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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architects Nov 12. 2023

은유적 잔재들

Dialogue 008

현재의 모든 일상들은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는 살아남은 역사이며,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수많은 생략, 변형과 응축, 단절과 왜곡의 과정을 거쳐왔다.     

remains of metaphor

사라진 뚝섬평야그리고 유원지

경성궤도는 동대문에서 왕십리를 거쳐 뚝섬까지 연결되는 교외 철도로, 경성 동부 지역에서 늘어가는 교통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부설되었다. 1934년 동뚝섬에 수영장, 아동 유희장, 매점 등을 갖춘 유원지를 조성한 뒤에는 유원지역까지 궤도 노선을 확장하고, 궤도차 이용자들에게는 유원지의 입장료를 받지 않기도 했다. 전원도시라는 이름으로 베드타운을 건설하고, 그 주변에 유원지나 공원을 조성해 열차 승객을 늘리거나, 연선에 유원지를 조성함으로써 연선의 개발을 꾀하는 등의 경영 방법을 활용했다. 결국 1930년대 뚝섬유원지는 경성의 도시화에 따른 교외 개발교통의 발달에 따른 이익 창출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도시화된 공원

광복 이후 공원 혹은 유원지로 지정된 면적은 점차 늘어났으나,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구불구불했던 한강이 직선화되면서 유원지의 배경이 되었던 넓은 백사장은 사라졌고뚝섬 일대가 완전히 도시화되면서 과거의 전원적 풍경도 사라졌다현재 뚝섬한강시민공원은 한강의 둔치 즉, 하천부지를 점용해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2009년 한강르네상스기본계획에 따라 리노베이션 되었다. 과거 유원지의 기억은 뚝섬유원지의 성격을 살린 어린이 테마 공간 등 현재 공원 설계의 주요 콘셉트 중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수영장 시설, 놀이시설, 그리고 수상스포츠 공간 등이 계획, 조성되었다.     


시대유적으로서의 교각과 한강

서울의 도시화로부터 시작되어 청담대교 북단의 기반시설 구조물이었던 미사용 교각(2개), 남단의 아무 용도 없이 서있는 교각(1개)은 이 시대를 대변하는 거대 조각에 불과하다. 근대화의 자취는 한강이 만들어낸 낭만적 일상과 동떨어진 채 보이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화 이후의 서울개발과정에서 남겨진 자취를 기억하고 만나는 방법에 있지 않다. 파르테논 신전의 오더와 유사한 폭 2.8m, 높이 15m의 거대 스케일, 교각의 존재를 인정하고 만들어진 놀이터의 환형 동선과 주차장의 빗금 쳐진 작은 영역은 교각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보여주며, 이러한 유휴공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장소성을 이야기한다. 현재의 수평으로 펼쳐진 한강은 우리에게 무한한 편안함과 감동을 주지만, 뚝섬평야에 만들어진 롤러코스터(청담대교), 그로부터 남겨진 산업유산, 한강 르네상스의 산물인 뚝섬 자벌레와 같이 시간의 잔재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자연스러운 자연(유사자연)과 같다.     


우리는 남겨진 교각이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경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근대적 건축언어가 만들어내는 물질성을 탈피하고유휴 교각이 자연으로 회기 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시간성산업유산으로서의 형이상학적 관계를 통해 자연스러운 도시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unit

frame

덧붙여진 스테인리스 프레임과 기둥표면은 기존 교각에 체결할 수 있도록 네 방향의 유닛으로 구성한다. 4개의 행잉 스트럭쳐는 서로의 구조에 결부되며, 유닛으로 만들어진 장치는 수직으로 쌓여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screen

실루엣을 만들어 줄  스크린은 용접철망을 가공하여 만든다. 단위 부재들은 유닛구조의 프레임에 후크 방식으로 결속하며 스크린의 색상과 망목의 밀도조절을 통해 선으로부터 시작하여 입체적  볼륨으로 변화한다.  

remains of metaphor

lighting

우리가 제안하는 빛은 자연을 닮은 은은한 빛이다. 반딧불이를 닮은 점형의 빛은 고가 위의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빠른 속도의 빛과 대조되며 기존의 뚝섬이 가지고 있던 목가적 풍경을 만든다. 선형 프레임의 모듈에 맞춰 설치되는 1500개의 led 램프, 기존 교각을 감싸는 가로 부재사이에 설치되어 빛을 발산하는 10개의 네온링, 지면으로부터 비치며 볼륨감을 만들어내는 4개의 업라이트 투광조명은 현대의 산업유산인 유휴교각을 배경으로 빛의 장막을 만들어내며, 한강공원에서의 새로운 경관으로써 낭만적 서사를 만든다.


remains of metaphor

자연천이의 진행

재탄생한 유휴교각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물리적 환경변화와 생물군집의 변화를 가져온다.

다양한 종의 복잡성과 안정성을 만들어낼 다음 세대를 위한 생태적 천이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현존하는 뚝섬의 조류
현존하는 뚝섬의 식생
remains of metaphor


자연에 동화되는 방식

우리가 제안하는 장치는 한강의 자연에 동화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면의 재료가 아닌 선의 재료를 통해 비, 바람, 홍수위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했고, 능소화, 인동초와 같은 덩굴식물이 쉽게 자랄 수 있는 식생환경을 만들어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한여름의 신록은 거대 교각과 철망의 존재를 사라지게 만들며 한강의 자연성을  회복한다.


형이상학적 유산

산업유산인 교각과 장치는 자연으로 회기 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투영한다. 교각의 스테인리스 마감은 거대 스케일의 육중함을 가벼움으로 변화시켜 감각의 환기를 불러온다, 선의 재료로 만들어진 가벼운 프레임은 공원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빛의 방향, 보는 이의 시점에 따라 하얗게 반짝이며 일정한 형태를 드러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감상가능한 하나의 예술품으로 작동한다.


* 2023 뚝섬 유휴 교각 경관개선 설계공모 / 참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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