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9시 뉴스 맨 마지막에 나오던 스포츠 뉴스는 꼭 챙겨보곤 했다. 축구 규칙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경기를 보는 게 그냥 좋았다.
그 후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겪고는 축구 열정이 배가 됐다. 그때를 기점으로 한국 축구를 넘어 유럽 축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리그로 진출하니까 저절로 관심이 갔던 거다. 그렇게 한참을 K리그,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가 등을 눈여겨보다가 대학을 갔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유로움에 흠뻑 젖어 놀고 마시고 먹느라 축구는 뒷전으로 밀렸다. 성인이 되니까 축구보다 재밌는 게 훨씬 많더라...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에서 3개월간 지낸 적이 있다. 그때 당시 손흥민 선수가 함부르크 소속이란 건 알았지만,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손흥민 선수 경기를 직관할 기회가 무진장 많았으면서도, 한 번도 경기장에 가지 않았다. 이유는 맥주병 들고 목에 핏대 세우며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독일 아저씨들 사이에 나 혼자 있기가 좀 무섭기도 했고(동양인이 별로 없어서 눈에 확 띔), 당시 임신 중이라 몸을 사릴 필요도 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축구고 뭐고 육아에 치이고 번역 공부에 치여 하루하루를 버티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동안, 손흥민 선수는 눈부시게 성장했고 마침내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에 입단해 마음껏 기량을 뽐내고 있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축구를 본다거나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진 못했으나, 그래도 뒤에서 묵묵히 응원은 하고 있었다. 축구를 향한 나의 열정 DNA는 그렇게 수그러드는 듯 보였다.
내가 독일 함부르크에 있던 시절, 뱃속에 있던 아이가 벌써 열 살이 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도서관에서 WHO 시리즈 중 메시 편을 읽고 또 손흥민 편을 읽고 나더니 축구광 팬이 되어 버렸다. 아이는 특히 손흥민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뛴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거의 손흥민을 신격화하는 중이랄까...
아무튼 우리 아들 덕에 나의 축구 열정 DNA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아주 뿜뿜. 유튜브의 토트넘 채널을 구독하는 건 당연하고, 손흥민 선수 경기가 있는 날엔 잠들기 전마다 밤을 새워서 경기를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잠들기 일쑤다. 요즘 토트넘이 좀 부진해서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경기가 있는 날은 막 설레고 긴장되고 그런다. 묘하게 기분이 좋다. 역시 나는 원래 축구를 좋아했던 거였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없어져서 우리 아이와 영국에 가서 손흥민 선수 경기를 직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