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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익스피어 Jul 18. 2024

[제단글] 무의식으로 고기를 굽다!

- 앱 제시단어 : 형사

[제단글 : '제시단어로 글쓰기'의 준말. 제시 단어를 앱(RWG)을 통해서 받으면 그 단어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하여 글을 쓰는 것.]

- 앱 제시단어 : 형사

- 그림 : chatGPT 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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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검사를 하면 나는 ENTP 라고 나온다. 발명가형이라고 소개하는데, 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아닌 것도 있는 것 같고... 뭐, 재미있는 테스트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왜 그렇게 얘기하냐 하면, 나는 드라마를 보면 눈에 수도꼭지를 틀고, 어쩔 땐 야구나 축구와 같은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도 눈물이 터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 나는 F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도 T가 나온 걸 보면, 사람을 저런 영문자 몇 개로 유형화 시킨다는게 꽤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아내는 T임이 분명하다고 느낀다. 드라마를 보는 것 자체를 그리 즐기지 않으며 소소한 일상에 감동을 받거나 하는 일도 그다지 없다. 아, 즐겨보는 건 드라마가 아니라 '용감한 형사들'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미스테리 내지 범죄와 관련된 것들이다.

성격이 무엇이면 어떠랴. 서로 사랑하며 살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성향이 다른 데서 오는 감정적 불일치에 대해서는 가끔 난 불만이 생기긴 한다.


"와이프, 나 여기가 아파."
"병원가. 저번부터 가라니깐 왜 아직 안갔어?"


난 이렇게 대화가 흘러가면 좀 섭섭하다고 느낀다. 그래도, 아내의 위로 섞인 몇 마디는 듣고 싶다. 그래서, 왜 좀더 살갑게 얘기해주지 않냐고 하면, "나 참, 까다롭게 구네." 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 ㅠㅠ


이런 게 쌓여있다가, 어느 날엔가 정말 어이 없는 일을 겪게 되었다.

어느날 위와 비슷한 대화가 있었다. 물론, 나는 그날 역시 아내의 위로 섞인 따뜻한 말들을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우리 가족은 고기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먹게 되었다. 난 그날 고기를 구울 때, 아내가 걱정을 하며 "굽지만 말고, 좀 먹으면서 해!"라는 말을 할 정도로 고기를 굽는 데 열정을 보였다.


따로 뭔가 의도한 바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내가 좀 먹으면서 구우라는 말을 몇 번 하고 나서야 나는 굽기만 하던 모습을 바꿔 고기도 먹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내에게 '나를 챙기는 몇 마디'를 듣기 위해서 그런 귀여운(?) 반항을 했던 것이었다. 아내에게서 좀더 따뜻한 말들을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나는 일부러 뭔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걸 깨닫자, 나는 나 자신을 향해 웃었다. 비웃었는 지도 모르겠다. 어린 애들이나 초딩이나 할 법한 '엄마의 관심 끌기'를 시전해버린 내가 조금은 웃기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생각보다 무의식이라는 건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가 의도하진 않지만, 결핍을 느낀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 꽤나 흥미로웠다.


그런 걸 공부해 보고 싶어서, 얼마전 모 대학의 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2학년 편입을 신청했는데, 덜컥 합격해 버렸다. 이 공부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50대 이후의 삶에 또다른 직업으로 돌변해주진 않을까, 나와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 결국 글쓰기에 긍정적 변화를 주진 않을까 기대해 본다.


다른 분들도,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시다면 꼭 용기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헤헷. 저 좀 있으면 50인데 대학생 되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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