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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Aug 20. 2023

한여름 이깟 땡볕쯤이야!

씩씩하게 버티기

감을 완전히 잃었다고 쓰려다 감이 있기는 했냐로 바꿔야 함을 알아차린다.

작년 코로나 이후 몸 상태가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체력은 금방 바닥나고 허기는 쉬이 채워지지 않는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신림역으로 향했다.

날이 더워 체력이 금세 방전되지는 않을지 염려되었지만 오랜만에 산악회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조금 힘을 내보기로 한다.

기력이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지만...


신림역에서 사람들과 만나 승원 형님의 차로 암장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석봉 형님과 승원 형님을 만나서 등반을 한다니 괜히 신난다.

애초에 한우물암장을 가려던 계획을 주차 단속 카메라의 위엄에 눌려 BAC로 바꾸기로 한다.

몇 차례 가봤던 길이라고 익숙한 이름이다.

어서 가보자.

비교적 짧은 어프로치인데 땀이 옷 사이로 주르륵 흐른다.

푹푹 찌는 더위 탓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지 했는데 웬걸.

암장을 가는 도중 사람들을 만났다.

암장 상단에는 이미 등반자들의 목소리가 산을 울리고 있다.

다들 참 부지런하구나.

흐르는 땀과 함께 흐물거리는 몸을 추슬러 장비를 착용한다.

오늘은 확보만 하겠다며 승원 형님이 벨트를 착용한다.

후배들과 시간을 함께 하려고 달려온 석봉형님.

오랜만에 함께 줄을 묶는구나 설렜는데 형님의 아픈 어깨가 마냥 속상하다.

이제 선배님들과의 등반은 점점 어려운 건가?

괜히 하늘만 쳐다본다.


볕 들어오기 전에 서두르라며 재촉하는 목소리.

발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지, 디뎌도 괜찮은지 확인해 보려는 태옥씨가 줄을 걸기 시작한다.

이전에 이 길을 올랐던 것과는 다르게 주춤거리는 태옥씨를 올려다본다.

아픈가 보다.

줄을 거는 몸짓이 애쓰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의 등반을 지켜보며 나의 빌레이를 조언해 주는 석봉형님.

조용한 침묵이 바위를 가른다.

“완료”

“빌레이 해제”

뒷자리 출발하면서 시작부터 주춤거린다.

마음은 이미 저 끝에 도착했는데 입맛이 쓰다.

팽팽하게 줄이 당겨져야 안심이 되는 걸 보니 여전히 갈길이 멀다.

억지로 끝에 이르자 옆길 볼트에 줄을 이어 걸라는 주문.

왜 거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버벅거리다 힘이 다 빠질 때쯤 겨우 두 곳에 줄을 걸고 하강.

땀 꽤나 빼고 땅에 닿는다.

다음. 혜경언니.

언니의 등반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침착함이 느껴진다.하나둘 박자에 맞춰 차분히 올라가는 느낌.

쓱쓱. 척척.

이건 오로지 언니의 등반을 지켜보는 나의 느낌이지만 언니는 바위랑 대화를 하며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바위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며 눈 맞추는 듯한 평온함.

이런 고요를 배우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사진사로 우리의 모습을 연신 담아주는 석봉형님과 빌레이어로 함께한 승원형님.

두 분의 포효하는 듯한 등반 모습과 사뿐하게 오르는 몸짓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보지 못하고 한판을 끝내고는 서둘러 점심을 먹는다.


시장에서 사 온 김밥과 자두, 동태전과 동그랑땡.

언니가 싸 온 떡까지 푸짐하다.

바위와 대화하며 오르는듯

볕을 피해 둥그렇게 둘러앉아 허기를 채운다.

한 것이 없는데도 밥은 언제나 꿀맛이다.

이대로 낮잠 한숨 자면 좋겠다.

스치듯 지나가는 식사가 끝나고 아까 걸어두었던 옆자리를 등반한다.

태옥씨 다시 성큼 출발.

자연스러운 몸짓이다.

크럭스를 만나 잠시 고전을 하지만 이내 문제풀이 완료

끝까지 오르려는 몸짓

조금 무리를 하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

잠시 걱정을 하고는 이내 내 차례.

두 번째 코스는 균형이 중요한데 억지로 오르려고만 하니 자꾸 밸런스가 무너져 추락을 한다.

포기할까?

아직 두 판을 채 못했는데 벌써 힘에 부친다.

여기까지만 해보자 맘먹고 한참을 바위와 씨름하는 나.

이런 나의 흐름을 알아채는 확보자.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그때서야 겨우 끝을 오를 수 있었다.

혜경언니의 두 번째 코스 도전.

다리를 쫘악 펼치며 크럭스와 또 다른 대화를 한다.

이건 예술이지

바위는 하나인데 저마다 다른 동작으로 오르는구나.

등반의 세계는 이렇게 다채롭다.

태옥씨의 세 번째 오름짓을 마지막으로 오늘 오후 등반은 끝.

석봉형님이 점심식사 내내 끈질기게 승원형님을 설득해 찾아가는 자양시장 족발집 뒤풀이행.

갈길이 멀다며 서둘러 등반을 마친다.

뭔가 아쉬움이 남았으나 점점 볕이 들어오는 바위 앞에 서 있을 의욕 또한 부족한 나.

슬며시 미소 지으며 장비를 챙긴다.

짧은 시간이지만 바위에서 오랜만에 사람들과 함께하니 그저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겁다.

몸도 덩달아 유쾌해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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