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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Kwon Jul 24. 2022

집 사고 싶은 외국인 노동자의 설움

내 몸 뉘일 집 한 칸 언제 살 수 있는가

내가 시간만 나면 방문하는 사이트가 있다. Suumo라는 일본 사이트인데, 우리나라의 네이버 부동산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방문했을것이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집을 빌리기 위해 자주 들렀고, 이제는 집을 사고 싶어서 괜찮은 매물이 없을까 들락날락 하게 되었다. 그 중에 괜찮은 매물을 발견하면 부동산에 연락을 하고 이후 계약을 진행하게 된다.


Suumo. "살다" 라는 의미를 가진 住む(sumu) 의 변형이 아닐까 한다.


그 집을 만난 것은 올 겨울,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지은지 몇 년 되지 않은 맨션 (일본에서는 한국의 아파트를 맨션이라고 한다. 아파트라고 하면 일본인은 우리나라의 빌라를 떠올린다.) 이고 스모에 올라온 리스트를 봤을 때 내부 시설들도 좋아서 예산이 맞으면 사고 싶어 부동산에 연락해서 매물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방문했을 때 첫 인상은 너무 좋았다. 공유시설도 크고 집 내부도 깔끔했다. 옆에는 공원이 있었고 근처에는 내가 자주 가는 슈퍼 체인점도 있었다. 도쿄역에 있는 회사까지도 도어 투 도어 40분 내외의 멀지 않은 거리였고 근처에 전철 노선이 3개나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조건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부동산 직원분에게 사고 싶으니 은행 대출 심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 같았다.


문제는 내가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것이었다. 내가 은행이라면 나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 평생 살지 않을 수도 있는 외국인에게 주택 융자를 선뜻 내주려기에는 리스크겠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자국민들에게 대출을 해줘도 수수료로 잘 먹고 잘 사는 은행이 굳이 외국인에게 대출을 내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 직원분은 혹시 지금 일본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할 생각이 있냐고, 혼인신고 이후에는 페어론 (둘이 함께 대출을 받는 것)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젊은 일본인답게 (?) 집을 사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왠만하면 나 혼자 대출을 받아서 내 명의로 집을 사고 싶었고 내 명의로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집값의 20%를 현금으로 내야한다고 했기에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집은 동향이어서 옆 단지의 남향을 사고 싶다는 생각에 틈틈이 스모에 들러 매물이 나왔나 보고 있던 와중이었다.


임대 vs. 자가 소유 어떤 것이 나은가 하는 것은 일본에서 유명한 난제 중 하나이다. 대부분 자가파이나 최근에는 임대파도 늘고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주 원하던 그 남향의 11층 집이 매물로 나왔다. 신착이라는 배너가 붙은 것을 보니 그 날 게재된 것 같았다. 바로 부동산에 연락을 했는데 며칠동안 답장이 없었다. 답답했던 나머지 직접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지만 그 날도 연락이 없었다. 그러더니 오늘 아침 문자로 띡 하고 다른 사람이 이미 구매를 결정했으니 보여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11층 집을 보고 연락을 한 뒤 바로 12층 집이 나왔길래 그 집을 판매하는 부동산에도 연락을 바로 넣었다. 올해 계속해서 저축을 하며 총알을 모아왔던 나는 이번에야말로 몇 층이든 그 집을 반드시 사리라 생각했다. 벌써부터 그 집에서 살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나날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런데 담당자에게 전화를 받은 순간 너무 기분이 나빴다. 외국인을 대하는 일본인 특유의 말투 (다른 일본인 고객이었다면 무척이나 공손했을 것이지만 외국인에게는 반말을 섞거나 얕잡아보는 투로 말하는) 로 어차피 너는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다는 전제로 말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내가 충분히 그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자 그 때부터는 조금 태도가 변하기는 했지만, 이 상황은 내가 원하던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대출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영주권 없는 외국인에게는 대출을 해줄 은행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알아보니 대출을 해주는 은행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에서는 부동산 회사와 연계된 은행이 있어서 고객들은 대부분 그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때문에 자신들과 커넥션이 없으면 대출을 진행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아무리 돈을 모아도 영주권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2등 시민인가... 내가 이 나라에 매년 내는 세금이 저기 길거리에 일본인들보다 더 냈으면 더 냈지 안내지는 않았을텐데... 일본인은 모아놓은 돈도 없이 그냥 100%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데 왜 나는... 하면서 속상해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그 날 밤에는 집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 모든 것들이 싫어졌다. 내 머리 속 행복회로에서는 나는 올해 말에 집을 사서 넓은 곳에서 요리하고 아침에 일어나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집을 살 수도 없고 바퀴벌레도 어디갔는지 놓쳐버리고 무서움에 떨고 있다니!


그래도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기로 했다. 영주권은 올 봄에 신청했으니 늦어도 가을에는 나올 것이다. 내가 원했던 매물이 생각보다 빨리 나오기는 했지만 언젠가 다른 매물이 또 나올 것이다. 그 동안 저금을 더 해두면 더 좋은 매물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지? 나도 그 집을 너무 갖고 싶었지만 그렇게 빨리 계약이 성사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사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물건이라는 이야기니까 그 집을 사는 것이 좋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위안을 삼자. 그리고 이번에 그 집을 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어.


내가 좋아하는 법륜스님이 즉문즉설을 하면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100% 이루어지는 것은 잘 생각해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한 원하는 것이 전부 다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나의 선한 의지에서 나왔던 행동들이 전부 다 좋은 결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서 기술을 배우고 싶다던 남동생에게 인문계가 더 낫다며 억지로 보냈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났다. 오히려 그냥 모든 것을 순리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맞을 것이다. 모든 것은 결국 인연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내 집은 언제 어떤 인연으로 찾아올까? 실망을 거두고 앞으로에 기대를 걸고 또 하루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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