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경험.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와 집값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거기다가 나는 부촌에 살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평범한 직장을 가진 두 사람이 가족을 꾸리고 살기엔 너무나도 어려울 거라는 판단에 다른 주로 이직 신청을 하게 되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가, 출산하기 한 달 전에 연락을 받게 되었고 그 길로 부랴부랴 이사를 준비하게 됐다. 그 와중에 양수가 빨리 터져 아기를 일찍 만나게 되어 일은 첩첩산중으로 그야말로 아비귀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가게 되어 기쁘기도 했다.
시댁에 아기와 있는 동안 남편과 시아버지께서 모든 짐을 이사 갈 집으로 옮기셨다. 그 후에 다시 아기와 이동을 하게 됐는데, 비행기를 타기엔 너무 리스크가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전으로 이동하는 것을 택하게 됐다.
넓은 땅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9시간, 10시간 운전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은 듯 보였지만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차 안에서 미숙아와 보내야 할 걸 생각하니 정신이 조금 아찔해졌다.
다행인 것은 아기들은 차의 소음이 마치 배 속에 있었을 때와 비슷해서 잠을 굉장히 잘 잔다는 것이었고, 3시간마다 수유만 잘해 주면 문제없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때도 직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리 유축한 모유를 일정한 온도로 유지 켜 주는 보온 기계를 쓰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 기계가 차 안에서 작동을 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은 차 안에서 열심히 유축을 하여 아기에게 먹여야 했다.
일부러 저녁 시간에 출발했는데, 처음 1~2시간은 조용히 잘 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 때문에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나? 싶어 차를 세우기도 했다. 아기가 차 안에서 울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던지.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우리나라의 휴게소 같은 장소를 찾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려야 했는데 10분의 시간도 10년같이 흐르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정체를 해야 했기 때문에 9시간 걸리는 거리를 거의 12시간이나 넘게 운전을 해야 했는데, 정말이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사고 없이 우리 모두는 무사히 이사한 집으로 도착을 할 수 있었지만, 정리 되어 있지 않은 집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