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정도로 슬픈 일이 아니라서였는지, 정말로 큰 슬픔 앞에서는 담대해져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축 늘어져서는 초점 없는 눈으로 세 시간째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 즈음 눈을 떴는데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비척비척 일어났다. 배고픔은 어찌할 수 없었다. 끼니라기고 하기도 뭐했다. 말라붙은 식빵 한두 조각에 유통기한 3일 지난 우유. 율무차를 타 먹을까 했지만 우유를 데우고 어쩌고 할 기력조차 없었다.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허기를 달래고 어서 눕고 싶었다.
이불 속에 파묻혀 생각했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임을 알면서 왜 이러는걸까하고. 내가 잠을 못 자든, 내가 밥을 못 먹든, 내가 청소를 안 하든, 내가 과제를 미루든, 내가 하루종일 일언반구 없이 산송장 마냥 구석에 쳐박히든 달라지는 건 없다. 진정 달라지기를 원했다면 어서 일어나 무어라도 시도해봐야만 했다. 나의 미래가 내 노력으로 바뀔 수 있었다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었다면 당장에 털고 일어났겠지. 도저히 길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용은 내가 어찌할 수 없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일도 공부도 거의 하지 못 했다. 잠도 잘 자지 않았고 끼니도 매번 걸렀다. 거울 앞에 앉아 가만히 내 모습을 들여다봤다. 머리는 부스스하니 여기저기 뻗쳐있고 얼굴은 윤기 한 점 없이 퍼석거렸다. 안 그래도 마른 몸은 한층 더 쪼그라들어 피골이 상접했고 수면패턴이 망가진 탓에 왼쪽 귀에선 이명이 웅웅거렸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아니 더 이상 이러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할 일도 나에겐 잔뜩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무너져서는 세상 제일 억울한 사람인 양 응석만 부리다가는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었다. 털고 일어나야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직도 진전된 건 하나 없이 밀린 일거리만 잔뜩인데? 그냥 다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 뿐인데?
진단은 정확했다. 상황은 심각했고 고민만 해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민만" 했다면 말이다.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한다. 나 자신을, 그리고 내 기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그러니 내 기분은 내가 통제할 수 있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좋은 것만 보고 듣는다면 상태는 나아질거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
망가진 기분이 몸을 옭아매듯이 신체활동 또한 정신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울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극복해야 한다. 지난 2주간 끊임 없이 번민하며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던 내가 내린 결론이다.
제 아무리 좋은 생각, 제 아무리 논리적인 접근이라고 해도 그저 머릿속에서만 둥둥 떠다녀서는 소용이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는 머리만 잘 굴린다고 우울이 사라질 것 같았으면 우울증이라는 질병은 없어야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우울에게 자기 자신을 갉아먹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의 해답이 생각이나 마음가짐 따위에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
움직이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근섬유 가닥가닥이 끊어질 듯이 들어올리고, 묵은 몸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계속해서 움직이자. 정신작용의 해제원리는 신체활동이다. 우울은 운동으로 극복 가능하다. 아니, 통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