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밍치 Apr 21. 2024

인생 최악의 시기

꼭 10년 전 일이다. 우리 학교에선 밤늦게까지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는데 내가 고른 건 자습반이었다. 선생님의 감시를 피해 몰래 뒤뜰로 나갔다. 빛 한 점 없는 먹색 하늘 사이로 별조각이 맑게 바스라지고. 그 아래 불어오는 밤바람 사이로 내가 서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몇 시간이고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며 속앓이를 하기에 바빴다. 중학교 2학년이던 나의 하루 일과였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일까지 내야하는 숙제며 다음주까지 끝내야 할 시험공부가 산더미였음에도 손도 댈 수 없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이 있었으니까. 나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 했다. 내가 고민하던 건 뭐랄까, 좀 더 정체 모를 허상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미래 정도였을 것이다. 나중에 무얼 하고 싶은지, 무얼 해야 하는지, 할 수는 있을지, 실패했을 땐 어떻게 해야할 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는 어느새 내가 무얼 고민하던건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렇다 할 답은 내지 못 한 채 뒤뜰만 서성이기를 3달. 나는 고민하기를 포기했다. 자기 인생에 대한 답조차 내리지 못 해서는 고작 선택한게 포기라니. 그 시절 거울 앞에 선 나는 참 보잘 것 없어 보였는데. 만약 10년 전으로 돌아가 나에게 한 마디를 해줄 수 있다면 깊게 고민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낫다고 해주고 싶다. 내가 겪어온 고통은 대게 이런 식이었으니까.

고통의 원인은 단 하나. 나는 실체 없는 상대와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게 싸움을 걸다니, 미련했다. 의미도 없고, 소득도 없는 실갱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짜맞추어지기를 원했나보다. 아무런 변수도 없으려면 잘 짜여진 계획이 필요했고 고민하는 시간도 자연스레 늘어지곤 했다. 중요한 건 완벽한 마무리가 아니라 성근 시작이었다. 무어라도 해보겠다 뚝딱거리다보면 생기는 잔해, 그 바스라진 나머지를 들고 다시금 서툰 손길로 꼼지락대는 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많이 고민하면 한 톨의 걱정 없이 "순수"의 상태로 접어들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 일도, 내 처지를 비관할 일도, 돈이 없어 빌빌거릴 일도, 몸이 아파 쩔쩔맬 일도, 그 밖의 나를 옭아매는 온갖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고. 열반에 들기를 기대한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고통 없이는 삶도 없다.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남을 부러워하고,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를 저주하며 번민하고 이지러질 운명이다.

대체 무얼 보고 살아가야 할까. 그 어떤 잘난 사람도, 그 어떤 대단한 업적도. 결국에는 좌절되고 스러질 운명이라면 나는 어디에 기대어 살아가야 할까. 단 한 번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면, 아니 심지어 꽤 자주 넘어질 것이 자명하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나의 신념을 그리고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오뚝이 같은 힘을 키워야만 한다. 먼 훗날 가만히 앉아 굴곡진 내 인생을 미분해보자면 지금 이 순간이 최악의 시기일 수 있도록. 이 시간 이후로는 더 나아지는 수 밖에 없다. 나는 강해져야만 한다.

작가의 이전글 한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