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트라 Mar 18. 2020

선물같은 삶, 마음껏 표현하고 살아요

느린시선으로 따라가는 일상

계획과는 달리 싱숭생숭한 연초를 보내는 중이었다.

지난 한 주는 개인적인 욕심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올 목표 중 하나가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

천성이 산만한 탓인지, 자꾸 기웃거리고 싶은 일이 생겨나는 까닭이었다.

분명 욕심이다.


생각하는 일들 혹은 욕심을 추진해나갈 때 그 일에 상응하는 보람이 기다릴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나의 개인적 일상과 일의 밸런스를 지켜나가는 것은 아마가 아니라 확실히 어려울 것이다.

그 탓에 곁에 있는 남편에게 괜시리 푸념과 짜증섞인 걱정만 늘어놓으며,

또 그런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답답했던 한 주였다.



그러던 중,

어제는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 한 통이 왔다.

재작년부터 작년 가을까지 개인레슨을 하던 분이었다.

일년 조금 넘는 시간, 매 주 한번씩 만나 요가를 했다.


지인이 어렵게 제안한 개인레슨이었는데, 항암중이신 분이었다.

사실 그 무렵, 나는 아픈 분들을 많이 케어하는 중이었다.

치매 어르신들의 정규클래스가 매주 두번씩 있었고,

재활 중인 운동선수, 선천적인 장애로 힘겨워하던 20대 여성.

뿌듯함은 물론 있었지만,

아픈 사람들이 지닌 특유의 우울함에 나도 조금씩 지쳐가는 터였다.

고민했지만, 그 레슨을 부탁하던 지인에게

그 분의 히스토리를 들었고, 결국 그 분을 만나러 갔다.



췌장암 중기를 넘어섰고, 시한부 6개월 판정을 받으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암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이 쾌활하고 유쾌하셨다.

요가는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곧잘 따라오셨다.

매 수업에 성실하셨고, 최선을 다했다.

운영하는 회사도 매일 아침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오신다고 하셨다.

매일 갈 때면 쇼파테이블에 한가득 책이 쌓여있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레슨 기간 중 한번 수술로 인해  한달 반 가량 쉬었지만,

회복기에 들어서자 바로 또 요가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매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나는 그 분이 꼭 완치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마음 깊이 바랐다.

그리고 그 분이라면 분명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오히려 암환자는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먹기보다

좋아하는 음식을 잘 먹는게 좋다고 하시는 말씀에,

나는 매 수업마다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을 조금씩 사들고 갔다.


늦은 나이지만, 결혼을 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고 했다.

종종 나의 연애담을 궁금해하시기도 했고,

가끔 수업이 끝날 쯤이면 영화티켓을 여러장 주시며

"남자친구랑 보고와요!" 라며 웃으며 건네주시기도 했다.


계절이 두어번 바뀌자 처음과는 다르게

수업 전 후에 사담을 나누기도 했고,

처음과는 다르게 사바사나 때 깊은 이완에 주무시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내가 치앙마이에 길게 여행을 다녀와서 수업을 하러 갔고,

그 때 여행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그 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나를 만난 시점은, 암판정 받은지 한달 정도 되었을 때라고 한다.

식단, 운동 하나 소홀하지 않고 자기관리에 철저하게 살아왔고

늘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왔기에

오히려 본인보다 주변에서들 어떻게 이런일이 있냐며 침통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사실 내일 당장 잘못되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며.

50이 넘도록 정말 열심히, 또 즐겁게 살아왔고,

하고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 모두 하며 그렇게 평생을 살아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며.


젊은 나이에 대기업에서 취직해서 긴시간 인정받으며 회사 생활을 했고,

삼십대 후반, 본인의 회사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며.

안 가본곳이 손에 꼽힐만큼 세계를 여행했고,

주변엔 감사하게도 늘 너무 좋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었고,

늦었지만 몇년 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서 참 행복하다고.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천벽력처럼 암 판정을 받았는데,

남편을 생각하면 빨리 회복하고 싶다고 씽긋 웃으셨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씀하시길

"선생님, 하고싶은거 다하고 표현하고 싶은거 충분히 표현하면서 살아요.

나는 돈을 정말 많이 벌었거든, 근데 딱히 돈을 모아야 겠다는 생각은 안했어.

먹고싶은 거, 하고싶은 거, 가고싶은 거 미루지 않고 살았더니

내가 이렇게 아픈데도 내 인생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잖아.

난 솔직히 내일 당장 잘못되어도 내 인생 여한이 없거든.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관계를 미루고, 하고픈 일들을 미루는데 난 그거 아니라고 생각해.

돈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거든.

그러니 돈에 너무 연연해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경험에, 사랑하는 사람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게 좋은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서 한동안 어떤 말도 못했다.


내가 눈물을 글썽이자

"에이 선생님! 괜찮아 그렇게 심각할거 아녜요~ 내가 괜한 얘기를 했나보네!

지금처럼 많이 여행해요! 내가 선생님을 잘 알진 못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복을 잘 찾는 사람 같아.

많이 표현하고 사랑하며 살아요, 그게 일이든 사람이든"


"네, 얼른 나으셔야죠."


하고 수업을 마쳤고,

그 날은 더더욱 편안하게 휴식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 고요함을 깨고싶지 않아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을 나섰다.


그리고 두어차례 더 수업을 진행했고,

며칠 뒤에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제가 이번주 급하게 항암치료를 진행해야 해서 퇴원하면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나는 답장했다.

- 네 치료 잘받으시고요. 힘내세요, 화이팅!

"화이팅!^^" 이라고 답장이 왔고,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텀이 길어지자 사실 조금 겁이 나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늘 궁금했고 염려했다.

그렇지만 믿고 있었다, 잘 이겨내고 계실거라.


그러던 중 이틀 전, 모르는 번호로 온 메세지는 그 분의 부고소식 이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따뜻한 미소와 목소리가 그리웠고

용기내어 새해에 인사라도 드릴걸 너무나 후회됐다.


이내 나의 생활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문득 내게 해주셨던 그 따뜻한 조언이 생각났고,

내가 했던 고민은 고민이 아니었다.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