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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밍치 Nov 20. 2023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을 타고 희뿌연 연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숨을 참는다. 비강 속에 남아있을 담배연기를 씻어내려 숨을 크게 내쉰다. 해가 쨍쨍한 날이 있다. 내리쬐는 일광에 눈이 시려울 정도로 세상은 밝게 빛나곤 한다. 반사광을 가려보려 선글라스를 쓴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보면 자세가 무너지곤 한다. 목을 당기고 가슴을 내밀어 허리를 곧추세운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신변잡기에 가까운 행동들. 하나로 꿰어내자면 키워드는 건강이다. 길거리 흡연자가 내뿜은 담배연기를 들이마시고 싶지 않아하고, 태양빛이 강한 날이면 꼭 선글라스를 챙겨쓰고, 거북목이 될까 수시로 자세를 고쳐 앉는 이런 습관들은 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일념 아래 형성된 흔적이다. 



지키려고 하는 습관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요리를 할 때면 굽거나 튀기기 보다는 삶거나 찌는 조리법을 쓰려고 하고, 잠 시간을 줄일 바에는 차라리 마감시한을 촉박하게 하더라도 좀 더 자려고 하고, 가급적이면 단당류나 포화지방 섭취를 줄이려 하고, 아무리 정신 없어도 하루에 2시간은 꼭 운동을 하려고 하는. 어떻게 보면 집착적이기까지한 이런 생활수칙들은 현재도 늘어나는 중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좀 더 많이 공부하고 고민할 수록 아무 생각 없이 즐겼던 일상들이 조금 두려워진다. 이건 이래서 안 좋지, 저건 저래서 안 좋은데 하며 계속해서 따지고 들다보니 미간에 주름만 깊어지는 듯 하다. 복잡하고 골치 아프지만 그럼에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아마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외할머니는 매우 건강한 분이셨다. 내가 초등학생일때만 해도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셨으며 오후에는 동네 체육관에서 이웃들과 배드민턴을 즐겼고, 운동을 하고 오셔도 체력이 남으셨는지 항상 우리 가족의 저녁식사를 챙겨주시고는 단잠에 빠져드셨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품행 또한 으뜸이셨다.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시면서 지자체나 여러 단체로부터 표창도 많이 받으셨고, 난감한 상황에서도 호탕하게 웃으며 넘어갈 줄 아는 분이셨다. 그런가하면 불의 앞에서는 본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으셨고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는 엄마이자, 할머니이자, 장모님이셨다.



그런 할머니가 변하기 시작한 건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부터였다. 오랜만에 찾아뵌 할머니의 모습은 놀라우리만치 달라져있었다. 하루 종일 할머니께서 하시는 활동이라고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서 걷는 것 뿐이었다. 머리는 하얗게 새어 흑발은 온데간데 없었고 발음도 어눌해지셨는지 간단한 대화조차 어려워하셨다. 체중도 많이 느셨다. 전에 봤을 때 보다 확연히 몸이 불어있었다. 몸은 내 맘대로 안 움직이고, 옆사람이랑 말도 안 통하고. 짜증이 나셨는지 할머니께서는 사사건건 불평을 하셨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응석받이가 되어버린 할머니를 보면서 짜증이 났다기보다도 다만 당황스러웠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외할머니가 맞나? 내가 좋아했던, 동경했던 분이 언제 그리고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생경함, 당혹스러움, 원망 등이 한 데 모여 휘몰아쳤다. 무서워졌다. 노화는 내게 너무나도 추상적인 개념이었는데. 나이가 든다는 건 무엇인가. 시간의 흐름은 생생하다 못 해 저릿할 정도로 명징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며 신체능력을 비롯한 이런저런 기능이 저하되니까. 이는 피할 수 없으며 예외 없이 예정된 미래이다. 노화는 불가항력적 현상이므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발버둥을 치듯이 나는 여기저기를 헤집기 시작했다. 모두가 마주해야 할 미래라면 시기를 조금 늦출 수는 없을까? 언젠가 반드시 만나야만 한다면 그 여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는 없을까? 



놀랍게도 방법은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지만, 생활습관과 주변환경에 따라 이는 빨리질 수도 있고 늦춰질 수도 있음이 입증되었다. 당장의 사소한 생활습관(건강하게 먹기, 잘 자기, 안 좋은 것 피하기)들은 일견 그 영향력이 미미해보인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번거로운 삶의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당장 밝게 빛나는 젊음에 기대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니까. 



젊으니까 괜찮아, 이 정도로는 안 죽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들이 졸부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춘의 찬란함은 영원하지 않다. 당연하다는 듯이 펑펑 써버리다 보면 싱그럽고 활기차던 순간은 어느새 사그라들고 엉망이 된 몸과 정신만이 남을 뿐이다. 젊음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모두에게 응당 한 번 쯤은 주어지는 종잣돈이다. 마치 자기가 잘해서 얻어낸 것인양 행동한다면. 지금 본인이 가진 대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젊음을 마구 쥐고 흔든다면 반드시 길거리에 나앉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게 특별한 이벤트나 어쩌다 벌어지는 요행 따위일리는 없다. 몇십몇백 시간에 거쳐서 차분히, 그리고 묵직하게 쌓아올린 지금이자 매일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이룬다. 무엇을 하느냐, 어디에 몸뚱이를 던져넣느냐에 따라 인간은 얼마든지 변화하고 또 성장할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쌓겠는가. 당신이 마주하고 싶은 미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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