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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트라 Mar 18. 2020

자연, 부모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


언제나 품어주는 자연의 모성,

강촌농원에서 배운 유년시절의 자연


 지난 여름 주말없이 일만 하던 바쁜 일상에 예상치 못한 이틀의 휴가가 갑자기 생겼다. 나는 너무 쉬고 싶다는 생각이 필사적으로 들었고, 급한대로 국내 여행지를 찾다보니 일단 평창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름 성수기 갑자기 생긴 휴가라 숙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고, 차 안에서 열심히 서치한 끝에 평창에 있는 한 통나무 펜션을 찾았다. 처음 가본 그 곳에 도착하는 순간 이상할 만큼 깊은 안도감이 몰려왔다. 원래 알던 곳인듯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했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나무의 향기와 온도,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주는 익숙함이 나의 어린 시절의 향수로 맞물리기 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나는 바쁜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엄마,아빠는 일이 늘 바빠서 방학 때면 언제나, 주말이나 연휴에도 종종 나와 내 동생을 경기도 광주에서 과수원을 하시던 외할머니 댁 ‘강촌농원’에 맡겨두곤 하셨다.

강촌농원 한 가운데 통나무로 지어졌던 할머니네 집은 전면에는 밭과 산이, 집 뒷쪽으로는 사과와 배를 키우는 과수원이 있었고 왼편에는 큰 밤나무를 둘러싼 커다란 오두막이 그 오두막 아래로는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엄마는 방학이면 어디 좋은 곳 데려가지 못하고 늘 할머니에게 나와 동생을 맡겨두는 것을 몹시 미안해했다. 그 어린 시절에도 함께 있었주지 못하는 엄마의 미안함을, 할머니 손에 나를 건네며 바라보는 엄마의 촉촉한 두 눈빛을 통해서 내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의 온도로 알고 있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때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사는 게 바빠 너희가 어떻게 컸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며 말 끝을 흐리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매번 마음 깊이 와닿게 느끼고 있지만, 사실 나는 엄마의 우려와 다르게 할머니네 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왜냐하면 재밌는 일 천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겨울방학에는 가기 꺼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겨울에는 다른 계절에 비해 할 것이 많지 않았고, 할머니가 직접 빚은 메주를 발효하기 위해 방 안에 메주를 들여놓았고, 나는 그 메주와 같은 방에서 자야했기 때문이다. 그 쿰쿰한 냄새가 익숙해질 즈음 또다른 메주가 들어와서 나는 할머니에게 늘 볼멘소리를 했었다. 하지만 그 메주를 제외하곤 꽤나 재밌는 일이 많았던 강촌농원이다.


자연에 완벽하게 고립된 할머니네서 오롯이 24시간을 보내다보면 숙제를 하고 책을 보고도 할 게 없어서 일부러 할 것을 만들어내곤 했다.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처마 밑에 앉아 산 아래 피어나는 거대한 아지랑이를 보는 것으로 시작, 사실 안개인지 아지랑인지 모를 눈 앞에 피어나는 웅장한 광경은 경이로움과 동시에 왠지 어린 나에게는 두려움을 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한참 산을 바라보다가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면,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가 이슬 가득 머금은 네잎 크로버를 찾거나 새벽부터 밭일을 나가신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한참을 쟁알 거리다가 돌아오곤 했다.

낮이되면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곤 강촌농원 곳곳을 누비며 할 일들을 찾으러 다녔다. 잠자리를 잠자리통에 한아름 잡았다가 풀어주고를 몇 번이고 반복하기도, 시냇가에 물안경 하나 달랑달랑 들고 내려가 물고기를 구경하고 들고온 물컵으로 송사리도 잡곤 했고, 개구리 알을 잡아와 올챙이로 키워서 진짜 개구리를 만드는 일은 매년 치르는 연중행사였다. 고학년이 됐을 무렵, 그 시냇가에서 물뱀을 보곤 무서워서 다시 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연에서 실컷 뛰어놀다가 해질 무렵 들어와 길어쓰는 시냇물로 몸을 씻고나면 어느새 땅거미가 지곤 했다. 그만큼 강촌농원은 청정자연, 자연 그 자체 였다. 책으로나마 볼 법한 실재의 것들을 나는 생생하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자랐다.



자연에서 보냈던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떠올리기만 해도 참 기분좋고 행복한 기억이다. 그리고 어릴 적의 그 경험은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언제나 상기하게 한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자연을 가만히 바라보고 느끼고 있노라면, 나를 섬세하게 바라보고 달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엄마의 품이 그리워지듯, 삶이 퍽퍽하고 버겁게 느껴질 때면 푸른 하늘과 나무를, 너른 잔디밭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자꾸만 찾게된다. 나아가 그것들이 오래오래 푸름을 잃지 않고, 고통없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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