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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by 엄지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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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죽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했던 날도 지나면 아무렇지 않은 날이 오게 된다.

20살 초반에 수능 중독으로 대학을 잘 가는 게 내 인생에 큰 목표였고,

3번의 대학 실패는 큰 자존감 바닥을 쳤지만

취업 준비하면서 이력서 200번 넘게 쓰다 보니

수능이 아무렇지 않게 됐다.

그렇게 취업을 하고, 살다 보니 또 힘든 일들이 많았는데

취업 준비했을 때 힘들었던 순간들이 잊혔다.


예전에 친구가 '신은 인간이 견딜 고통만큼만 준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아 저는 무교입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무뎌질 때쯤 또 다른게 힘든 게 온다.

이 사람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슬픈 순간에도 밥은 잘만 잘 먹게 되고,

잊히지 않은 것 같은 사람도 우연히 만나도 아무 사이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가게 된다.

그렇게 전부일 것 같던 사람도, 친구도 남이 된다.


기억에 잊힌 사람들도 있고,

오랫동안 친구로 남은 사람들도 있다.

이 나이쯤 되면 20년 지기 친구도 있는 거 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느껴진다.


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전화를 잘 하는 편이라

전화했을 때 "그냥 전화했어"라는 말이 편한 사이가 있고,

울고 싶을 때 전화해서 울수 있는 친구가 있고,

힘들고, 죽고 싶다고 했을 때도 주저 없이 제주로 내려와준 친구들도 있고,

기쁜 일이 있을 때 말하면 나보다 더 두 배로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힘든 일 이 있을 때 애도 기간이라는 멘트로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기꺼이 나의 속 마음도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나는 타인이 지극히 자기 시간과 마음을 내어 기꺼이 응원해 주고, 생각해 주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알았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마음이 결핍되고, 가두는 건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하든 엄지니까, 엄지라서 할 수 있다고 끝없이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 나아가 내 성격의 장단점을 알아가고,

(생각해 보면 20대 때 회피형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땐 회피형이나 이런 단어들을 몰랐으니)


10대, 20대 때 많이 했던 고민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된 게 가장 큰 것인 것 같다.


그리고 평생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진짜 나는 복받은 것 같다. 잘 살고 있고, 잘 살았다.


누군가는 삶을 소풍이라고 비유했다.

꽤나 괜찮은 소풍이었다.

즐거운 소풍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젠 좀 편하게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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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촬영하고, 차안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바라보며 생각났던 글감


예민하고, 뾰족한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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