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는 생명이다!
“장비는 생명이다”
10차 훈련은 이 한마디가 다했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설악산 죽음의 계곡.
퇴근 후 금요일 밤에 서둘러 내려온 속초에서 형님들의 배려로 숙소에서 따습게 잠을 청한 후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에 집결하였다.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이번 동계훈련을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다.
뭔가 마음이 긴장을 잔뜩 하고 있나 보다.
말로만 듣던 그곳을 가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길었다.
오랜만에 보는 적벽과 까마득해 보이는 철계단, 양폭대피소를 지나 계곡을 들어서자 장비를 착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우왕좌왕 크램폰을 장착하고 나니 땀이 흐른다.
생각보다 눈이 없어 걷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예상은 했으나 온통 굵직한 바위들이라 발이 금세 피곤해졌다.
어디가 목적지인지 감이 없어 갈길이 더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길잡이를 하는 대원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말로만 듣던 죽음의 계곡에 도착했다.
또 다른 이름은 건폭.
그곳에 이르면 뭔가 스산한 기운이 돌면서 매서운 추위가 머문다고 했는데 다행인 건지 그날따라 바람조차 조용했다.
가만히 주변을 쓰윽 둘러보니 뒤이어 온 대원들이 안자일렌으로 오르고 있었다.
다 같이 죽든지 다 같이 살든지 딱 2가지라는 안자일렌.
저 줄 하나로 우리의 목숨이 달려있다니 더없이 소중한 마음에 그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 뒤로 그림같이 펼쳐진 설악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올라올 때는 발아래를 집중하느라 주변을 놓치고 있었는데 누군가 수묵화를 그려놓은 듯 멀찌감치 나를 바라보는 산의 풍경이 그윽했다.
폭포를 둘러싼 선경이 황홀했다면 처음 경험한 설상 훈련은 혼을 쑥 빼놓을 정도로 정신없었다.
미끄러운 곳에서 잘 들리지도 않는 빙벽화를 위로 쳐들어야 하는 활락정지와 푹푹 빠지는 눈 위에서 추락 훈련, 어센딩을 하며 스크루 박고 휴식 취하기, 방향 전환하며 걷기.
뭐 하나 수월하게 해낸 것이 없을 정도로 기술과 체력 모든 면에서 부족해 힘이 들었다.
나를 제외하고 다들 어찌나 잘하는 걸로 보이는지 눈썰매장에 온 것처럼 마냥 신이 나 보이는 대원이 보이는가 하면 훈련 자체를 즐기는 것이 전해졌다.
그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라는 영규 형님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나의 느림과 부족함으로 인해 대원들이 훈련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일었다.
얼이 빠진 채로 휴식을 취하다 강신원 이사님의 5분 안에 집합 지시가 떨어졌다.
오늘 훈련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던 터라 기습 집결은 아뿔싸 했다.
고산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잠을 잘 때도 쪼그리고 앉아 있기도 한다는 대장님의 예전 이야기가 스쳤다.
2분 안에 장비 착용을 완료할 때까지 훈련을 계속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장갑 낀 손은 자꾸 어긋나 마음이 졸였다.
여러 차례 착용을 벗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2분을 채워 장비를 착용했다.
"장비는 생명"이라고 설악산이 울리도록 크게 복창하라는 강신원 이사님의 말씀에 대원들 모두 힘을 내어 소리를 질렀다.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외침이었다.
이날 이 훈련은 처음 해본 설상 훈련과 더불어 오래 기억에 남으리라 생각했다.
별구경하라는 숙경 언니의 이야기에 막영지를 나와 건폭을 홀로 걸었다.
유난히 빛나 보이는 별을 한번 보고 사람들의 불 꺼진 텐트를 보고는 이내 조원들이 있는 불빛을 향해 돌아왔다.
문득 작은 민수 씨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불완전한 곳에서 불안전한 행위"를 하는 우리.
그 안에서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함께 걷는다.
장비는 생명이다라고 외치게 만드는 힘은 결국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
슬며시 다가와 곶감을 건네주는 마음과
별을 올려다 보라는 낭만과
부족함을 탄식하며 버럭 하는 매 순간에도 그들은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안다.
저 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포기하지 말자고 조용히 속삭여 본다.
별은 사라지지 않고 기억하는 한 간직하는 거다.
내 안에 별은 우리 대원들과 그들을 위해 모인 모두 다.
부디 완전한 생명처럼 내내 안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