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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둥두 Nov 05. 2023

나섬으로써 깨닫는 것은

문득 깨달았다. 사실 내가 나서는 성격이었음을. 스스로는 그렇지않다고 생각해왔으나 역사가 이를 반증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때는 반장을 했다. 1년 뒤에는 도서부장을 했고, 또 1년 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전교 부회장을, 다시 1년 뒤에는 전교회장을 했다. 군복무 중에는 부대대표를 맡았고 지금은 여러 동아리의 동아리장이다.

감투에 대한 욕심때문인지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한 답답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언제나 장(長)이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 섰던 중학교 때는 모든 일이 서툴렀다.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고, 다같이 어울리기엔 사회성이 떨어졌으며, 모두를 이끌기에는 카리스마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대체 왜 내가 반장이 되었던건가 싶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쉬는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도 교실이 소란스럽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저 조용히 하라며 크게 한 번 외쳐주면 끝나는 일이었지만 도무지 결심이 서질 않았다. 대신, 교실을 돌아다니며 떠드는 무리가 보일 때마다 일일이 주의를 주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시끄러운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말했다.

"조금 있으면 선생님 오시니까 조용히 자리에 앉을까?"

"니가 조용히 하라면 내가 조용히 해야되냐?"

어이가 없었다. 한 치 망설임 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내가 잘못된건가 헛갈릴 지경이었다. 사실 이런 반응이 처음은 아니었다. 누가 반장을 하든, 반장은 밥맛 없는 놈이 되기 마련이니까. 그 당시의 나는 이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 자기들 떠드는데 거슬린다는 이유로 욕을 먹어야 한다니...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부끄럼 없어 보이는 모습에 화가 났다. 더 화가 났던 건 나를 유난떠는 사람 취급 하는 점이었다. 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나의 노력은 결국 성가신 잔소리에 불과했다. 분노, 무력감, 자괴감. 이런저런 감정들이 덧씌워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나는 고작 15살이었으니까. 실갱이를 하다말고 나는 울어버렸다.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짜내며 생각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모양새가 너무나도 저주스럽다고. 이제 와서야 깨닫는 거지만 나에게 있어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는 어지간히 못 미다운 무언가였나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배웠던 것들은 보통 애물단지 취급되기 십상이었으니까. 좋게 말하면 이상주의자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인거겠지.

이날 이후로도 항상 같은 식이었다. 내가 믿는 옳음, 내가 믿는 합리를 사람들 앞에 내보이면 이내 산산이 조각나거나 뒤집어지는 그런 과정을 반복했다. 장으로서 보낸 시간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할 수 없음을, 때로는 맞춰가고 같이 갈 때도 있어야 함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겪을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다.

나는 참 피곤한 성격이다. 타고나기를 생각 많고 복잡한 놈으로 타고났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으면 혼자서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상념에 잠겼다. 생각은 떠오르지만 나는 가라앉았다. 바다 속으로 던져버린 쇳덩이가 잠겨들며 깊고 어두컴컴한 저 어딘가로 떨어지듯이.

사람들 앞에 서기 시작하면서, 구석 한 켠에서 외로이 녹슬어가던 나는 건져올려졌다. 묵은 때를 벗었고 제 쓸모에 맞게 벼려졌다. 잠시나마 윤이 나던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다시 가라앉고 있다. 자신에 대한 불신, 끝을 모르는 무능, 게으름, 자기합리화, 약한 정신력. 온갖 안 좋은 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 중이다.

부지런히 일어나 움직일 생각은  않고 가만히 누워 청승떠는 일은 별 소득도 없이 끝날 공산이 다분하다. 근데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잘 해보고 싶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애초에 내가 뭘 하긴 했나? 남들 다 하는 일, 심지어는 응당 해야하는 일도 겨우 하는 주제에 무슨 유세인가 싶기도 하고.

이 글을 붙잡고 있는 지금도 원래라면 잠에 들었어야 할 시간이다. 내일은 어떻게 하지, 주어진 과제는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어느 하나 진전된 것 없이, 상념들이 이지러지는 머릿 속에서,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외침 만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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