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컨텐츠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OECD 국가 중 독서율 최저라는 배경 아래 우리나라에서 독서가 과거의 위용을 잃은 지는 오래다. 모르는 무언가, 알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뒤적이던 시기는 이미 지나버렸고 심지어는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며 책 자체가 가진 효능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헤엄 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위와 같은 주장에 일부 동감한다. 다만 이는 일부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책이 가치가 있으며 책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점에 대해 역설하고자 한다.
1. 지식의 밀도
정말이지 어디서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중세인이 평생에 걸쳐 접하는 정보량을 현대인은 하루 만에 접하고 있다고도 하니까. 그만큼 불필요한 정보들도 불어나고 말았는데 시간적, 능력적인 한계로 인해 우리는 이를 완전히 분별해낼 재간이 없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 무엇이 쓸모있는지만을 생각하기엔 주어진 자원이 너무나도 빠듯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정제된 정보를 주의 깊게 음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영상자료는 적절치 못 하다.
영상자료는 어디까지나 시각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제공의 한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필요한 내용에 도달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다. 궁금한 내용을 유튜브에 검색해 본 경험이 있는가?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단 한 줄에 불과하지만 고작 이 한 줄을 위해 불필요한 포장을 너무 많이 거쳐야 한다. 썸네일이며, 인트로영상, 궁금하지도 않은 영상제작자의 자기 소개. 심지어는 핵심정보와 간접적으로 관련된 주변적인 내용까지.
책이나 논문에서 발췌독을 진행할 때 색인이나 목차를 보고 한 두번 뒤적이면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일부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 도마뱀이라는 동물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생김새를 일일이 묘사하기 보다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줌이 압도적으로 빠르니까.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정보는 이러한 직관적이고 명시적인 정보가 아닌 고도로 추상화되고 개념화된 무언가이다. 영상이나 시각자료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2. 시간을 끌어다 쓸 수 있다
시간이라는 변수가 고정되어 있기에, 인지기능이 일반적인 동나이대의 사람들이 보이는 지적수준은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가끔, 아니 꽤 자주 나이나 학력 등의 조건을 무시하는 수준의 지적능력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는데 공통점은 다름 아닌 다독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성장한다. 더 다양한 경험에 많이, 자주 노출될수록 무럭무럭 자라남은 예견된 일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자원은 한정적이다. 타국에서의 삶이 궁금하다고 모두가 세계여행자가 될 수 없고, 창업이라는 원대한 도전에 뛰어들기엔 월급만을 지켜내기도 급급한 것처럼.
시간과 비용적인 투자를 최소로 하면서 경험이 주는 이점만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가 있는데 바로 책을 읽는 행위다. 직접 가지 않아도, 직접 해보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나 대신 들여준 시간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뽑아낸 지혜를 나는 취할 수 있다. 비록 해상도는 직접경험보다 떨어질 지언정 도무지 마다할 이유가 없는 행동이 바로 독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