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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씨 May 19. 2021

결혼과 가족에 대한 단상

곽정은님의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를 읽고

나는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나이 33세에 남자친구는 없고, 아직 결혼이나 육아에 대한 생각도 없다.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하는 시기이다 보니 자연스레 혼자인 지금의 상태를 기준으로 미래를 계획한다. 그래서 혼자 사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여성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01

결혼이라는 어려운 선택


이 책은 페미니즘의 색이 짙은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부분이었다.


'연애할 때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저를 배려해 참았지만,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는 개가 우선이냐 자기가 우선이냐고 물었어요. 이 결혼해도 될까요?'라는 사연.


 한 남자 패널은 말했다.

'내가 이 남자를 대변하자면, 강아지가 있으면 애기를 못 가져요. 가정을 이뤄야 하는데 강아지한테 들어가는 애정하고 아기한테 들어가는 애정이 분산된다니까요'


다른 한 패널이 말했다.

'이제 우리가 결혼할 거니까, 네가 이것과 저것 중에서 선택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남자가 나중에 가서 아기를 낳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직장을 포기해라 이러겠죠. 그러니까 이 남자냐, 강아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남자가 희생을 요구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예요.'


이 사연은 한 꺼풀 벗겨보면 '강아지'에 대한 사연이 아니다. '연애할 때는 너를 배려해 참아왔지만, 이제 결혼을 하기로 한 이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남성의 말에 그 이유가 숨어있다. '결혼을 하는 순간 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욕구보다는 아내로서의 정체성과 의무가 더 중요해지므로, 너에게 강아지가 아무리 소중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해야 마땅하다'는 무언의 압력이 첨부된 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남자와 여자는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한, 그리고 결혼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의 지점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단 2줄로 끝나는 이 사연에서 이것은 강아지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친구의 '태도'와 '사고방식'의 문제라는 지적이 허를 찔렀다. 사연의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욕구를 무시할 의도가 있었는지, 그걸 의식한 발언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히 그의 말에는 '나와 함께 하려면 무언가를 포기해라'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몇 년 전, 이런 사람이 다시 올까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인간적으로 존경하던 사람이 있었다. 결혼을 고려했지만 그와 함께 하려면 나는 직장과 생활환경을 바꿔야 했고, 그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더 이상 나와 함께 있기 힘들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서로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할 수 없어 헤어졌다.


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맞춰가고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디서 살 지부터 가사, 재정 관리, 아이를 낳으면 더 많은 일들에서 역할과 규칙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협상이 필요하다. 둘 다 만족스러운 결론을 낼 수 있다면 좋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어느 한쪽이 무언가를 더 부담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


'자유'와 '주체성'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며 사는 내게 협상의 과정에서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결혼을 해도 직업을 놓고 싶지 않고, 내가 아닌 '다른 것'을 최우선으로 선택을 내리는 것이 아직은 잘 상상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내 기준에서는 1-2년도 짧은데 만난 지 몇 개월 만에, 같은약간의 교제기간을 거쳐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하나는, '포기와 타협의 허용 범위가 맞는 사람들'이 만났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길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도 잘 모르겠는 30세 전후의 나이에 스스로를 어떤 틀  안에 넣겠다는 결정. 인생을 바쳐 쌓아 온 '나'보다 '이 사람'을 우선하겠다는 마음. 이것이 오롯이 나의 선택이 돼야 하는데 그와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내 선택의 자유와 그동안 쌓아온 직업을 내 손으로 버릴 자신이 없었다.


어떤 이와 가족이 된다면 나와 가족이라는 이유로 소중한 것을 포기하거나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내게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관계는 마음의 부채를 만들고, 나아가서는 관계 자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걸림돌이 되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너무 이상적인 것을 바라는 건가.

어쩌면 자유에 책임이 따르듯, 가족을 만드는 일에 타협이나 포기가 따르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결혼할 수 있는 것은 서로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맞는 사람들'이 만났다는 증거일 것이다.


둘은, 경제 논리에 의한 선택이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보다 둘이 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면 결혼을 결심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한마디로 돈 때문에 결혼을 결심한다는 것이 별로 달갑지는 않지만 너무나도 기본적인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집을 사는 것도 혼자보단 둘이 쉬울 테니 안정을 이루기 쉽고 사회적 제도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누릴 수 있는 복지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이 계기이든 더 잘 살고 싶어서 하는 선택 중 하나가 결혼이라 생각한다. 여자라서 포기할 필요도, 사회적 통념에 맞춰 타협할 필요도 없고, 어떤 압박에 초조해할 필요도 없다. 희생하지 않고 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혼하면 안 된다, 가 아니라 어떤 상황이든 포기하지 않고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조금 덜 자유로울 지라도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02

가족에 대하여


'결혼을 못하면 어쩌지? 아이를 갖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보다 '내가 가족을 이루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한다. 스스로가 안정된 후에 서로 보살피며 함께 인생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싶다.  


우연히 읽게 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이나 친구 셋이 집을 지어 사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가족의 형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책에서도 아빠, 엄마,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만을 진정한 가족의 완성체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2015년 기준 1인 가구는 27%까지 늘었고 2035년에는 34%에 달할 전망이지만 사회 인식과 제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거기에 대해 프랑스를 예로 들며 법적 결혼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거나 받아들이는 노력에 대해 소개한다.


남성, 여성, 아이로 이루어진 집단만이 진정한 가족일까? 국어사전에는 가족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부부나 입양이 아닌 이상 피를 섞지 않으면 가족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족의 본질인가? 학대하고 억압하고 상처 주는 관계라도 피가 섞였다면 가족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본질은 얼굴을 마주하며 안부를 묻고, 서로의 존재를 진심으로 보살피고 지지하는 관계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를 쌓아 올리는 방법 중 하나가 결혼과 육아라는 기나긴 여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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