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밍치 Dec 02. 2023

번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차라리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정도로 슬픈 일이 아니라서였는지, 정말로 큰 슬픔 앞에서는 담대해져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축 늘어져서는 초점 없는 눈으로 세 시간째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 즈음 눈을 떴는데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비척비척 일어났다. 배고픔은 어찌할 수 없었다. 끼니라기고 하기도 뭐했다. 말라붙은 식빵 한두 조각에 유통기한 3일 지난 우유. 율무차를 타 먹을까 했지만 우유를 데우고 어쩌고 할 기력조차 없었다.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허기를 달래고 어서 눕고 싶었다.


이불 속에 파묻혀 생각했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임을 알면서 왜 이러는걸까하고. 내가 잠을 못 자든, 내가 밥을 못 먹든, 내가 청소를 안 하든, 내가 과제를 미루든, 내가 하루종일 일언반구 없이 산송장 마냥 구석에 쳐박히든 달라지는 건 없다. 진정 달라지기를 원했다면 어서 일어나 무어라도 시도해봐야만 했다. 나의 미래가 내 노력으로 바뀔 수 있었다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었다면 당장에 털고 일어났겠지. 도저히 길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용은 내가 어찌할 수 없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일도 공부도 거의 하지 못 했다. 잠도 잘 자지 않았고 끼니도 매번 걸렀다. 거울 앞에 앉아 가만히 내 모습을 들여다봤다. 머리는 부스스하니 여기저기 뻗쳐있고 얼굴은 윤기 한 점 없이 퍼석거렸다. 안 그래도 마른 몸은 한층 더 쪼그라들어 피골이 상접했고 수면패턴이 망가진 탓에 왼쪽 귀에선 이명이 웅웅거렸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아니 더 이상 이러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할 일도 나에겐 잔뜩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무너져서는 세상 제일 억울한 사람인 양 응석만 부리다가는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었다. 털고 일어나야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직도 진전된 건 하나 없이 밀린 일거리만 잔뜩인데? 그냥 다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 뿐인데?


진단은 정확했다. 상황은 심각했고 고민만 해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민만" 했다면 말이다.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한다. 나 자신을, 그리고 내 기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그러니 내 기분은 내가 통제할 수 있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좋은 것만 보고 듣는다면 상태는 나아질거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

 

망가진 기분이 몸을 옭아매듯이 신체활동 또한 정신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울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극복해야 한다. 지난 2주간 끊임 없이 번민하며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던 내가 내린 결론이다.

제 아무리 좋은 생각, 제 아무리 논리적인 접근이라고 해도 그저 머릿속에서만 둥둥 떠다녀서는 소용이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는 머리만 잘 굴린다고 우울이 사라질 것 같았으면 우울증이라는 질병은 없어야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우울에게 자기 자신을 갉아먹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의 해답이 생각이나 마음가짐 따위에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


움직이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근섬유 가닥가닥이 끊어질 듯이 들어올리고, 묵은 몸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계속해서 움직이자. 정신작용의 해제원리는 신체활동이다. 우울은 운동으로 극복 가능하다. 아니, 통제 가능하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