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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둥두 Jun 07. 2024

대화의 기술

건방진 새끼

쓸데 없는 대화가 참 싫었다. 아무 소득도 없는 허허실실한 실갱이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어제 무엇을 먹었다느니, 새로 산 가방이 어떻다느니, 공부를 하지 않아놓고서는 시험을 망쳐서 속상하다느니 하는 말들 따위에는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더더욱 싫었다.



무릇 대화는 그 목적과 효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의 근황이나 소감 따위를 나누는 스몰토크(small talk)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사소통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행동이었다. 내가 하는 말,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 그리고 그 대화 아래의 숨겨진 메시지는 필요와 쓸모에 따라 구획되고 조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5년을 살았다. 통제적이고 독선적인 채로. 팔짱을 낀 채로 턱을 빳빳이 쳐들고는 어디 한 번 나를 설득해보라며 주변 사람들을 은은하게 내려다보는 그런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은 무조건 내가 가져야만 했으며 흐름의 통제권을 내 손아귀에 쥐려고 했다.  그래야만 "의미가 있다고" , "유용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주변의 모든 것을 내 입맛대로 깎아내고 벼려내서 차곡차곡 정리하려는 이 본능. MBTI가 J라서 그렇다는 둥, 약간의 결벽증이 있어서 그렇다는 둥 나름대로 둘러대왔지만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건방진 놈이었다.   





SMALL, BUT BIG

스몰토크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사소한 내용을 기억해주고, 실없는 농담에도 웃어주고, 물어보지 않는 내용에도 맞장구를 쳐주는. 이런 행위들로 사람은 가까워질 수 있고 비로소 이어져있다는 실감을 하게 된다. 맞고 틀렸는지를 판단하는 일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사람에 대한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용기내어 꺼내준 그들만의 색깔을 튕겨내지 않고 살뜰히 흠쳐주는 것. 대화는 이래야만 했다.



언어적 의사소통은 사회적 융해를 촉진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외롭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 없이 인정받고자 한다. 그들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조직에, 사회에 녹아들어가길 바란다. 대화의 목적은 합리에 있지 않다, 다만 인정에 있었다.





뭘 하려 하지 말고 가만히 있기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잘 하려면 내가 "나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적극적으로 주제를 던지고 발언을 분배하고 내용을 요약하는 등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상하게도 뭘 열심히 해보려고 하면 항상 삐걱댔다. 당연한 일이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흘러갈 흐름을 감히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했으니. 화기애애한 대화는 구획과 통제로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내가 터득한 대화의 기술을 적어내릴까한다.



1. 기본적으로 "가만히" 있기

디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기만 하는 건 대화가 아니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이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정도면 내 할 일은 충분하다.



2. 절대 끊지 않기

단순히 말을 끊는 것 뿐만 아니라 대화의 맥을 끊는 것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은 한국인 종특이다. 아니, 근데, 굳이 같은 부정어는 워낙 말버릇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대화의 흐름을 한 번 튕겨내는 말습관이다. 아니보다는 그렇구나, 근데보다는 그랬구나, 굳이보다는 그래볼까라고 함이 썩 보기좋다.



3. 판단하지 않기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말을 거는 이유는 본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고 싶어서고 알아주길 원해서지 나한테 무슨 대단한 가치판단이나 조언을 구하고자 한 게 아니다. 직접적으로 해결책이나 자문을 구해온 게 아니라면 내가 할 일은 다만 들어주는 것이다. 맞고 틀린지, 적절한지 부적절한지, 효율적인지 아닌지. 따지지 말고 그냥 들어라. 제발.



지난 25년을 독선적인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하루아침에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수해 온 만큼 앞으로는 이런 오점, 남기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대화, 모두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날까지. 고개 푹 숙이고 열심히 귀를 기울여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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