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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Mar 14. 2022

소설가 백영옥 "자기계발식 사랑? 그건 사랑도 아니다"

<애인의 애인에게> 출간 기념 인터뷰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백영옥의 말말말



- "시도를 많이 하니까 실패가 많고,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실패 자체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더 많아요."



- "저는 세상이 무조건 밝고 희망이 넘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조건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그건 약한 사람들, 상처에 대한 공감일 거예요."



- "사람들은 불안하니까 사랑을 자기계발화 시키고 싶어 해요. 하지만 사랑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아요. 그게 작동한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죠."



[프리즘②] ‘소녀’처럼 웃고 ’철학자’처럼 말하다



▷ 소설가 백영옥은 누구? ’섹스 앤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같은 ‘칙릿(현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주제로 한 장르소설)’은 외국에만 있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소설가 백영옥은 2008년 발표한 장편 <스타일>을 통해 ’한국형 칙릿’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광고쟁이, 온라인서점 직원, 패션 잡지 기자 출신 소설가가 쓴 ’무거운 척 하지 않는’ 소설은 문학계 내외부에서 두드러졌다. 그 후로도 소설가인 동시에 칼럼니스트, 인터뷰어로서 독자를 만났다. ’독자가 존재한다, 고로 난 글쟁이다.’ 이것이 작가로서 그녀의 정언 명령이다.



▷ <애인의 애인에게>는 어떤 책?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매춘 사이트의 포르노 사진을 찍으며 생계를 충당하는 예술가 지망생 조성주와 그를 중심으로 관계된 정인, 마리, 수영 세 여자의 이야기가 미스터리 로맨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사랑을 하며 겪는 여러 상태-동경, 집착, 열정, 욕망, 절망-와 마주하게 된다. 나아가 작가는 극히 사적인 ’사랑’이란 행위를 전혀 모르는 익명의 타인 ’애인의 애인’을 향해 연대하는 공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감히 ‘연애’소설의 탈을 쓴 ‘연대’의 소설이랄까? 책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가슴 속에는 아릿한 감각과 흔적만이 남는다. 마치 열렬한 하나의 사랑이 끝났을 때처럼 말이다.



▷ 인터뷰 현장은? 소녀처럼 깔깔 웃고, 철학자처럼 말한다. "저 오늘 발레 슈즈 샀어요."라 말하며 신발이 얼마나 딱딱한지 만져볼 것을 권하다가도, 현대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진단과 비판이 이어진다. 소설 군데군데에서 등장한 아포리즘이 그녀 입에서도 실시간으로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지금 이 시대를 예민하게 청취하고 반응하는 저널리스트형 소설가의 모습을 보았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거의 6년 만에 장편소설집이 나왔습니다. 인터파크 북DB 일일연재로 완성하셨지요. 새 소설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인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세월호 사건 이후 패닉 상태에 빠져서 거의 글을 못 썼어요. 저 말고도 많은 작가들이 그랬을 거예요. 집단적인 죽음의 형태를 생중계 방식으로 본 거잖아요. 아이들이 파란 불 켜진 횡단보도를 손들고 건너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났어요. 그러면서 발레를 시작했어요. 발레에서 ’턴 아웃’을 할 때 일상생활에서 쓰는 것과 뒤집어서 근육을 쓰는데 굉장히 우아해 보이지만 고통스러워요. 발레를 배우면서 8개월 간 근육통에 시달렸어요. 하지만 오히려 내면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내 몸에서 실질적으로 벌어지는 고통의 양이 비슷해지니 살 것 같더라고요. 그때 고통과 아름다움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요.



Q 이번 작품은 좀 더 상처에 치중했고, 더 깊어졌단 느낌이랄까요. 마리가 성주와 사랑에 빠지고, 또 결혼에 실패하면서 처참히 무너지고 나서 희미한 회복의 징조를 보이며 이야기가 끝나지요. 작품 분위기가 변한 이유가 있나요?



작품에선 등장인물들의 사랑이 다 잘 안 되고 결국엔 틀어지지만 희망적인 구석이 있어요. 지금 우리는 사랑을 사랑이란 단어로 말하고, 희망을 희망이라 말하기 힘든 나라에 살고 있잖아요. ’절망으로 희망을 말하는 방식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고, 고민의 결과가 이번 소설이었어요.



Q 뉴욕에서 단기임대(서블릿)로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살아본다는 설정이 흥미롭더라고요. 정인은 그 집에 머무르는 동안 성주-마리 부부의 흔적을 발견하고, 마리가 성주를 위해 짜던 스웨터의 털실을 풀어 마리를 위한 스웨터를 짜지요. 스웨터가 앞서 말씀하신 절망으로 희망을 말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처음 소설 쓸 때 정인이 마리의 스웨터를 떠준다는 설정은 없었어요. 정인이 성주네 집에 들어갈 때는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과 숨겨진 것들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심정이었겠죠. 하지만 정인이 결국 본 것은 그의 전 애인 마리가 뜨다 만 스웨터, 그녀가 쓴 편지였던 거예요. 소설을 쓰다 보면 소설적 지혜가 생긴다고 하잖아요. 쓰다 보니 정인이라면 마리가 느낀 고통의 지점을 봤을 것이고, 결국 정인은 마리가 뜨다만 스웨터를, 다시 마리를 위해 떠줬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스웨터는 일종의 자매애, 어떤 연대나 따스함 같은 거예요. 제가 힘들 때 늘 곁에 있던 건 여자들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세상이 무조건 밝고 희망에 넘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조건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그건 약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 상처에 대한 공감일 거예요.



Q 소설에서 한 가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요.(웃음) 성주가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이긴 하지만, 정인이 평소 흠모하던 성주보다 그의 부인 마리 입장에 더 깊이 공감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요?



정인은 오히려 마리의 흔적을 본 후 안도하고 동병상련을 느꼈을 거예요. 정인은 성주-마리 부부가 서로의 뒷모습만 보고 있는 형국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입장에 있으니, 둘 다 가여운 영혼처럼 느꼈겠죠. 성주와 마리의 관계에서 더 사랑한 쪽은 마리였잖아요.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더 사랑하는 쪽이 강자거든요. 강하니까 자기 주도적으로 줄 수 있는 거예요. 세상이 말하는 강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나 봐요.



Q 성주가 읽는 책이 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인데요. 이번 소설의 주제와 깊게 연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을 잘 모르는 독자들은 어떤 작품인지 궁금할 것 같은데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요?



<순수박물관>은 이미 약혼자를 둔 한 남자가 어느 날 운명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별하고,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녀를 잊지 못한 채 곁을 맴돌다가 그 사랑이 결국 회한으로 남는 내용이에요. 결국 마지막에 남자는 여자에 대한 사랑을 박물관을 세우면서 완성하죠. 이렇게 불완전 연소한 사랑이 남긴 폐허는 소설에서는 아름답지만 내 일생이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만큼 슬픈 게 어디 있겠어요? 적어도 마리는 그런 박물관을 만들진 않을 거예요. 다 주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으니까요. 하지만 마리가 사랑의 실패자인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쿨한 척 하다가 얼어 죽는다’고 하잖아요. 쓰레기도 모여서 썩으면 꽃을 피울 수 있는 거름이 되듯 그런 실패가 큰 발판이 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작동하리라 희망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어요.





웹소설 집필 … "대중 눈높이 타겟팅은 엄청난 재능"



Q 보통은 관계에서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 취급을 당하잖아요. 그래서 마음을 감추는 행위에서 ’썸’을 탄다거나 ‘밀당’을 한다는 표현도 생겨났어요.



사랑도 자기계발화 되고 있어요. 그러면서 ’갑을’식 권력관계나 ’썸’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안타까워요. 영어공부 열심히 하면 시험 점수 높일 수 있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처럼 스펙은 노력하면 높일 수 있는 세계에요. 그런데 사랑은 안 그렇잖아요. 내가 정말 진심을 다해 상대방을 사랑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건 아니에요. 인간 감정의 영역은 굉장히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하고 혼돈스러워서 인풋대로 아웃풋이 안 되는 세계잖아요. 사람들은 불안하니까 그걸 자기계발화 시키고 싶어 해요. 하지만 사랑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아요. 그게 작동한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죠.



<아주 보통의 연애>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훔쳐보는 장면이 나와요. ’스토킹’이란 소재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좋아하는 남자 집에 들어가 보려는 심리가 페이스북 할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 페이지에 들어가서 글에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댓글을 달았는지 보기도 하고, 사진을 통해 뭔가를 알아내기도 하잖아요. 어찌 보면 우리는 합법적 스토킹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도입부에서 정인이 서블렛에 들어가서 좋아했던 남자의 일상을 복원하고 탐사하는 행동이 독자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왔을 거예요.



’왜 자꾸 구남친은 출몰하는가?’라는 칼럼에서도 썼는데 지금 우린 불행하게도 과거에서 멀어질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옛날에는 학교 졸업하면 끝이었는데, 지금은 친구추천에 옛날 남자친구가 뜨고, 옛날 남자친구의 현재 여자친구가 뜨는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네트워크에선 과거가 단절되지 않으니까요. 과거 단절이 구시대적인 언어가 되고, 시간이 자꾸 겹쳐지기 때문에 원치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스토킹하게 되어있는 거죠.





Q 요새 포털 사이트에 <비정상 로맨스>란 웹소설을 연재하고 계신데요. 등단한 소설가가 웹소설을 연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파격적이에요. 그런데 그에 앞서 2010년에는 단문형 SNS 서비스 ’미투데이’에 에세이 연재를 하셨죠. 새로운 매체나 형식 도전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당시엔 ’재밌겠는데?’라고만 생각했고, 그것이 미칠 파장은 생각도 안하고 시작해버렸어요.(웃음) 원래 재밌다고 생각하면 저지르는 성격이라. 140자 안에 에세이를 쓰는 거였는데 그것 때문에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도를 많이 하니까 실패도 많고, 필연적으로 실패 자체에도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더 많아요. 내 안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좋고, 아직까지는 체력이 되니 그런 시도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웹소설을 쓸 때와 단행본을 위한 소설을 쓸 때 많이 다른가요?



전혀 다르죠. 일단 웹소설은 컴퓨터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고 90% 이상이 모바일로 봐요. 어린 독자들도 많지만 40~50대 주부들도 놀랍도록 많이 보세요. 요즘 어린 친구들이 책을 안 산다고 하잖아요. 그럼 그들이 책을 못 읽나? 그건 아니란 거예요. 굉장히 아이러니한 깨달음인데 요즘 애들만큼 텍스트 민감도가 뛰어난 애들이 없어요. 왜냐하면 다 카톡으로 소통하니까요. 문장을 읽어내는 능력이 나쁘지 않아요. 간접소통방식을 선호하는 시대인 거예요.



물론 웹소설의 세계는 100% 판타지예요. <애인의 애인에게>처럼 실제 리얼한 사랑 얘기를 쓰면 그들 표현으로 ’졸망’, ’완망’, ’극혐’이에요.(웃음) 그렇다면 왜 이런 소설을 읽을까 했을 때, 사는 게 너무 각박하기 때문이죠. 독자들도 실제 연애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하루 20~30분 투자해서 ‘왕자님’같은 캐릭터를 보고 싶은 거예요.



또 한 가지 의외로 웹소설 분량이 되게 길어요. 요즘같이 긴 콘텐츠 못 읽는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긴 걸 볼까 궁금했는데 카톡 때문이었어요 그거 아세요? 웹소설이랑 카톡 대화창을 비교해보면 되게 비슷해요. 웹소설은 대화가 70%이고, 지문이 거의 없어요. 그렇게 긴 컨텐츠가 소비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이 있었는데 그것도 이해가 돼요. 그렇다면 요즘 독자들이 무조건 긴 컨텐츠를 못 읽는 것은 아니니, 읽을만한 컨텐츠를 만들면 돼요. "유치한 걸 뭐 하러 만들어"라고 얘기할 건 아니란 거죠. 나 잘난 맛에 쓰는 게 아니라 자기 감각을 대중의 눈높이에 딱 정확히 위치시켜 맞추는 건 엄청난 재능이에요. 그렇게 조회수를 이끌어내는 작가들은 엄청난 내공을 갖춘 거예요.



Q 이번 웹소설 연재 도전뿐만 아니라 그동안 경계를 넘나드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문화 생산자로 살아오셨는데요. 이런 행보에 대해 작가님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가요?



전 어렸을 땐 광고회사에서 카피를 썼고, 인터넷 서점 초창기 MD로도 있었어요. 지금은 소설가로서 웹소설도 쓰고 있고요. 이렇게 새롭게 시대가 바뀌는 시점에 제가 우연히 계속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보면 예술가라는 정체성보다는 저 스스로를 글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일 자체를 상업적인 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예술과 상업을 나누는 경계가 저에겐 무의미한 것 같아요. 미술계에서도 순수예술 작가들이 상업 브랜드들과 공동작업을 하잖아요. 문학도 그런 게 가능하다고 봐요. 컨텐츠의 질이 중요할 뿐이죠. 예술과 상업을 굳이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요즘 같은 시대엔 잘 맞지 않죠.



Q 앞으로의 더 출간예정인 책이 있나요?



루시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 중에서 제가 주옥같은 대사를 뽑고, 거기에 현대적 재해석을 덧붙인 책이 4~5월 경에 나와요. 예를 들면 마닐라가 앤의 실수에 잔소리를 하면 앤이 "이렇게 실수를 많이 하니 앞으로 실수할 일이 줄어들어 좋은 것 아닐까요?"라고 응대하는 대목이 있어요. 그러면 거기에 제가 이런 글을 덧붙이는 거예요. "앤 그건 아니란다, 실수엔 끝이 없단다, 실수엔 총량이 없으니까. 넌 계속 새로운 실수를 할 거야. 네가 할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통해 배우는 거란다" 이런 식의 글이 앤의 애니메이션과 함께 실리는 거예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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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DB 2016. 3. 11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4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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