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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리공 Jun 09. 2018

자전거 여행은 처음이라 (4)

선 밟으면 죽는거 실화

잘못 들어선 길로 한참 가다 보니 이젠 마을도 없고 차도만 나왔다. 이상한데. 지도를 잘못 본 건가. 한참을 다시 봐도 지도가 알려주는 코스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가야 하는 길은 놀랍게도 '국도'였다. 차선 하나를 두고 바로 옆에서는 승용차부터 대형트럭까지 80km이상으로 달리는 곳이었다. 


촬영자의 멘붕이 느껴지는 카메라워크


해가 지기 3시간 반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어디로든 빨리 가야 했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미 너무 먼 길을 왔고, 다시 돌아가는 길은 온통 논두렁이라 숙소를 찾기도 힘들었다.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국도를 탔다. 



차선을 하나 두고 바로 옆에서 트럭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길이었다. 왼쪽으로 선을 조금만 넘어가면 9시뉴스에 등장할 상황이었다. 대낮이었지만 후방 깜빡이를 최대한 밝게 켜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찬송가도 틀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렸다. 이 길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목적지가...하늘나라는...아니었는데...


다행히 나는 국도를 무사탈출하여 지금 이렇게 후기를 남기고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죽음은 언제나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몰랐던 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선 하나 놓고 죽음과 나란히 달리는 경험을 하니 같은 말이라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코너만 돌면 다시 자전거 전용도로 진입하던 지점. 감격의 한 컷.


다행히 살아 돌아와서 지금 이렇게 무사히 후기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름끼치던 국도는 아직도 생생하고, 덕분에 차선만 보면 죽음이 생각난다. 


날 로마에서는 개선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이 말은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오늘은 이기고 돌아왔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해라는 의미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비록 잘못 들어선 길이었고 위험했지만, 국도는 내게 '메멘토 모리'를 알려준 곳이었다. 


자전거 여행은 처음이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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