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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둥두 Nov 04. 2023

운동 왜 하나요?

나는 애시당초 운동과 친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느 초등학생들이 그렇듯 점심은 먹는둥 마는둥 하고 조금이라도 더 공을 차보겠다고 열을 올리는 와중에도 그늘 한 구석에서 눅눅하게 찌그러져있던 나였다. 당연히 체력은 좋지 못 했고 항상 피곤해했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 투성이였다. 어쩌면 유년시절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운동부족에서 기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 스스로의 의지로 운동을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뭐하나 이뤄놓은 것 없이 어영부영 살아온 지난 세월이 후회되었으며 동시에 비참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은 사랑하기엔 너무도 초라했다. 앙상한 팔다리, 축 처진 어깨, 납닥한 가슴팍. 어느 하나 혈기왕성한 10대의 몸으로 여길 법한 구석이 없었다. 낮은 자존감과 실제로 부실했던 몸 상태. 이 두 가지는 일종의 카탈리스트(catalyst)였다.

촉매는 화학작용을 촉진한다. 내 경우엔 연소반응이었다. 강렬하게 무언가 타올랐다. "울화"였다. 이번만큼은 무언가 바꾸어보고 싶다고, 이전과는 달라진 내가 되고 싶다고 수백수천번 되뇌었다. 그래서 무작정 시작했다. 하루 200개의 팔굽혀펴기, 200개의 윗몸일으키기.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훈련량이다. 문제는 나에겐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기초근력도, 운동경험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이 정도 양을 소화할 리 만무했다. 근데 그걸 해냈다. 말 그대로 꾸역꾸역. 남들보다 신체능력은 한참 떨어지는 주제에 욕심은 많아서 되지도 않는 목표를 세우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지만 팔굽혀펴기든 윗몸일으키기든 "끊기지 않고 한 번에" 200회씩을 수행하지 않으면 수행한 걸로 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운동이라기 보다도 체벌에 가까웠다. 팔굽혀펴기는 한 번에 200개는 커녕 10개도 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바닥에 가슴이 닿으면 끝이므로 엎드려 뻗친 상태에서 힘이 돌아올 때까지 버텼다. 예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식으로 200개를 다 하는데는 70분 정도가 걸렸던 걸로 추산한다. 70분이나 같은 자세로 버티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더욱 어이 없는 점은 이게 여름방학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우리 집은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때까지만 해도 에어컨이 없었다). 버티기는 힘든데, 그렇다고 그만두기는 더 싫고, 그 와중에 날씨는 푹푹찌고. 뺨을 타고 방울방울 짠물이 흘렀다. 흘깃 봐도 바닥이 흥건해질 무렵이면 운동은 끝이 났다. 이렇게 45일을 보냈다. 대체 어떻게 했나 싶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혹독한 수련기간을 겪은 주인공이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곤 하던데 실상은 그딴거 없더라. 전과 같이 몸은 앙상했고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도 한 번에 200개 못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법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 중 하나는 바로 중학교 3학년 때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 웃고,떠들고, 장난치고 때로는 울기도 하면서 밀도 있는 한 해를 보냈다. 중학교 마지막 해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운동에 있었다고 본다. 몸이 확 불었다던가, 갑자기 신체능력이 좋아져서가 아니다. 나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 하루하루 지내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내 몸에 새겨져있다는 감각이 싱그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되는 살인적인 스케줄. 심지어 주말에도 하루는 학교에 가야만 했다. 중학교 때 반짝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내신이니 수능이니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 운동할 겨를은 없었다. 남는 시간의 대부분은 자거나 먹는데 썼다. 집안 사정에 따라 상이할 수는 있겠으나 고등학생의 소비는 보통 소박하다. 간식이라고 하면 컵라면이나 과자 같은 게 주를 이뤘고, 가끔 만찬이라고 하면 치킨이나 피자 시켜먹는 정도였다. 되는대로 욱여넣고 일단 입이 즐거우면 오케이인줄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식습관은 오히려 나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었다.

나도 이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나보다. 가끔씩이라도 움직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도로 보나 횟수로 보나 운동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이건 체험판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발생했던 체험판 이벤트마저 없었다면 아마 내몸은 진작에 박살났을지도 모른다) 우리 고등학교 주변에는 연호정이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 주변으로는 산책길이 빙 둘러져 있었다. 밤이 되면 가로등 조명이 물 위로 은은하게 빛나고 신선한 밤공기는 여기저기 쏘다니며 연꽃내음을 실어나르기 바빴다. 그야말로 조깅하기 제격인 곳이었다. 다만 내 몸이 조깅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 산책로는 둘레가 1km였다. 보통 한 번 조깅에 한 바퀴 정도를 뛰었었는데 고작 1km를 달리고선 나는 힘들어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느니, 입에서 피 맛이 난다느니 하는 표현들이 과장이 아님을 알았다. 그때는 달리기가 너무너무 힘들고 싫었다. 아마 누군가 시키거나 대단한 결심히 없었다면 하지 않았겠지.

그때로부터 약 6년이 지난 지금, 내 취미는 달리기다. 한 번 달릴 때 3km 정도를 주파하고 가끔 몸상태가 괜찮으면 스프린트도 한다. 예전보다 잘하게 된 것도 취미로 삼은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가령 우리가 초등학생일때보다 글씨체가 유려해졌다고 해서 모두가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삼지 않듯이. 가장 큰 이유는 통제감에 있다. 달리기는 전신을 가장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운동이다. 몸의 균형을 잡고, 주기에 맞추어 다리를 내딛고, 하체회전의 보상으로 팔을 밀어내는 등 어느 하나 쓰지 않는 부위가 없는 종목이다. 달리기를 하려면 몸 구석구석을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 자유로운 상황에 대한 묘사는 흔히 주변을 마구 뛰어다니는 인물로 하여금 이루어지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유의 상징인 이 동작은 엄격히 제한된 상황 아래서 이뤄진다. 그리고 이 숨막히는 지점이 내가 달리기에 꽃힌 이유, 나아가 운동을 하는 이유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작용은 내가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은 노력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모든 일이 내 손아귀 안에 있었으면 하는 나로서는 그럴 때 마다 크나큰 상실감을 느끼곤한다. 되는 일은 하나 없이 그저 앉아있다보면 우울한 기분이 욕지기처럼 올라오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나도 좀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그 날은 무작정 달리는 날이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내 몸 만큼은 내 좋을 대로 할 수 있다. 불확실한 변수들 사이에서 통제감을 회복하는 행위. 나에게 운동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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