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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미 Jun 30. 2021

한국으로 돌아와서 세 번째 편입, 4번째 대학으로..

이곳에서는 제발 간호사 자격증을 쥐고 졸업할 수 있기를...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정신이 정말 1도 없었다. 비행기표를 끊자마자,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지낼 곳을 포항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고, 그리고 공항-포항행 KTX를 미리 끊어 놓았다. 그 이상으로는 뭐 준비할 틈도 정신도 없이 그냥 눈에 보이는 짐만 후다닥 싸서 다다음날 새벽 5시에 공항으로 향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이동할 때는 절대적으로 꼼꼼한 내가 미국 경유하는 공항에 노트북 충전기랑 폰 충전기를 다 두고, 한국에 도착한 지 이틀 이후에나 알아차렸다. 노트북을 안 잃어버린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한국이었고, 인천공항 도착해서 KTX를 타고 포항으로 가는 길에서야 겨우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한국이구나... 어쩌다가 한국까지 오게 됐지... 감정이라곤 1도 없는 사람처럼 멍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모가 연락이 오셨다. 한국 잘 도착했냐며.. 그리고 내가 이 시국에 한국 들어오는 게 걱정이 되셨는지, 기도모임을 같이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조카가 무사히 귀국할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는데, 얼굴도 모르는 그분들도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편지와 비상식량을 내가 지낼 친구 집으로 보내셨다며 사진을 보내주셨다. 편지들을 읽으면서 그제야 실감이 확 났고, 정말로 나를 위해 이 길을 예비하신 거구나 다시 한번 느꼈던 거 같다. 정말 감사했지만 동시에 너무 두렵고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차에서 마스크가 다 젖도록 혼자 엉엉 울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멍한 상태로 포항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친구 없는 친구 집에 도착을 했다. 나는 분명 한국인데, 내가 한국인걸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도 없어, 마음이 왠지 모르게 공허하고 머리가 얼얼했다. 사실 내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었던 감정의 연속이었던  같기도 하다. 그래도  정신에 부모님께는  도착했다고 연락을 드리려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부모님은 소름 돋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내가 코스타리카에서 한국으로 출발한  오전 8 비행기였는데,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오후에 티비를 켰더니, 코스타리카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서 그날 오후 3시에 공항이  폐쇄되었단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솔직히 말하면, 한편으로는 내가 한국  올뻔했는데.. 하는 아쉬움도 - 있었지만,  정도로 모든  들어맞는  보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길이기는 분명한다는 생각에 조금씩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시차 적응을 하는 동시에 온라인으로 개강을 했다. 그런데 같은 간호학과 편입이기 때문에 내가 미국에서 들었던 3학기의 과목들을 당연히 이 학교에서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학교에서 하나도 인정을 못해준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더 이상 억울하고 화날 힘도 안 나고, 정말 마지막까지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희망 한 톨까지 박박 긁어 상하게 하는구나 싶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온몸에 힘이 쫘-악 빠져버리는 걸 느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싶은 생각에 무작정 간호학과 사무실로 전화해서 따지고, 교수님과 통화를 하며 따지고, 프로따짐러 나오미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내가 미국에서 들은 과목들이 다 간호학생 신분으로 같은 내용의 같은 제목의 수업들이고, 심지어 실습 시간도 훨씬 많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던 수업들인데 어떻게 단 하나의 과목도 인정을 못해주는 거냐.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학과장이랑 교수랑 며칠을 걸쳐 매일 전화를 하고 증명 서류들을 제출하며 지냈다. 결론은 간호학과 교수들끼리 내 상황을 두고 회의까지 거쳐서 인정해주시기로 했지만, 갑자기 교무처에서 끼어들어 편입 학칙(?)에 어긋난다며, 학생만의 편의를 봐줄 수는 없다며, 어차피 들은 거니까 쉽게 쉽게 들으라며 (이미 들은 거여서 듣기 싫은 건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전해 들었다. 미국에서 내가 쏟은 눈물과 노력에 절여진 3학기의 시간이 한순간에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또 한 번 눈물이 미친 듯이 났다. 이번에도 너무 억울해서... 나 분명 2020년은 작년보다 덜 울게 해달라고 기도한 거 같은데, 작년만큼이나 울고 있는 거 같았다.



정말 모든 걸 내려놓게 하시는구나... 씨알도 가진 거 없이 시작하게 하시는구나...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나를 다시 채우시려고 이렇게까지 나를 텅텅 비워내시는 건가.. 더 이상 기대할 구석도, 바라는 구석도 없었다. 안 좋게 말하면 '니 맘대로 하세요'였고, 좋게 말하면 'Let your will be done'을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마음을 먹은 이후로부터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술술 풀리기 시작했음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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