이 너무 예쁘다, 라고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나 예쁠 수가 있나? 분명 말썽도 부리고 말 안 들을 때도 있을텐데.
내가 열 살이었을 때를 떠올려 봐도, 중고등학교 시절 봉사활동 시간에 공부방 같은 곳에서 문제지를 풀어 주러 만났던 열 살짜리 애들을 떠올려 봐도, 그 애들이 무조건 예쁘지만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은 빨간 색연필이 그리는 동그라미나 가위표 따위엔 전혀 관심 없는 채 그저 밖으로 튀어 나가고만 싶어 하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꽉 눌린 탱탱볼들 같았다. 통통한 볼에 콧물 자국 같은 걸 그어 놓고 산수 문제 앞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 때 그 아이들과 별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초등학생들이 산타 모자를 쓰고 브이를 그리며 웃고 있는 사진들을 나영이는 휴대폰 사진첩으로 보여 주었다. 한 명 한 명, 각각 두 장씩 찍어 주었다고 했다. 웃음을 머금고 있는 눈빛들을 한 명씩 넘겨 가며 보니 그래, 예쁜 것 같긴 하고.
우리는 미술 시간에 그린 나무들도 보았다. "색을 어른들처럼 평범하고 무난하게 쓰질 않는다니까." 확실히 그랬다. 옆 색에서 예상치 못하게 훅 튀어 버리는 색깔들이 화려하게 변주되었다. 어떤 아이는 그라데이션을 잘 썼다. 어떤 아이는 색을 섞어서 밑그림에 없는 새로운 문양을 잘 만들었다. 그렇게 개성 있는 게 스물네 개 모여 있으니 그래, 정말로 예쁘긴 했다.
나는 나영이에게 나의 초등학교 시절 가장 좋았던 선생님의 기억 두 개를 알려 줬다. 하나는 갓 입학했을 때 매일 하교길 모든 아이들과 다같이 교문까지 걷던 첫 담임 선생님의 것이었다. 양 쪽에 항상 두 명의 손을 잡고 있었다. 선생님 손은 두 개뿐이고 사십여 명이 돌아가면서 손을 잡아야 하니 내 차례가 오는 날은 흔치 않아 더 간절했다. 두 번째 기억은 삼사학년 쯤 일년을 마치고 종례를 하던 날의 일이었다. 그 때의 담임 선생님은 한 명 한 명을 마지막으로 아주 꽈악 안아 주는 걸로 학기를 마쳤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선생님들이지만 그 손과 품의 느낌만 남아있다. 나영이는 그 얘기를 듣고 '나도 엄청 자주 안아 주고 헤드락도 걸고 그러는데 애들이 좋아하고 기억해 줄까'라고 말했다.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들이 그래서 조금 두려웠었다. 어렸을 때 눈 앞의 어른이 얼마나 커 보이는지, 얼마나 길게 남는 기억을 주는지 아니까. 긍정적인 영향만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다. 싹을 틔울 수 있게 햇빛과 물을 주는 쪽이 될지 모든 걸 가리는 그늘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나영이의 반 아이들은 "선생님이랑 있으면 이백분이 이십분 같아요. 저는 선생님 같은 선생님은 앞으로 못 만날 걸 알아요."라고 말했다 한다. 나영이는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과 노는 게 좋아서 스물네 명과 다같이 노느라 반에 왕따가 없다고도 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느라 신경을 못 써주는 아이들이 보이면, 그게 눈에 밟혀 더 열심히 공부를 가르쳐 주게 된다고 했다. 그 어린 존재들에게 나영 선생님은 가능성의 싹이 트도록 햇빛과 물을 준 상대로 남을 것이다. 분명히.
말 안 듣는 순간에는 그래도 밉지 않냐는 질문에 나영이는 아주 분명하게 '아이들이 밉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스트레스 받을 때는 있는데, 나는 걔네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돼. 어렸을 때 내가 선생님들한테 진짜 많이 혼났어. 장난친다고 혼나고...... 근데 어릴 때 많이 혼나 봤던 거, 이제 그게 내 특장점이야. 난 아이들이 이해 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속으로 결정했다.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은 나영이인 것으로. 내 기준에 가장 선생님다운 선생님도. 이런 사람이 선생님 해야지, 그럼, 그래야지.
어릴 때부터 흥이 나면 막춤을 추고, 고등학교 때에도 칠판을 어깨로 올려 가며 칠판지우개와 대걸레 소품을 활용한 '칠(판)지(우개)댄스'로 임팩트 넘치는 야자의 추억을 남겨 줬던 엄청난 나영이. 요즘은 칠판이 고정되어 있어서 어깨로는 못 올린다지만, 막춤을 춰도 혼내기는커녕 함께 흔들 나영 선생님이 맡은 반에는 어떤 흥이 돋을지, 어떤 가능성들이 반짝반짝 살아날지 기대되고 부럽다. 마이 페이버릿 티처 나영, 산타 모자를 씌워 줬던 아이들 중 누군가의 마음에도 제일 좋아했던 선생님으로 남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