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벌써 세 달 정도가 지난 일이다. 이렇게 덜컥 붙을 줄은 몰랐다. 예상 외의 횡재라 그런지는 몰라도 기대에 부풀었다. 무슨 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다. 연재를 시작할 당시 내 글쓰기의 초점은 외부세계를 겨냥했다. 이래서는 오래가지 못 한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내용, 다른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내용을 고민하자면 어떻게 써도 해당 글에 나 자신은 남지 못 한다.
내가 느낀 점을, 나만의 방식으로 쓰고 싶었다. 억척스레 뒤엉키는 일상을 가지런히 풀어헤치고는 정갈하게 담아내고 싶었다. 누군가는 봐주리라 믿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일면식도 없는 내가 써내린 글은 그들에게 영감이 되었고 원동력이 되었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나를 더 보여주고 싶어졌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법한 이야기들도 적어내리곤 했다. 실언에 가까운 글쓰기였다.
제동이 필요했다. 솔직한 표현과 정제되지 못 한 표현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으니까. 최소한의 가공은 거쳤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볼 지 몰라 주변에 물었다. 많은 피드백들이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글의 분위기에 관한 지적이였다. 왜 우울하고 안 좋은 일에 관해서만 쓰냐는 것이었다. 그럴 리 없다 싶어 쌓아둔 글을 닥치는대로 뒤적였다.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글로만 보자면 나는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불평불만이 핵심은 아니었다. 항상 힘들었던 일, 안 좋은 일은 앞에 던져놓고 극복하는 과정이나 그러면서 얻은 깨달음 따위가 따라오는 구조로 집필했으니까. 내가 가장 중요한 게 여긴 점은 뒷부분이었으므로 사람들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초두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따라오는 깨달음보다는 엎질러진 물에 더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했다. 글의 짜임새 때문인가 싶었지만 핵심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어떤 인생이든 나름의 굴곡은 있다. 좋은 일, 행복한 일이 있었다면 반드시 힘든 일, 불행한 일이 뒤따르는데 시련도 있는 것과 시련만 있는 건 천지차이다. 내 나름대로는 깨달음을 공유하고자 썼던 모양인데 마루는 온데간데 없이 골만 연거푸 보여주다보니 글이 주는 파장은 그 역동성을 잃었다. 억지로 행복한 척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주제도 폭 넓게 다뤄볼 필요성을 제시할 뿐. 특히 행복.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나라는 사람의 영혼을 공명시킬 수 있는 활동이며 체험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해볼 때가 되었다.
그래, 다음 글의 주제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